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내, 쿨내, 풋내, 단내...‘청춘기록’ 박보검의 네 가지 맛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뭔가 감각적인 청춘물로 포장됐으나 tvN ‘청춘기록’은 JTBC ‘이태원 클라쓰’와는 방향성이 전혀 다른 드라마다. ‘청춘기록’은 사실 홈드라마에 가까운 정서를 갖고 있다. 주인공 사혜준(박보검)만이 아니라 혜준의 가족이나 원해효(변우석)의 모친 김이영(신애라)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청춘기록’을 질주하는 청춘물로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이 드라마가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사혜준이 모델에서 배우로 단계를 밟아가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만이 드라마의 중심은 아니다.

사실 ‘청춘기록’은 가족 혹은 가족 아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며 사랑과 신의 같은 감정을 쌓아가는 삶을 지켜보는 작품이다. 이 역시 홈드라마의 플롯과 비슷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청춘기록’은 사혜준과 안정하(박소담)의 것만이 아니라 등장인물 대다수의 것일 수도 있다. 실제 사혜준의 할아버지 사민기(한진희)는 노년의 나이에 청춘 못지않은 시니어모델에 도전한다. 또 사혜준의 부모 한애숙(하희라)과 사영남(박영수)은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써내려간 ‘청춘기록’을 아들 사혜준을 통해 재조정하고 다시 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청춘기록’이 트렌디한 향취를 풍기는 건 연출이 드라마를 다루는 방식이다. ‘청춘기록’은 따스하지만 은근 고루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굉장히 감각 있게 포장해 낸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홈드라마와 청춘물의 감각을 모두 느끼면서 이 이야기를 즐기고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인공 사혜준 역에 배우 박보검을 캐스팅한 것은 탁월했다. ‘청춘기록’은 다양한 군상의 모습을 다루지만 박보검이 연기하는 사혜준이 그 중심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더구나 사혜준은 메이크업아티스트이자 사혜준 ‘덕후’인 안정하와 로맨스만 잘 끌어가면 되는 역할이 아니다.

가족 안에서 겉멋 든 한량 취급 받는 막내아들 사혜준이 있고, 사회생활에서는 한때 톱모델이었으나 지금은 잊혀져가는 사혜준이 있다. 동시에 사혜준은 또래 친구이자 동료인 원해효와의 우정 서사도 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많아 주연배우로서는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각기 다른 형태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난코스 역할이기도하다. 하지만 배우 박보검은 본인의 장점인 미묘하게 다른 표정과 연기를 보여주며 이 어려운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박보검이 사혜준으로 ‘청춘기록’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짠내, 쿨내, 풋내, 단내 연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가족 서사에서 잘 보여주는 것은 구박받는 막내아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짠내 연기다. 우리가 ‘응답하라 1988’ 시절부터 보아왔던 것처럼 박보검은 짠하게 울지만 그 자체가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청춘기록’에서도 아빠와 큰형에게 인정받지 못해 속상해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짠내가 뚝뚝 떨어진다.

직업이 모델인 만큼 무대 위에서의 그를 보여줄 때는 시크한 ‘쿨내’가 느껴진다. KBS ‘너를 기억해’의 사이코패스 정선호에서 냉랭한 광기를 덜어낸 쿨내 정도겠다. 한편 친구들과의 우정 서사에서는 환한 웃음으로 풋풋한 매력을 드러낸다.

반면 ‘청춘기록’에서 박보검이 보여주는 달콤한 단내 연기는 조금 미묘하다. 그는 많은 로맨스물의 남자주인공들이 범하는 오류처럼 너무 달콤해서 느끼함으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보검은 ‘청춘기록’에서 수없이 많은 달콤한 장면을 그려내야 한다. 더구나 작가의 욕심이 지나쳤는지 ‘청춘기록’의 사혜준은 안정화의 로맨스만이 아니라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은근히 달콤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사실 박보검의 사혜준은 가족 중 가장 가까운 사이인 할아버지 사민기와의 사이도 달달하다. 하지만 이 달달함에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약간의 짠내도 들어 있다. 엄마 한애숙과 은근히 서로를 챙겨주는 달달한 분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매니저 이민재(신동미)에게는 은근히 쿨한 달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로맨스의 중심인 안정하의 관계에는 단내의 비율이 처음부터 높은 것은 아니다. 사해준이 처음 안정하에게 친구로서 다가갈 때는 쿨내에 그도 모르는 약간의 단내가 묻어 있다. 안정하를 친구 아닌 다른 감정으로 미묘하게 느낄 때는 풋내에 단내의 밀도가 조금 더 높아진다. 이처럼 박보검은 다른 감정의 연기에 조금씩 달콤함의 비율을 높이면서 시청자로 하여금 로맨스의 진전관계를 서서히 느끼게 해준다.

그 때문에 ‘청춘기록’의 로맨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의 로맨스 서사와는 달라진다. 과거 “애기야!”라고 상대를 부르며 남자주인공이 밀어붙이는 연애가 아니다. 남자주인공도 조금씩 로맨스 감정의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을 보여줄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박보검은 그런 미묘한 감정의 발전을 표정과 느낌으로 기록할 줄 아는 흔치 않은 젊은 배우다. ‘청춘기록’이 그것을 증명하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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