‘불청’, 잘 나가던 그 시절로 돌아가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불타는 청춘>은 비교적 안온했다. 비록 화요 예능 왕좌를 JTBC <아내의 맛>에게 내줬지만, 시청률은 꾸준한 편이고, 코어 팬층도 탄탄하다. 그런데 코로나의 영향인지 12일 촬영분이 3~4주간 방송되고, 계약연애를 위시한 러브라인에 포커스를 두면서 시청률 그래프는 답보상태다.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2016년 전후 김국진과 강수지를 중심으로 남녀 성비와 선후배가 탄탄히 균형을 이루던 가족적 분위기에서 이연수, 김도균, 김완선 등 올드스쿨 멤버가 빠지고, 최성국과 김광규를 중심으로 최민용, 구본승 등 남성 위주의 고정체제로 옮겨가면서 게임과 러브라인 등 보다 예능 장치에 많이 기대는 쇼버라이어티에 가까운 방송으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웃음 짓게 하는 장면들도 많다. 여성 제작진과 출연진이 벌인 족구 대결이나 새 친구 오승은의 몸개그와 끼, 구본승과 안혜경 커플이 만드는 재미 등 웃음 터지는 장면이 없는 게 아니고, 김진, 오승은, 박형준, 곽진영 등을 만나는 반가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출연진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일회적으로 출연하는 게스트와 오랜만에 찾는 식구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불청> 특유의 가족적 분위기, 그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맛, 함께 있으니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여행의 감수성과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전에도 틈틈이 동력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2016년 이후 그럴 때마다 기존의 루틴인 시골을 벗어나 해외여행이라든가 싱글송글 노래자랑’, ‘보글짜글 청춘의 밥상’, ‘불청 콘서트’, ‘내시경밴드 특집등등의 이벤트를 펼쳤다. 특히 지난해 이맘때쯤은 <불청 콘서트>의 여흥에 한껏 기운이 올랐을 때다. 이런 명시적 이벤트 이외에 강수지와 김국진 커플의 빈자리를 남은 멤버들이 함께 메워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했고 그 아래 잘 뭉쳤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기 힘든 요즘, 밀고 있는 건 계약커플콘셉트다. 구본승은 강경헌과 보니허니에 이어 이번에는 안혜경과 안구커플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축이 된다. 보니허니 시절은 자연스럽기도 하고 잔잔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최성국의 사회 하에 떠들썩한 러브라인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 러브라인에 해당되지 않는 출연자들의 비중은 감소했다. 지난 몇 년간 늘 하던 대로 똑같이 여행을 하고 밥을 해먹고 잠을 자지만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서로 조금씩 밀착해 빈자리를 메우던 시절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불청>의 탄생 이래 러브라인은 필수코드였다. 하지만 계약연애를 내세운 커플 맺기에 몰두하면서 <불청>이 타 예능과 달리 자기만의 월드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 그 독특함이 옅어지고 있다. <불청>의 가장 큰 매력은 출연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쇼인데 출연하는 캐릭터의 색깔과 깊이가 설정이 아니라 세월을 녹여낸 것이라 남다르다.

오랜 연륜에서 오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운 모습은 사람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를 바 없단 위로를 전달한다. 인생의 굴곡을 맛보고 일과 삶을 어느 정도 관조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 커뮤니티는 방송을 하는예능과는 다른 리얼리티와 정감이 있었다. 밥을 해먹고, 간단히 게임을 하는 건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는 관계와 편안하게 즐기는 분위기는 시청자들을 이들의 여행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다른 예능과는 완벽하게 차별지어지는 울타리이며 시청자들까지 공유하는 가족적 관계가 형성된 이유다.

그런데 최근 방송을 보면 출연진의 관계는 점점 분절되고, <러브라인> 이외 스토리라인이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기획 없이 여행에서의 활동 제약이 반복된다. 초심으로 돌아가 장보기를 없애고 주어진 한 가지 재료로만 밥을 해먹고 있지만 손맛 좋은 멤버들이 포진한 탓에 그리 큰 제약요건이 되지 못한다. 러브라인과 점점 짙어지는 1990년대 향수를 깔고 가는 건 늘 해왔던 거지만 그 두 가지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 보인다.

<불청>의 매력은 인간미와 가족적 분위기에 있다. 방송임을 의식하지 않고, 방송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자연스런 매력을 담아내면서 과거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에 볼 수 있었던 시청자들과의 정서적 교감에 성공하고 그만의 팬덤을 만들 수 있었다. 현실적 어려움은 있고, 멤버들은 늘 물 흐르듯 교체되어 왔지만, 한번쯤 외연을 확장하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면서 느슨해진 정서적 교감을 모아당길 필요가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장점과 현재 예능 환경을 살펴봤을 때 인공미가 가미된 쇼버라이어티 스타일로는 승산이 없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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