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플렉스’의 위험한 선택, 故 설리 다큐가 주는 불편함
고인에 무례 범한 ‘다큐플렉스’,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 설리의 삶을 조명한 MBC <다큐플렉스>는 예상 외로 방송 후 커다란 논란에 직면했다. 이 다큐의 제목은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였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불편함을 더 많이 토로하고 있다.

특히 방송이 나간 후 과거 설리의 연인이기도 했던 최자에게 쏟아지는 악플은 이 방송의 취지나 의도가 무엇이었건 간에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모현 PD가 직접 나서서 일일이 이 다큐의 취지와 의도를 밝히고 최자에게 악플이 쏟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사전에 조심했고 최자도 피해자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그럼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다이나믹듀오의 개코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고의 시청률이 제작 의도였다면 굉장히 실망스럽고 화가 납니다.” 실제로 <다큐플렉스>는 첫 회 0.9%로 시작했지만 이 다큐로 2.6% 시청률을 냈다. 방영 후 논란이 커지면서 화제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커진 논란으로 인해 방심위에도 민원이 접수됐다.

방송 후 최자에 대한 악플이 쏟아지게 된 데는 이 다큐가 담아낸 편집과 스토리텔링이 여러 차원에서 그를 부정적으로 담아낸 면이 있어서다. 설리의 모친인 김수정씨의 인터뷰를 통해 담겨진 것이지만, “열애설이 나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다 행복하고 좋았다는 인터뷰 멘트는 거꾸로 말하면 최자를 만난 후 불행이 시작됐다는 것처럼 읽힐 수 있었다.

다큐는 물론 설리가 겪게 된 비극에 대한 다양한 원인들을 담고 있었다. 어려서 가난했던 환경 속에서 일찍이 시작한 연예계 활동과 연애 이후 겪은 아픔들과 소신 있는 말과 행동들이 불러온 악플들, 그래서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받고 있었던 사실까지 담았다. 실제로 논란이 커지자 이모현 PD는 인터뷰를 통해 설리의 죽음 원인은 굉장히 복합적이라며 연애, 악플 무엇 하나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다큐플렉스>가 놓친 부분은 고인을 다루는 다큐에서 보다 세심한 배려 대신 다소 자극적인 편집과 스토리텔링을 했다는 사실이다. 최자와의 열애와 헤어지는 과정에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하필이면 당시 발표했던 노래 죽일놈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자막까지 더해 넣는 편집을 했다. 게다가 당시의 설리가 특히 악플에 시달렸던 이유 중 하나로 최자의 이름에 얽힌 루머까지 담아냈다. 거기에서 고인에 대한 추모나 예의를 발견할 수 있을까. 그건 고인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가십을 꺼내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으면서 방송으로서는 조심해야만 하는 자극적인 자막들이나 영상 편집도 이 다큐가 불편함을 주는 이유였다. 특히 어머니가 딸의 소식을 듣고 그 집을 찾아가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담아낸 건 이 다큐가 가진 자극적인 연출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다큐플렉스>는 고 설리의 삶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설리가 생전에 갖고 있었던 소신이나 아티스트로서의 면면들을 제대로 담아냄으로써 이 다큐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추모의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설리는 아이돌 가수로서는 금기시 되었던 많은 일들을 스스로 나서 깨치며 행동으로 옮겼던 아티스트였다.

대신 다큐는 설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가를 좇으며 어머니와 몇몇 지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외로웠고 힘들었다는 걸 강조했다. 게다가 과거 악플의 대상이 됐던 지극히 사적일 수 있는 SNS 영상들을 굳이 다시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니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애초 방향성이 잘못 됐고 거기에 자극적인 연출과 편집이 더해져서다.

이모현 PD는 해명을 하며 설리 어머니도 딸에게 행복한 시간을 준 최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런 내용이 있으면서도 편집됐다는 사실이다. 이모현 PD는 분량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내용 하나가 들어가고 안 들어 가고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를 과연 몰랐을까.

‘다큐플렉스’는 3회에는 ‘노회찬을 왜 좋아하셨나요?’를 다룬다는 예고를 내놨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다양한 팩추얼 장르의 다큐를 시도한다고 했지만 아마도 인물을 담는 다큐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고 설리 다큐를 통해 보는 것처럼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는 인물 다큐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인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예의를 놓친 인물 다큐가 갖는 위험함과 불편함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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