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예’, 지수는 과연 주연급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치명 멜로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1990년대 김희선 주연 스타일의 <세상 끝까지> 같은 비극적 멜로가 떠오르는 이 작품에는 당연히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여자주인공은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지만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내가예>의 오예지(임수향) 역시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 엄마의 딸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덮어쓰고 사는 여주인공이다. 거기에 그녀를 길러준 고모 오지영(신이)은 조카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학대한다.

반면 남자주인공들과의 삼각관계도 필수다. 여기는 미묘하게도 오예지와 그녀의 남편 서진(하석진), 그리고 시동생 서환(지수)이 얽혀 있어 위험한 줄타기의 감정선이 있다. 오예지를 맨 처음 마음에 둔 건 고교생 서환이었다. 교생 선생님이었던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예지의 상처를 보듬고 결혼으로 이끈 운명은 형 서진이었다. 서환은 연모의 마음을 접고 착한 시동생으로 남는다. 이후 레이서 서진이 미국 경기 중에 실종된 후, 이야기는 또다시 흔들린다. 서환은 형수 오예지에게 다시 애틋한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

<내가예>는 전체적인 구조상 은근히 상투적이면서도 자극적이어서 자칫 3류 멜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내가예>는 특유의 아련하면서도 감성은 넘치지만 동시에 긴장감 있는 연출로 드라마의 치명 멜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드라마와 어울리는 음악들도 손꼽을 만한 장점이다.

또 배우 임수향은 그녀의 데뷔작 SBS <신기생뎐> 이후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 많은 여주인공을 연기해낸다. 임수향은 사실 배우의 개성으로 캐릭터를 만들기보다 드라마의 캐릭터 감정을 잘 끌어내는 배우다. 그 때문에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강미래나 <우아한 가>의 모석희와 <내가예>의 오예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느껴진다. 또한 극 초반 호박잎 우산 쓰고 비 맞고 가는 청승맞은 연기까지 해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치명 멜로 특유의 항마력필요한 몇몇 장면을 느낌 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서진 역의 하석진 역시 <내가예>를 통해 본인의 새로운 매력을 대중들에게 보여줬다. 사실 하석진은 로맨틱한 왕자님보다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김준구처럼 여주인공 괴롭히는 주인공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언가 여주인공을 심리적으로 쪼아대는 이성적으로 나쁜 남성의 캐릭터를 이 젊은 배우는 굉장히 잘 연기해 왔다. 반면에 하석진의 로맨스 연기는 그에 비해 다소 무미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예>에서 하석진은 적역을 맡았다. 무뚝뚝하면서도 내 여자에게는 은근히 다정한 남자 서진 캐릭터와 굉장히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예>에서 하석진은 본인의 장점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 서진이 오예지의 고모인 악역 오지영을 쪼아대며 오예지를 보호해 줄 때 무언가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가예>의 지수는 서진의 동생 서환에 어울리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지수의 장점은 아름다운 화초 같은 젊은 남자배우가 아닌 아름드리나무 같은 젊은 남자배우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지수는 그림처럼 잘생긴 배우들이 갖지 못한 어떤 순박한 매력이 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양아치스럽지는 않고, 큰 덩치를 지녔지만 둔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 매력 덕에 그는 데뷔작 MBC <앵그리 맘>의 고교생 고복동으로 등장했을 때 굉장히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좋았다. 지수의 고복동은 큰 피지컬에 센 척하는데, 은근히 여자 앞에서 머쓱해서 귀여운 남자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예>의 서환 역시 이런 지수의 장점을 보여주기에는 썩 괜찮은 인물이다. 고교시절의 첫사랑을 연모하다, 형의 죽음 이후 다시 그녀에게 돌진하는 캐릭터기 때문이다. 다만 고교생에서 시작해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만큼 좀 더 섬세한 감정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다.

지수는 이런 서환을 완벽하게 보여주기에는 아직 배우로서 지닌 단점들이 있다. 그의 뜨거운 고구마 입에 문 것 같은 발음은 종종 중요한 감정에서의 대사를 우물대며 놓쳐 버린다. 아이돌출신 스타도 아닌데 배우로서의 기초적인 부분들이 아직 몸에 잘 배어 있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특히 기초가 부족한 이런 면은 전형적인 연기가 필요한 <달의 연인-보보경심> 같은 사극에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비춰졌다.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그에게 믿음직한 피지컬 외에 믿음직한 연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어떤 순간에는 아직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 연기 역시 아주 큰 강점을 보여주는 장면 외에는 많은 부분들의 대사가 지닌 감정선을 보여줄 줄 모른다. 그런데 <내가예>에는 무척 좋은 교사가 있다. <내가예>에서 오지예의 엄마 김고운으로 등장하는 김미경이 얼마나 일상적인 대사를 잘근잘근 씹어 자연스레 표정과 말투로 감정을 불어넣는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예>의 서환은 지수가 본인의 매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특히 서환이 오예지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폭발할 때, 이 배우만이 지닌 강점이 드러난다. 앞으로 이 감정 아래 좀 더 섬세하고 정교한 연기가 가능하다면 지수는 그 또래의 배우들 중 꽤 독보적인 개성 있는 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 싶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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