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무난한 액션·로맨스에 남는 웃음에 대한 아쉬움

[엔터미디어=정덕현] 애초 007 제임스본드를 기대한 시청자들은 없을 거다. 드라마로서 그만한 블록버스터 액션을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방식이 투자 대비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MBC 수목드라마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최근 들어 코미디와 액션, 멜로가 섞인 스파이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예를 들면 2015년 상영된 멜리사 맥카시와 제이슨 스타뎀가 나왔던 <스파이> 같은 영화나 2013년 방영됐던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드라마 <스파이> 같은.

이들 새로운 스파이물들은 사실 냉전 체제에 가장 흥미로웠던 007 시리즈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던 작품들이다. 스파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갖게 되는 살풍경한 상황과 그것보다 더 절실해진 일상이 더해짐으로써 액션과 코미디 그리고 멜로가 자연스럽게 엮어지는 그런 작품.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강아름(유인나)의 전 남편 전지훈(문정혁)은 인터폴 비밀요원이다. 산업스파이들을 추적하는 그는 작전 중 강아름을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고 연애 없이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전지훈을 여행작가 정도로 아는 강아름은 그가 전쟁 지역까지 들어가 죽음을 불사하고 사진을 찍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그건 작전 수행이었지만.

결국 그런 전지훈을 견디지 못한 강아름은 이혼을 선택하고 좀 더 안정감을 주는 남자 데릭현(임주환)과 재혼한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전지훈과 강아름은 소피(윤소희)를 매개로 다시 만나게 된다. 태양광 사업의 기술을 갖고 있던 소피는 전지훈의 정보원이자 강아름의 절친이다. 그런데 모종의 인물들에게 쫓기다 결국 살해당하게 되고 이로써 전지훈도 강아름도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서로 이유는 달라도 소피의 죽음은 전지훈과 강아름을 다시 공조(?)하게 만든다.

그런데 강아름이 재혼한 남편 데릭현이 어딘가 수상하다. 아마도 소피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고, 사업으로 위장되어 있지만 강아름 몰래 무언가를 벌이고 있는 듯한 냄새를 풍긴다. 어쩌면 강아름과 재혼한 것조차 어떤 의도를 의심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 이 부분에서 전 남편인 전지훈과 재혼한 남편인 데릭현 사이에서 강아름이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동시에 멜로의 향기가 묻어나게 된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이나 밀고 당기는 강아름과 전지훈의 멜로가 적당한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굉장히 새롭거나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크게 집중하지 않고 보면 또 보게 되는 무난한 그런 작품. 특히 정체를 숨기고 있는 전 남편이나 현 남편들이 강아름 뒤에서 벌이는 치열한 대결이나 이로 인해 생겨나는 멜로 감정의 변화는 향후 이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애초 엄청난 액션이나 대단히 색다른 멜로를 기대한 건 아니기 때문에 큰 실망은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코미디적인 요소들이다. 깨알 같은 웃음들이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면 아마도 시청자들에게는 더더욱 기분 좋은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신부를 위한 브라이덜 파티에서 카우보이 복장을 입고 춤을 추는 문정혁의 모습 정도의 코미디는 다소 약하게 다가온다.

또한 웃음과 함께 인물들을 통해 일상의 문제들을 판타지로 풀어내는 고민도 해볼 법하다. MBC에서 요원을 담은 코미디로 괜찮은 성공을 거뒀던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런 점에서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도 충분했지만 육아에 대한 공감대가 컸기 때문에 <내 뒤에 테리우스>는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아직까지 이런 현실적인 공감대가 잘 보이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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