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친구들’의 19금은 어째서 서사도 공감도 없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혹시 19금을 오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JTBC 금토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은 시작부터 <부부의 세계>를 잇는 작품이라 내세워졌다. 19금 드라마로 <부부의 세계>는 자극적인 연출 등으로 비판받은 지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공감할 만한메시지와 완성도를 갖고 있어 무려 28.3%(닐슨 코리아)라는 시청률과 매회 뜨거운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하지만 <우아한 친구들>은 어떨까. 19금 타이틀 하나만 같을 뿐, <부부의 세계>만큼의 완성도나 공감대 그 어느 것 하나 채워주지 못하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한때 대학연극 동아리를 함께 했던 5인방, 안궁철(유준상), 정재훈(배수빈), 천만식(김원해), 박춘복(정석용), 조형우(김성오)가 이제는 중년이 되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대학시절 모종의 사건을 겪었고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의 첫사랑이었던 백해숙(한다감)과 염문설이 돌던 교수의 사망사건이다. 그 후로 백해숙은 사라졌고 안궁철은 백해숙의 친구로 해숙을 부러워했던 남정해(송윤아)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평탄하게 살던 그들의 삶에 어느 날 주강산(이태환)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균열이 만들어진다.

안궁철과 남정해 부부의 이야기와 더불어, 발기부전으로 고개 숙인 채 젊은 아내와 살아가는 박춘복과, 한때 에로배우 출신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바를 운영하는 아내 강경자(김혜은)과 살아가는 에로영화 감독 조형우, 재력가 집안에 성공한 비뇨기과 원장이지만 이혼 후 혼자 살아가는 정재훈 그리고 시청 세금징수과 공무원으로 살아가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돌연사한 천만식의 이야기는 마치 중년남성들의 위기를 더한 <부부의 세계>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 드라마가 <부부의 세계> 같은 공감대를 얻기 어려워지는 부분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성폭력, 성추행을 보여주고 여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연출이 더해진데다, 무엇보다 이런 자극적인 19금 장면들이 적어도 꼭 필요하다 여겨지는 어떤 공감대가 부재하다는 점 때문이다.

주강산이라는 인물이 드라마 초반에 만들어낸 성폭력을 포함한 자극적인 장면들이나, 5인방 중년 남성들이 술집에 모여 떠드는 노골적인 수작들은 우아한이라는 수식어를 쓰고 있는 이 드라마와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수면제를 먹여 성폭력을 한 범인 주강산을 남정해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설정도 납득이 안되지만, 심지어 남정해의 알몸 사진을 남편 안궁철에게 보내 분노하게 만들던 주강산이 허무하게 사체로 발견되는 상황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감대가 생기지 않는 드라마는 자극을 위해 인물들을 마음껏 활용하다 버리는 그런 소모적인 방식으로 보여지게 된다. 등장하자마자 사망한 천만식은 중년남성들이 처한 위기라는 공감대를 위해 소모된 캐릭터처럼 보이고, 갖가지 자극적인 폭력을 저지르다 사체로 발견된 주강산 역시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쓰이다 버려진 캐릭터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런 활용조차 그다지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 뻔한 클리셰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회부터 호스트바에 비즈니스를 위해 간다며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나가는 정해의 모습에서부터, 그 후에도 남성들의 술자리 성적 농담이나 갑자기 정재훈이 맥락 없이 한 여성의 집을 찾아가 정사를 벌이는 장면, 에로영화를 찍는 현장, 하다못해 요가를 하며 의도적으로 몸을 훑는 카메라 등등 자극적이고 성적인 장면들은 필요해서 등장한 게 아니라 자극을 위한 전시로서 연출됐다는 혐의가 짙다.

<우아한 친구들>19금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그 설정을 세워두고 갖가지 자극적인 장면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런 방식은 19금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고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19금은 말 그대로 성인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지, 다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야한 것으로만 봐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물론 19금이 표현에 있어서 좀 더 거침없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런 장면이나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전제되어야 19금이라고 해도 천박함이 아닌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우아한 친구들>이라는 제목은 물론 전혀 우아하지 않은 이들에 대한 풍자적 시선이 담겨 있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좀 더 극명하게 이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괜스레 감상에 빠지고 실제로는 성희롱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탄이나 하는 보기 불편한 아재들을 정당화하는 듯한 시선 대신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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