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당신은 마음 아픈 이들의 곁에 서 있나요?
‘사이코지만 괜찮아’ 지친 영혼 위한 동화인가, 질병을 착취하는 멜로인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사람이 많은 시절이라 그럴까. 최근 정신질환과 그 치유를 메인 소재로 다루며 치유극을 표방한 멜로 작품들이 비슷한 시기에 도착했다. 종영을 눈앞에 둔 KBS <영혼수선공>에 이어, tvN 또한 주말극으로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선보인다. 김수현의 군복무 후 첫 복귀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사이코지만 괜찮아>, 애니메이션과 CG의 사용, 화려한 설정과 시끌벅적한 소동들을 통해 판타지 잔혹동화적인 분위기로 자기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첫 주를 어떻게 봤을까? 평은 다소 갈린다. 정석희 평론가는 동화 속에서는 죽어 마땅한 것들을 쓰레기를 치우는 양 남 몰래 처치해주는 사람을 영웅시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사이코패스일 뿐이라면서도, 극중 문영(서예지)의 속삭임에 마음이 흔들렸다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캐스팅으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며 “tvN 드라마가 다시 살아난다는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김선영 평론가 역시 “소위 ‘정상성’의 바깥으로 가차 없이 추방당한 존재들의 비극과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태도”를 고발하는 드라마의 태도에 박수를 보내며, 드라마가 “당신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승한 평론가는 최근의 정신질환 관련 드라마들을 “멜로가 절절함을 높이기 위해 질병을 착취한 역사”의 연장선상으로 보며, 이 작품이 실존하는 질병을 드라마 전개를 위해 팬시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원인과 치료는 맞붙어 있는 모양이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것들이 있는데 어떤 사려 깊은 또라이가 그것들을 몰래 죽여주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는 시민들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자신을 사려 깊은 또라이로 합리화시키는 동화작가 고문영(서예지)이 문강태(김수현)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이 머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도덕과 규범이 죽어 마땅한 것들이 있을 리 없다며 내 생각을 윤리라는 틀 안으로 밀어 넣는 사이 고문영의 속삭이는 듯 나직한 음성이 자꾸 탈출을 시도하게 한다. 이를테면 천인공노할 범죄를 지은 조두순 출소일이 200일도 남지 않았다는데 고문영이라면 이를 어찌 처리할까? 동화 속에서는 죽어 마땅한 것들을 쓰레기를 치우는 양 남 몰래 처치해주는 사람을 영웅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양 팔로 가슴을 교차해 스스로를 도닥이는 나비 포옹법. 이 또한 드라마를 보는 사이 몇 차례나 따라 해봤다. 최근 방송에서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의료진이 권하는 치료법 중 하나로 소개되곤 했는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강태의 형 상태(오정세)가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나비 포옹법으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다. 나비 떼에서 기인한 발작이거늘 나비 포옹법이라니. 원인과 치료는 맞붙어 있는 모양이다.

김수현, 서예지, 두 주인공 외에도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여럿이다. 상태 역의 오정세야 명불허전이고,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귀여운 커플로 나왔던 박규영과 강기둥이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강태의 조력자들로 나온다. 박규영은 꽃지율의 흔적을 찾기 어려운 간호사 남주리로, 강기둥은 강태의 유일한 친구 조재수로. 강태가 괜찮은 병원으로 이직하면서 의료진으로 김창완, 김미경, 장영남 씨가 나올 예정이라니 더욱 기대된다. 월화극 <가족입니다>에 이어 주말극 <사이코지만 괜찮아>까지, tvN 드라마가 다시 살아난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동화적 연출로 드러낸 ‘정상성’의 폭력성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잔혹 동화 애니메이션 오프닝으로 드라마의 주제와 스타일을 한눈에 보여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진 소녀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한없이 위협적이고, 세상 밖으로 한 발 나오려 했던 소녀는 뒤돌아 다시 성안에 자신을 가둔다. 음울한 현실을 몽환적인 동화 스타일의 연출로 순화한 드라마는, 그러나 오프닝에 뒤이어 곧바로 진짜 현실 세계를 비춤으로써 주제를 한층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다운직업학교에서 발작을 일으킨 상태(오정세)의 모습을 보고 특수학교나 지역복지관으로 옮기면 서로가 편하다고 단호히 말하는 교수는 소위 정상성의 바깥으로 가차 없이 추방당한 존재들의 비극과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는 상태가 고문영(서예지)의 출판기념회를 찾아간 장면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고문영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던 시민들의 질서에서 벗어난 상태의 말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미친놈의 정신 나간 말로 치부된다. 상태가 말을 걸려 했던 아이의 부모가 지나치게 악마적으로 묘사되긴 했으나, 발작을 일으킨 상태를 구경하듯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이다. 그동안 회사 대표의 처절한 노력으로 정상성의 세계 맨 위, 셀러브리티의 안온한 지위를 누렸던 문영이 작가석에서 내려와 상태의 옆에 섬으로써 그와 동류임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래서 통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장면이기도 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그렇게 동화적 연출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라고.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배우들이 수고가 많다

멜로 장르 작가들이 폐결핵을 일용할 양식처럼 활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멜로물은 파리한 안색투병으로 지치고 힘든 육신이라는 증상을 멜로의 언어로 번역해, 여자 주인공에게 뽀얀 피부가냘픈 팔다리를 선사하곤 했다. 엄연히 실존하는 고통을 드라마 속 절절한 로맨스를 위해 써먹은 것인데, 한국의 보건의료 상황이 진보를 이뤄 결핵환자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면서 작가들은 새로운 질병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폐병에 이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혈병부터, 작가들이 필요로 할 때면 멀쩡하던 캐릭터도 아무 때나 픽 쓰러지게 해주는 기면증, 기억상실, 다중인격멜로가 절절함을 높이기 위해 질병을 착취한 역사는 이토록 길고 유구하다.

그리고 여기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있다. 삶이 고단해 누굴 사랑할 여유가 없는 정신병동 보호사 강태(김수현)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인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스타 아동문학 작가 문영(서예지)이 서로를 치유하는 동화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이 작품은, 역시나 정신질환을 예를 갖춰 다루기보단 팬시한 멜로 소품으로 소비하는 결례를 저지르고 있다.

극중 문영의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묘사되는 수준은 딱 온라인 상에서 회자되는 리디광공캐릭터의 사이다 퍼레이드다. 부와 사회적 성공을 거머쥐고 귀찮은 일 뒷수습을 해주는 이들까지 부리는 문영 캐릭터는 그 힘으로 자기가 생각하기에 해코지 당해 마땅하다 생각하는 이들을 해하는데 거침이 없다. 캐릭터에게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교정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조건(, 명예, 서포터들)을 모두 안겨주었으니, 시청자들 입맛에 맞는 속 시원한 사이다 퍼레이드만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네가 내 안전핀 해라. 내가 펑 안 터지게 네가 꽉 붙잡고 있으라고.”처럼 세기 초 인터넷 소설에서 보았을 법한 오글거리는 대사들을 어떻게든 납득시키는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온 마음이 지친 강태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김수현과, 거칠 것 없는 문영을 시원시원하게 그려 보이는 서예지의 호연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방영 첫 주를 방어해 낸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이런 배우들의 호연도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착취하는 각본의 얄팍함을 다 감추진 못한다. KBS <영혼수선공>도 그렇고 <사이코지만 괜찮아>도 그렇고, 작가들은 대체 정신질환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tvN,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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