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같이’, 식사를 통한 관계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저녁 같이 드실래요?” 이런 질문은 상황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다양한 뉘앙스와 의미가 담긴다. MBC 월화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제주도에서 실연당한 우도희(서지혜)가 공항 주차장에서 이제 어디를 가야할까 멍해져 있을 때 떠난 줄 알았던 김해경(송승헌)이 돌아와 저녁 같이 드실래요?”라고 묻는 그 질문에는 호의정도가 담겨 있다.

김해경은 정신과 의사다. 그것도 음식과 식사자리를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 그러니 그 순간에 다시 돌아와 우도희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데는 직업적 특성도 작용했을 터다. 하루 동안 바닷물에 빠지기도 하며 일을 함께 겪은 두 사람은 좋은 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신경이 쓰이는 관계가 되었을 테고, 여기에 김해경의 직업적 특성이 더해져 그런 질문이 툭 튀어나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와 몇 차례의 우연적 만남을 겪으며 저녁 같이 먹는 사이가 된 후의 김해경과 우도희의 저녁 같이 드실래요?”라는 질문에는 설렘 같은 것이 섞여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름도 직업도 아무 것도 묻지 않기로 하며 저녁을 같이 먹는 것 이외에는 선을 그어 놓았지만 우도희의 마음은 무시로 그 선을 넘는다. 결국 우도희는 그런 관계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말한다. 저녁만 같이 먹는 사이를 버텨내기 어려울 만큼 김해경을 생각하게 된 것.

디너 메이트로만 알고 있던 그가 인터넷방송 섭외 때문에 치고받았던 바로 그 김해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도희는 더더욱 그를 피하게 되고, 김해경은 그 사실을 알고는 우도희를 찾아와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그러면서 이제 저녁을 같이 먹고 싶을 때면 그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한다. 이들의 저녁 먹는 일은 이제 연인의 성격을 띤다. 결국 김해경이 우도희에게 좋아한다고 속내를 고백할 만큼.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는 유독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해경과 우도희의 관계가 진전되는 과정이 같이 하는 식사들로 담겨져 있는 게 드라마의 중심적인 이야기를 이루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해경도 우도희도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신의 성장사에서 먹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우선이었던 어머니 때문에 늘 혼자 밥을 해먹던 김해경은 그래서 같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 일인가를 그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고, 그의 아버지의 죽음 직전 모습도 밥 한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소원했던 김해경의 어머니가 다시 돌아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음식과 관련되어 있고, 병원에서 어머니는 레시피북을 보며 자신이 아들에게 밥 한 끼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걸 후회한다. 김해경과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 열리는 대목조차 이 드라마에서는 나아지면 같이 밥 먹자는 대사로 표현된다.

물론 관계가 멀어지는 것도 이제는 더 이상 같이 밥 먹고 싶지 않다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심각한 애정결핍으로 우도희에 집착하는 전 남자친구 정재혁(이지훈)이 과거 함께 밥을 먹었던 추억들을 끄집어내며 같이 밥 먹자고 말하지만, 우도희는 더 이상 그럴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김해경의 전 여자친구 진노을(손나은)이 오래도록 사귀어 김해경의 식성까지 파악하고 있는 걸 인터넷 라이브 방송 도중 슬쩍 끄집어내지만 김해경이 선을 긋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처럼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사실 같이 먹는다는 것을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드라마였다. 심지어 노숙을 하고 있는 키에누(박호산)와 남아영(예지원)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매개체로 만두가 등장하고 있을 정도니. 하지만 드라마는 음식을 통한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다만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거나 매개하기 위한 수단정도로 음식이 등장하는 정도였을 뿐.

이렇게 되면서 드라마는 다소 뻔한 4각 멜로의 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사랑하게 된 우도희와 김해경 사이를 끊임없이 파고 들어와 갈라놓고 방해하려는 전 연인들인 정재혁과 진노을이 벌이는 갈등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재혁과 진노을의 방해공작은 김해경과 우도희의 관계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뿐 그 인물들이 왜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에 대한 설득은 좀체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본래부터 나쁜 빌런처럼 그려지게 되는 것.

<저녁 같이 드실래요>는 그래서 김해경과 우도희의 멜로의 진전을 위해 모든 것들이 수단화되는 다소 뻔한 전개를 보여주게 된다. 음식들도 전 남자친구 여자친구들도 방송도 모두 이들의 관계 진전을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의미들을 담지 못하게 된 것. 음식과 식사를 통해 관계를 들여다본다는 나쁘지 않은 소재가 다소 뻔한 멜로를 위한 장치 정도로만 다뤄진 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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