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어게인 코리아’가 만들고 있는 기적 같은 일들

[엔터미디어=정덕현] 크러쉬는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걸 잊어버린 듯 멍하니 노래를 듣고 있었다. JTBC 예능 <비긴어게인 코리아(이하 비긴어게인)>가 전주 경기전 안에서 한 버스킹의 마지막 노래로 god을 다 같이 부르는 중이었다. 크러쉬에게 그 곡의 가사들이 한 줄 한 줄 가슴에 박히기 시작했다. 결국 노래가 끝난 후 눈물이 터져버린 크러쉬는 나중에 진정이 된 후 가진 인터뷰에서 8년 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을 이 노래가 새삼 생각하게 했다고 했다.

그것이 크러쉬만의 일이었을까. 워낙 명곡인지라 의 가사들은 거기 버스킹을 찾은 관객들의 가슴에도 콕콕 박혔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같은 가사들이 저마다 걸어가고 있는 삶의 길을 반추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관객 중에는 이미 눈가가 촉촉해진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전주 경기전에서의 버스킹은 <비긴어게인> 중에서도 역대급의 감성 몰입이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에서 이뤄진 공연처럼 느껴졌다. 소향의 노래는 어디서 불러도 관객들을 오롯이 그 음악 속으로 빠뜨려 끝나고 나서도 긴 여운을 남기곤 했지만, 이번 경기전에서 부른 이소라의 제발은 더더욱 마음을 건드렸다. 가슴 절절한 가사에 소향의 혼이 담긴 듯한 목소리가 얹어지자 관객들의 감성은 이미 말랑말랑해져버렸다.

어째서 이런 남다른 감성을 건드리는 버스킹이 가능해진 걸까. 그것은 아마도 버스킹이라는 특징이 그러하듯이 그것이 벌어지는 시공간의 합작품이 아닐까 싶다. 경기전이라는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이 주는 고즈넉함과 왠지 모를 쓸쓸함 그래서 더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노랫소리는 아티스트들은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이색적인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저 지나치며 별 감흥도 없던 일상 공간 속으로 훅 음악이 들어오자 그 공간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비긴어게인>이 해외가 아닌 국내를 선택한 건 코로나19의 여파 때문이었지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의외로 찾아낸 성과는 다양한 공연 공간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지금껏 한 번도 공연의 공간으로 시도되지 않았던 곳들이 음악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파장한 전주 남부시장의 한 길목에서 수현이 이나우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나 가거든을 부리고 여기에 박다솔이 춤을 추는 대목은 <비긴어게인>이 만든 기적 같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장해 한적한 그 곳의 풍경들과 어우러지는 음악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공연 공간이 얼마나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것인가를 말해준다.

게다가 그것은 누군가 애써 살아가는 삶의 노고 위에 마치 위로처럼 얹어주는 음악 같다. 그러니 그 공간에서의 음악이 색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수밖에. 포항제철소의 어찌 보면 다소 거칠고 딱딱해 보이는 그 공간을 헨리가 찾아가 철통 같은 것들을 두드려 소리를 채취한 뒤 하나의 퍼포먼스로 들려준 이매진 드래곤스의 ‘Believer’가 그렇고 대구 지역 예술가들의 공간인 수창청춘맨숀에서 헨리와 수현이 부른 아로하가 그렇다.

<비긴어게인>은 놀랍게도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이를 역발상함으로써 다양한 공연 공간들을 실험하고 찾아내는 기적 같은 일들을 만들었다. 아마도 크러시와 관객들이 경기전에서 보인 눈물은 바로 그런 지점에서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이 다소 준비된 자의 감상으로 다가온다면,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일상공간에서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음악은 의외로 우리는 고양시키는 면이 있다. 그저 지나치던 공간이거나 심지어 노동의 공간으로만 치부되어 있던 곳을 음악으로 채우는 <비긴어게인>이 이 시국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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