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여름 싹쓰리, 2020년 여름 싹쓰리
우리를 흐뭇하게 만드는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1997년 여름에는 언제나 그렇듯 여름 히트송들이 가요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가장 화제였던 여름 댄스곡은 두 혼성그룹의 곡이었다. 두 팀 모두 대히트곡의 후속곡인 노래들로 또 한 번 여름 시장을 달구었다. 쿨의 <해변의 여인>과 유피의 <바다>는 그해 여름 해수욕장은 물론이고 전국의 나이트클럽과 도심 길거리 리어카에서도 내내 흘러나오던 노래였다.

혼성그룹이고 두 그룹 모두 여름에 어울리는 컬러를 지녔지만 색깔은 달랐다. 쿨은 20대의 연애감정을 유쾌한 댄스곡에 실어 노래하는 팀이었다. 이들보다 늦게 시작한 유피는 애니메이션캐릭터처럼 독특하게 귀여운 분위기를 풍기는 팀이었다. 여름의 바다를 노래하는 이들의 댄스곡은 지금까지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도처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곡이다.

1997년 9월 30일자 '경향신문' 보도ⓒ 경향신문
1997년 9월 30일자 '경향신문' 보도ⓒ 경향신문

한편 1997년 여름 유재석은 군 제대 후 마이크를 든 메뚜기 캐릭터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역사가 한 철이 아니란 걸 그때의 그는 알지 못했을 터였다. 업타운의 윤미래나 <룰라>의 채리나처럼 폼 나는 힙합소녀를 꿈꾸던 연습생 이효리 역시 그녀가 아이돌그룹 <핑클>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는 청순 캐릭터로 데뷔할 줄은 몰랐을 터였다. 중학생 정지훈은 아이돌그룹 <팬클럽> 데뷔를 준비하며 처음 월드스타의 꿈을 꾸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물론 정지훈은 1998년 첫 선을 보인 <팬클럽>이 실패한 이후 어린 나이에 쓴맛을 보고 밀레니엄이 지난 다음에야 비라는 이름을 얻고 월드스타의 자리에 오른다.

1997년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이효리. 핑클로 데뷔하기 전이다.
1997년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이효리. 핑클로 데뷔하기 전이다.

2020년 이 세 명의 대형스타는 각각 다른 부캐로 등장해 1990년대 정서를 지닌 혼성그룹 싹쓰리를 만든다. MBC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이들은 유드래곤, 린다G, 비룡으로 분해 이들의 캐릭터와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재석, 이효리, 비는 부캐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패션과 감성으로 1990년대를 재현하면서 굉장히 신나한다. 아마도 그들이 재현하는 1990년대는 그들이 지금처럼 대형스타가 아니던 때, 스타를 꿈꾸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자연스럽고 풋풋한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한때 누구나 반짝이는 인생을 꿈꿨던 우리들 각각의 10대로 돌아가게 만들어준다.

아이돌그룹 팬클럽.
아이돌그룹 팬클럽.

한편 처음에는 코믹으로 시작한 싹쓰리 조합의 결과물은 예상과는 좀 다르다. 무엇보다 이상민이 <음악의 신>에서 보여준 1990년대 음악의 리바이벌 씨바의 <왜 불러> 같은 쉽게 흘려듣는 코믹송은 아니었다. 이들 싹쓰리가 부른 <다시 여기 바닷가>는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코믹해서 짓는 미소가 아니다. 이 노래는 우리를 아무 걱정 없던 어느 바닷가의 여름 추억으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시 여기 바닷가>는 그럴 듯하게 1990년대를 리바이벌한 댄스곡이 아니다. 뭐랄까, <다시 여기 바닷가>에는 걱정 없던 추억의 여름과 지금의 여름을 오가는 아련한 파도 같은 분위기가 존재한다. 아마도 여기에는 2000년대 한국에서 가장 세련된 분위기를 보여준 <롤러코스터>의 멤버 이상순이 이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상순은 <다시 여기 바닷가>에서 1990년대 여름 히트송의 추억 속 비트로 시작하지만 어느새 촌스러운 비트는 세련된 비트와 맞물린다. 그리고 발랄한 노래는 어느새 그 여백에 아련한 분위기까지 만들어낸다. 그 때문에 <다시 여기 바닷가>는 해변에서도 감상용으로 썩 괜찮은 울림을 준다.

여기에 린다G다시 여기 바닷가를 속삭이는 후렴구 보컬은 핑클 초기에서의 이효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허스키한 음색 속에 발랄함과 애잔함이 미묘한 비율로 배합되어 있다. <다시 여기 바닷가>을 부리지 않고 힘을 빼고 부르는 비룡의 보컬이 얼마나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음색인지 알게 해준다. 또한 후반부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는 애드립은 이 곡의 백미이기도하다. 한편 유드래곤의 목소리는 그의 본캐가 개그맨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 노래에 잘 어우러져 있다.

만약 <놀면 뭐하니?>의 결과물이 단순히 코믹송에 그쳤다면 약간은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싹쓰리는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추억의 유머코드를 가져가면서, 그 결과물로 싹쓰리와 함께 1990년대와 2020년을 잇는 평행세계 여름송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저 1990년대와 현재를 파도처럼 오가는 <다시 여기 바닷가>라는 음악의 놀이기구에 승차해 힘든 여름 마음의 바캉스를 누리면 된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Mnet,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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