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의 투트랙 행보에서 보이는 예능 토크쇼의 미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구라는 유튜브 채널 <구라철>에서 MBC 예능 <라디오스타>의 경쟁력에 대해 몇 차례 언급했다. <12><라디오스타> 중 어떤 프로그램이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김종민과 나눈 대화에서 전통적인 스튜디오 예능이라 오히려 희소성이 있고 경제적이란 의견을 낸 바 있다. 광고 편성 전문가를 찾아간 에피소드에서는 시청률이 지표의 전부가 아니라며, <라스>는 시청률이 하락했음에도 광고가 여전히 많이 붙는다는 든든한 속사정을 밝혔다.

그런데 과연 그 광고와 인지도가 지속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트로트 열풍발 일시적 현상이면 좋겠지만 <라디오스타>는 수요일 동시간대 예능 중 가장 성적이 좋지 못하다. 아무리 시청률이 보조 지표가 되었다고 해도 브랜드파워가 남다른 지상파 장수 예능의 시청률이 지난 5월 말 이후 3%대로 내려왔다는 것은 그 어떤 긍정적인 해석도 남기기 어려운 시그널이다. 김구라의 말대로 요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게스트를 초청해 에피소드를 듣는 방식의 전통적인 토크쇼라서 희소성이 있을지, 아니면 왜 이제는 아무도 하지 않는 형태의 예능이 됐을지 고민과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재밌는 것은 이런 <라스>의 프론트맨이 김구라라는 데 있다. <라디오스타>는 그의 인생작이자, (윤종신 하차 이후 더더욱) 원맨 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김구라는 요즘 다시 유행하는 말인 공과 과가 모두 있는 인물이지만, 2000년대 박명수와 함께 우리 방송 예능의 지평을 확장했으며, 명실공이 톱MC의 반열에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독설로 대표되는 그의 캐릭터는 무조건 밝은 미소와 웃음을 띠며 낮은 자세를 갖춰야 했던 예능의 문법과 토크쇼의 규칙을 박살냈다. 시청자와 초대 손님을 모시던 쇼버라이어티 세상에, 세상사 모든 게 못마땅하다는 듯 찌푸리고 뚱하게 쳐다보는 사나이가 턱을 괴고 앉아 세상 불편한 이야기를 질문으로 하면서 심지어 잘 듣지도 않았다.

<라스>가 특별했던 것은 게스트가 눈물을 보이는 순간까지도 희화화하는 냉혈한 김구라가 이른바 샌드백 역할도 함께 맡았다는 데 있었다. 말 한마디에 백 마디가 붙을 정도로 활발한 에너지가 돋보였고, 흔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낄낄거리는 게 최우선인 발랄한 방송이 될 수 있는 데는 자신을 토크의 허브로 사용하면서 무언가 색다른 모습을 끄집어내려는 집요함이 바탕이 됐다. 그가 날린 독설은 바로 되돌아와 비수가 되고 그렇게 튄 작은 파편에서 다른 이야기가 번지고 또 이어졌다. 한쪽으로 흘러가다가 억지로 다른 방향으로 급커브하는 정신없는 토크쇼의 분위기와 양식은 신선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예능계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김구라가 지금, 방송예능업계가 주목할 만한 하나의 실험을 진행 중이다. MC급 중 가장 발 빠르게 유튜브 플랫폼에 들어와 자신의 가치를 확장시키고 있다. 무려 KBS 예능국과 손잡은 <구라철>은 그가 진행하는 여러 채널 중 특히 눈길을 끈다. MC급 중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채널을 진행하는 것도 선구적이지만, 콘텐츠를 풀어가는 방식이 김구라다워서 오히려 신선하다. 박준형이나 장성규처럼 유튜브의 화법과 경계 내에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와 재미로 인기를 끌고 다시 방송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인 경우와 달리, 김구라는 지난 십여 년간 방송에서 보여준 고유의 캐릭터를 그대로 유튜브 플랫폼에 가져가 성공했다는 점이 꽤나 이색적이고 고무적이다.

인터넷방송이라고 해서 비속어나 자극은 없다. 대신, 방송에서 여전히 밝히기 어려운 숫자현실’, ‘현상에 대해 가림막 없는 토크를 지향한다. 10여 년 전 금기에 도전하며 토크쇼 패러다임을 바꾼 그때가 떠오르게 만든다. 물론, 지금 방송과 매체 환경 때문에 김구라의 활동이 그때만큼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년배 다른 톱MC급의 활동에 비하면 매우 진취적이고, 그만이 어울리는 독보적 콘텐츠를 벌써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연유로 <라스>2013년부터 꾸준히 변질 혹은 저하에 대한 비판을 받아오고 있지만, 김구라는 2020년에 또 다른 실험을 계속하며 꾸준히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이 반복과 간극이 흥미롭다. 김구라가 우리나라 예능계의 울타리를 확장시킨 시기의 예능 관계자들은 프로그램과 캐릭터만 걱정하면 됐다. 그러나 지금은 방송국 자체를 걱정해야 할 만큼 매체 환경이 급변했고, 대중과 만나는 방식, TV시청 문화, 콘텐츠 소비 방식 자체가 변화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김구라는 여전히 한쪽에선 전통과 구태 사이에 있는 토크쇼를 애정 있게 진행하면서, 한쪽에선 다른 누구보다 활발히 그리고 앞서 실험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쪽은 식상하다 평가되고 한쪽은 실험이 된다. 김구라의 투트랙 행보 사이에서 예능 토크쇼의 미래가 슬쩍 엿보인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MBC, KBS 스튜디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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