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언니’, 볼수록 매력적인 이 여성예능의 무한한 가능성

[엔터미디어=정덕현] 씨름선수 양윤서가 지난해 초 갈비뼈 연골이 파열돼서 슬럼프를 겪었다는 이야기를 슬쩍 꺼내놓는 한유미는 박세리에게 슬럼프 극복을 위한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박세리는 진심을 담아 기대치와 부담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조금 낮춰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해준다.

그런데 남현희가 거기에 더해주는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때 뛰어가면 못 보고 놓치고 가는 것들이 많잖아. 위험하기도 하고. 걸어가면 많이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그건 마치 스포츠 선수들이 겪기도 하는 슬럼프 극복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자 박세리는 1박2일 동안 ‘유미투어’로 마음껏 웃고 떠들고 했던 그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런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슬럼프 극복에도 삶에도) 중요하다는 것. 한유미는 자못 진지하게 “너무 도움 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하며 영혼은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던지고 그 모습에 모두가 빵 터진다.

E채널 <노는 언니>의 이 풍경은 이 볼수록 매력적인 여성예능이 아니면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스포츠선수들이라는 공유지점을 갖고 선배가 후배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며 또 나아가 스포츠에 빗대 우리네 삶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너무나 친해져 선후배라고 해도 서로 툭툭 건드리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이 광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흡족하게 만든다.

사실 <노는 언니>는 많은 설정들이나 미션 같은 것들을 뺐다. 그래서 이번 유미투어나 지난 번 박세리네 집들이,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낸 캠핑 특집들은 어떤 면으로 보면 계속 되는 먹방의 연속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굉장히 먹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세리 덕분에 한유미는 노는 언니가 아니라 먹는 언니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갈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들이 그 솔직한 면모만으로 깨 나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여성의 모습’이 가진 틀 때문이다. 먼저 ‘먹는 언니’라고 해도 될 법할 정도로 ‘먹는’ 이미지는 물론 ‘먹방’ 등을 통해 몇몇 여성 연예인들이 깬 이미지지만, 이들은 스포츠선수로서 늘 체중조절에 신경 써야 했던 그 상황이 더해져 훨씬 더 큰 카타르시스로 다가온다.

여성들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옷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들이나,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 생리에 대한 이야기 등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던져지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런 이야기들을 금기시했던 어떤 것들이 오히려 그걸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는 걸 이 여성예능은 그들의 진솔한 대화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키가 커서 기린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한유미는 그 큰 키에 의외로 싱거운 면모들을 보여줘 웃음은 물론이고 점점 인간적인 매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김치찌개 하나를 제대로 못 끓여 조미료를 잔뜩 넣는 모습이 그렇고, 본인이 했던 배구를 빼고 나면 다른 경기에는 영 재능이 없어 보이는 허당기도 그렇다.

양 어깨가 떡 벌어진 정유인과 이번 ‘유미투어’에 함께 참여한 씨름선수 양윤서가 호텔에서 벌이는 띠씨름 같은 장면은 ‘여성의 근육’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 모습이 멋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들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와인을 호텔 바에서 마시고 고즈넉한 한옥에서 명상과 요가를 하며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명절 분위기를 내지만, 금세 드레스를 입은 채 회식 분위기를 만들고, 한복을 입고도 승부욕이 올라 한껏 치마를 들춘 채 제기를 차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히 새로운 미션을 보여주진 않지만 이들이 하는 말과 행동들은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여성들의 역할이나 상을 자연스럽게 깨주고 있다. 그러면서 여성 스포츠인이라는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언니 동생 같은 편안한 사이가 주는 좋은 영향도 전파된다. 이 여성예능이 의외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여겨지는 이유다. 언니들의 조언 덕분인지, 아니면 1박2일 간 신나게 하고픈 대로 풀어낸 효과인지 양윤서 선수는 추석에 열린 씨름대회에서 매화급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슬럼프를 극복했다.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의 코너 ‘헐크토크’에서 정덕현 평론가가 박세리를 중심으로 여성 스포츠인들이 맹활약하는 ‘노는 언니’를 진단하고 헐크지수를 매겨봤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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