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선보이는 한국형 SF 판타지의 성공 가능성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는 한국형 SF 판타지의 성공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앨리스>2050년 시간 여행자들이 머무는 공간 앨리스를 배경으로 2020년의 사건들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형사 박진겸(주원)2020년 의문의 살인사건과 실종사건들을 겪는다. 이 사건은 2010년 사망한 그의 어머니 박선영(김희선)과도 이어져 있다. 그런데 진겸은 미래에서 온 것 같은 이상한 카드 때문에 물리학자 윤태이(김희선)를 찾아가마자 깜짝 놀란다. 그녀가 바로 어머니 박선영과 똑같은 외모이기 때문이다.

한편 진겸은 윤태이와 함께 시간 여행자 유민혁(곽시양)의 정체를 파악하지만, 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 두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는 더 복잡한 사건으로 얽혀들게 된다. <앨리스>는 외계인이 나타나 뿅뿅거리다가 사라지는 쉬운 SF는 아니다. 시간여행이 등장하고, 평행세계 이론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윤태이나 석오원(최원영)은 거의 해설자에 가까운 대사를 읊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앨리스>의 장점은 오히려 해설의 친절함에 있다. 시청자들이 <앨리스>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 못해도 스토리의 흐름은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적정선의 이해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한국의 SF 작품들이 미래 배경에 충실한 설명보다 화려하고 특이한 비주얼에 집중했다. 하지만 <앨리스>SF의 뼈대를 갖춘 비주얼에 적절히 만족하면서, 그 대신 세계관을 해설하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데 공을 들인다.

또한 기존 드라마와 달리 <앨리스>는 작가 특유의 감성이나 재치가 느껴지는 대사나 상황들은 모두 빼버린다. 이는 어쩌면 공동작업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 <앨리스>는 흔히 말하는 대사발에 집중하기보다 합이 맞는 퍼즐처럼 적절하게 서사를 이어가기 위해 애쓴다.

그렇기에 <앨리스>‘SF-미스터리-수사물(형사놀이)-코미디-로맨스-SF’를 적절히 튀지 않게 배분하면서 반복한다. 이 방법 역시 나쁘지는 않다. 낯선 SF 장르와 미스터리 장르를 기반으로 생각보다 별 것 없는 수사물이 양념처럼 배어든다. 여기에 한국식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에게 알맞은 코미디와 로맨스도 적절히 뒤섞는다. 거기에다 <앨리스>의 메시지는 누구나 울컥할 수 있는 엄마-아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신파적 감성이 묻어 있다. 그 때문에 비록 한드 특유의 수다 넘치는 대사는 없지만 의외로 시간여행과 평행우주를 다루는 SF <앨리스>를 보는 일은 일반적인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앨리스>의 코미디와 로맨스는 가끔 너무 전형적일 때가 있다. 두 형사가 윤태이의 동생 태연을 보고 반하는 장면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는 대사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대로 외국 영화의 코믹 장면에서 복사해서 붙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외에도 <앨리스>의 유머코드는 너무 빤한 감이 있다. 물론 그래도 적당히 웃기기 때문에 제 몫은 한다. 심지어 박진겸의 물결무늬 말투나 <텔미> 댄스은 의외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문제는 박진겸과 윤태이 사이에 미묘하게 흐르는 로맨스 장면들이다. 여기에 박진겸을 좋아하는 기자 김도연(이다인)이 끼어들어 코미디로 바뀌기도 한다. 다만 이 로맨스와 로맨스에서 파생된 코미디는 김희선의 1990년대 <미스터Q>의 재탕처럼 너무 빤한 방식이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아무리 <앨리스>가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라지만 당연히 박진겸과 윤태이 사이에는 미묘하게 흐르는 감정의 기류가 필요하다.

<앨리스>는 하지만 그 미묘한 순간의 느낌들을 너무 많이 삭제하고 로맨스의 골조만 남겼다. 그러다 보니 너무 전형적인 로맨스 유발 장면들만 이어진다. 이처럼 <앨리스>의 로맨스 구간은 주인공들의 감성 연기에 비해 딱히 공감도 안 가고 사족처럼 느껴지기 일쑤다. 오히려 재빨리 이 장면을 탈출해 시간여행 예언의 서에 대해 이야기로 빨리 달아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이미 <앨리스>의 시간여행 방식에 익숙해졌으니, 이제 속도를 높여 본궤도에 올라도 충분하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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