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뎐’은 tvN 판타지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남자 구미호다. tvN 새 수목드라마 <구미호뎐>KBS <전설의 고향>에서 그토록 많이 리메이크되고 재해석됐던 구미호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그런데 특이한 건 구미호가 남자라는 것. 지금껏 봐왔던 여성 구미호와는 캐릭터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야기도 달라진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현대라는 점 역시 <구미호뎐><전설의 고향>보다는 <트와일라잇>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과 대결하거나 공존해가는 스토리에 더 가깝게 만들고, 그것은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 잘 차려입은 수트에 비를 몰고 다니는 캐릭터 성격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우산. 그리고 그 우산이 무기로 변해 이랑(김범) 같은 이연의 배다른 동생과 벌이는 액션은 우리식 전설의 이야기보다는 외국의 슈퍼 히어로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건 이런 해외의 슈퍼히어로물이나 <트와일라잇> 같은 판타지물의 색깔을 가져와 우리네 토속적인 전설이나 민담 속 주인공들을 재해석해 놨다는 점이다. 구미호 이연이 한 결혼식장을 찾아가 제거하는 신부는 알고 보면 우리가 구전동화 속에서 읽곤 하던 여우 누이. 맑은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우산을 홀로 쓰고 결혼식장을 찾는 이연은 왜 갑자기 비가 오냐고 말하는 이들에게 혼잣말로 여우가 시집을 가서라고 말한다.

그런 대목은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구전동화 속에 등장하는 스토리지만 거기 나왔던 캐릭터들이 현대에도 인간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다. 첫 화에 등장하는 여우고개는 인간과 여우 같은 색다른 존재들이 부딪치는 공간이고 그래서 사고가 벌어진다. 여우들은 인간세계에 들어와 인간들에게 해악을 미치기도 하는데, 구미호 이연은 과거 사랑했던 한 여인 아음을 환생시키기 위해 그런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을 단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여우의 이야기는 구미호의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고, ‘은혜를 갚는다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연이 은혜를 갚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곳은 현재의 공간에 숨겨진 이른바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라는 구체적으로 구현된 판타지 건물에서다.

이런 현실과 판타지가 한 세계 위에 겹쳐진 공간은 이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호텔 델루나>에서 성공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아마도 tvN표 판타지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이런 공간의 구현은 점점 그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는 느낌이다. <구미호뎐>은 그런 점에서 이런 전작들의 수혜를 그대로 입고 있다.

무엇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할로 도깨비만큼 존재감을 보였던 이동욱은 이 드라마의 개연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독보적인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는 김범의 캐릭터 역시 기대되는 대목이다. 조보아가 연기하는 남지아라는 캐릭터는 이연과의 인연으로 엮어질 운명으로 겁 없는인물의 매력을 가졌지만 처음부터 이연의 존재를 시험하기 위해 고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장면은 좀 과한 느낌도 준다. 물론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처럼 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수의사의 모습으로 이연을 도와온 토종여우 구신주(황희), 삼도천 문지기 탈의파(김정난), 야생동물이었지만 학대를 당하다 이랑에 의해 자유를 얻은 기유리(김용지), 설화 속 주인공이 한식당 사장으로 등장하는 우렁각시 복혜자(김수진) 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을 현대식으로 해석해낸 부분이다.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확실히 <구미호뎐>을 보면 tvN 판타지가 이제 하나의 계보를 이야기할 정도로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이 보여준 독특한 미적 분위기들이나 톤 앤 매너, 세계관이 일관되게 <구미호뎐>의 독특한 세계를 많은 설명 없이도 설득하게 해주는 면이 있어서다. 그래서 기대감은 당연히 커진다. 다만 그만큼의 부담을 떨쳐내고 그 작품만의 색다른 이야기나 메시지를 과연 <구미호뎐>이 얼마나 흥미롭게 담아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첫 단추는 일단 잘 꿴 느낌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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