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형사’, 손현주가 꺼내 놓은 서민 판타지의 정체
‘모범형사’의 질문, 모범으로 살면 왜 불이익을 당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대철(조재윤)은 떨리는 손으로 강도창(손현주)형사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애써 참고 있던 강도창의 눈물이 흐른다. “대철아.. 대철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렇게 반복해 미안하다 말하는 강도창에게 이대철은 딸 결혼식 때 손잡고 들어가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면서 갈게요. 형님.”이라 마지막 말을 건넨다.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의 이 장면은 이 작품이 여타의 형사물과는 다른 형사상을 그리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5년 전 동료 형사가 살해됐다는 사실과 상관의 지시 때문에 별다른 추가 조사 없이 이대철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린 형사. 하지만 진짜 살인범은 따로 있고 자신 때문에 살인자가 된 이대철과 그의 딸 이은혜(이하은)가 모두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 걸 알게 된 형사.

사실 이 형사는 당시 상관이었고 현재 인천 서부경찰서 서장인 문상범(손종학)이 은근히 얘기했던 대로 조용히 넘어갔으면 승진해 잘 나가는 형사의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조금은 돈키호테 같고 때론 너무나 인간적인 강도창은 그 양심의 가책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재심 신청을 하고 스스로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아 넣는 내부고발에 심지어 재심 법정에까지 나가 자신의 5년 전 과오를 낱낱이 드러낸다.

보통 형사물들은 끔찍한 살인범을 추격해 잡아내는 그런 영웅의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모범형사>는 결이 조금 다르다. 강도창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형사다. 여기에 대해 5년 전 이대철을 살인범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문상범은 강력2팀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가족운운한다. 자신들은 가족이며 그래서 서로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한다. 법정에 나서는 강도창에게 전화해 그를 회유하려는 문상범에게 그는 소리친다. “경찰 얼굴에 먹칠하는 건 너야.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가족 운운하며 자신들의 비리를 서로 감춰주고 그럼으로써 무고한 이를 살인범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찰들. 그리고 그 경찰과 손발을 맞추는 검찰. 사건의 진실을 외면한 채 거짓 기사들을 양산하는 언론. 그 위로 힘 있는 권력자와 돈 있는 재력가들... <모범형사>가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서민들의 지옥이다. 가진 것 없는 무고한 서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이 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진상이 나와도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강도창은 엄청난 범인을 잡는 형사로서의 영웅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한 잘못으로 인해 무고한 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다소 바보스러운 영웅이다. 물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대철의 사형집행으로 끝나버리게 되지만, 적어도 진실을 밝히고 이렇게 한 사람과 가족을 처참한 지옥으로 몰아넣은 진짜 범인들을 잡는 일이 남았다. 강도창은 과연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현실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검경 그리고 언론이 모두 한 통속으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자의 토로가 들리기야 하겠는가. 그래서 강도창 같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진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형사에 대한 서민 판타지는 더욱 커진다. 그가 말했듯, 자신조차 외면하면 그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서고 심지어 처절한 자기반성조차 피하지 않는 그런 형사라니.

강도창을 연기한 손현주는 과거 <추적자>에서 딸을 억울하게 잃게 된 강력반 형사 백홍석을 연기한 바 있다. 그 작품에서도 그 형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서민 영웅의 면모를 보인 바 있다. <모범형사>에서의 강도창 역시 마찬가지 정서를 건드리는 영웅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손현주가 하는 형사 연기는 서민 냄새가 진하게 풍겨난다.

어찌 보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굳이 모범이라고 할 것까지 없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모범형사>에서 그 당연한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또 계란으로 바위 치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도창은 모범형사가 된다. 드라마는 모범이 당연한 일이 아니고 영웅적 행위가 되는 씁쓸한 현실은 에둘러 보여주고 있다.

법정에 나서는 강도창에게 평소 보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여동생이 한 마디를 던진다. “오빠 형사 관두지 마.” 그 말에 강도창은 형사 관두면 밥 굶길까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동생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오빠. 오빠는 형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사람이야. 잘 생각해봐. 오빠 인생에서 형사 빼면 뭐가 남는지.”

그 말에는 다소 비꼬임이 들어 있지만 강도창이 조금은 바보스럽게 해온 형사로서의 삶이 담겨진다. 지지고 볶으면서도 창피한 건 알아 엇나가지 않았고 그래서 또래 동료들과 달리 승진도 누락되었지만 그래도 묵묵히 지킬 건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남들처럼 승승장구하지 못한 채 살아온 건 달리 보면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것. <모범형사>는 이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씁쓸한 현실을 공감하며, 그 삶이 영웅적 삶이라는 위로의 말을 에둘러 건네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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