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신선하고 재밌는 아이디어, 하지만 구현방식은 익숙하다는 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관련된 밈화된 놀림에 대해서는 대부분 변명을 해주고 싶다. 예를 들어 재래식 특수효과와 진짜 피사체에 대한 고집과 같은 것. 이걸 시대착오적인 사치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놀란처럼 제작비나 촬영기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 허용된 범위 안에서 뭘 하건 상관없지 않을까? 놀란식 제작방식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이 들지 않으며 무엇보다 후반 작업에 들어갈 시간과 돈을 절약하게 해준다. 그리고 일단 그림이 더 잘 뽑힌다. 비교적 CG가 많이 들어간 <배트맨 비긴스><다크 나이트>를 비교해보라.

나는 놀란의 투박한 액션이나 종종 이상한 촬영도 절반 정도 옹호해주고 싶다. 기존 슈퍼히어로 액션의 날렵함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추구하는 유사 리얼리즘(박쥐옷을 입은 백만장자가 밤마다 악당들을 때려잡는 이야기의 리얼리즘을 따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노골적인 개싸움이 그 동안 쌓아올린 세계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아이맥스의 거대한 스크린을 쓰면서 오히려 시야를 극도로 제한한 <인터스텔라>의 촬영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우주비행사들은 대부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수밖에. 광활한 우주에 나왔지만 시야는 창문과 헬멧 때문에 제한되어 있고 그 갑갑함은 오히려 관객들의 시야를 거의 점령한 아이맥스에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 아무리 화면이 커도 그 바깥으로 탈출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불평하고 싶은 것들은 다른 종류이다. 예를 들어 필름에 대한 집착. 그 자체에 대해서는 뭐랄 생각이 없다. 각자 취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전세계에서 자기 영화를 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관객들이 어떤 조건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지에 고려를 해봐야 한다. 이번 신작 영화 <테넷>의 최적 상영조건을 제공해주는 곳은 1.9:1의 화면비율을 제공하는 아이맥스 상영관과 2.20:1로 필름 상영을 할 수 있는 70밀리 상영관인데, 과연 그런 극장이 전세계에 몇 개나 될까? 멀티플렉스를 찾은 대부분 관객들은 흐린 블랙바가 생기는 작은 디지털 화면에 만족해야 한다. 그들에게 놀란의 집착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놀란의 영화가 백인 남자의 서사이고 여성과 기타 소수자들은 뒤로 밀리거나 도구화된다는 비판 역시 그냥 옳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놀란의 백인 남자주인공이 늘 아내나 여자주인공을 잃은 우울한 남자라는 건 지겨워질 때가 됐다. 거기서 대단한 의미를 읽을 생각도 들지 않고. 한 번이라면 모를까. 계속 반복되면 그건 생각 없는 습관일 뿐이다.

의외로 <테넷>은 이를 극복하려고 한 시도가 보이긴 한다. 일단 남자주인공이 흑인이다. (덴젤 워싱턴의 아들인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연기한다.) 주인공은 홀아비도 아니고 여자친구을 잃은 적도 없다. 이 영화의 여자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캐릭터도 죽지 않는다. 굳이 남자일 필요도 없는 성중립적인 캐릭터들을 여자배우들에게 준 것도 보인다.

하지만 이 시도로 놀란을 칭찬하는 건 다소 웃기는 일이다. 적어도 각본상에서 워싱턴의 캐릭터의 인종은 어떤 의미도 없다. 이런 캐릭터에 다양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여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여기에 대단한 노력은 들어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름 고민하며 드라마와 개성을 넣어 준 데비키의 캐릭터 캣의 결과물이 나쁘다. 너무 본드걸이고 피해자성이 거의 포르노 수준으로 과장됐다. 캣의 캐릭터가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은 영국판에서는 잘렸다고 하는데, 굳이 그런 걸 넣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해 놀란이 이 영화에서 한 건 기계적인 캐릭터 배정이지 백인 남자 바깥의 세계에 대한 세계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기계적인 배정도 꼭 필요하긴 하지만 놀란처럼 집요하게 놀림감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디어 이야기를 해보자. <테넷>은 굉장히 재미있는 ‘SF 영화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SF’라고 하지 않고 ‘SF 영화라고 했는데, 이 아이디어는 문자화되면 매력 대부분을 잃을 수밖에 없는 종류이다.

<테넷>이 다루는 건 인버전이라는 기술이다. 이를 통하면 물체의 시간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시간이 미래로 가면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대신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말이 되는가. 예를 들어 인버전의 과정을 거치면 미래에서 과거로 정보를 보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인과율은 어떻게 되는가? 그 어느 것도 완벽하게 고립된 존재일 수는 없다. 인버전된 사람의 몸에서 꾸준히 나오는 땀과 비듬, 눈물은 어떻게 되는가? 과거의 자신을 만지면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는 늘 바뀌지 않는가? 기타등등 기타등등. 놀란은 나보다 여기에 대해 훨씬 많이 고민했고 전문가의 조언도 많이 들었겠지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완벽하게 말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서 문제점들은 대충 넘기고 쓰게 되는 그런 아이디어다. (수많은 SF 아이디어가 그럴 것이다.)

<테넷>의 아이디어는 굉장히 영화적이라는 데에 장점이 있다. 처음부터 영화라는 매체가 <테넷>의 세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시간을 필름이라는 물체 안에 가두어 보존한다. 영화를 통해 인류는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영화는 시간을 앞으로도 뒤로도 돌릴 수 있고 정지시킬 수도 있고, 2배속, 4배속으로 가속할 수도 있다. 놀란은 이 환상적인 영화 속 물리학의 세계에 캐릭터를 던지고 그 다양한 충돌을 즐긴다.

이게 정말 재미있기 때문에 플롯이나 도구적인 캐릭터에 대한 불평은 최대한 줄이고 싶다. 정말로 새롭고 재미있는 물리법칙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인간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것이다. 어차피 그런 걸 구경할 수 있는 다른 영화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인간이 그렇게까지 중요할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테넷>이 전체 놀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는 좀 반복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주 신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그 구현방식은 익숙하다. 여기 저기 <메멘토>,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들의 흔적이 보이고 은근히 인터넷의 놀란 밈에 넘어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화물 운송기가 등장하는 놀란스러운액션 장면은 굉장히 잘 만들어졌지만 놀란이 앞으로 놀란스러운 장면을 보여줄 거야라고 은근슬쩍 메타적인 농담을 하는 것이 보인다. 자기반영적인 농담은 재미있을 수 있지만 놀란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을 때가 된 것인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테넷>스틸컷]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