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라는 괴작, 개연성 떨어져도 끝까지 보게 된 건
‘앨리스’, 너무 많은 설정들이 무너뜨린 개연성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느새 16부 마지막회에 다다랐다. 사실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는 시작부터 그 복잡한 세계관을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할 것인가가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2050년에서 과거로 날아온 미래인들의 시간여행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되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타임 패러독스의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래인이 과거로 날아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거나 그의 삶을 변화시키면 그건 미래인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게 타임 패러독스가 생기는 이유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드라마는 시간여행과 더해진 평행세계의 이야기를 덧대 놓는다. 그래서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미래인과 과거인은 다른 존재라고 설정한다. 그래서 실제로 미래인이 과거로 넘어와 과거의 자신을 죽인 후 그를 대신해 살아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시간여행만의 설정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평행세계를 더해 풀어내려 했던 것.

평행세계는 일종의 가능성의 세계. 그래서 똑같은 한 인물이라고 해도 그가 순간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들이 다르다. 그 가능성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은 그래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같은 인물이 아니다. 결국 우리도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던가. 평행세계는 그런 다른 선택을 한 나의 가능성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앨리스는 그래서 시간의 중첩에 공간적 의미까지 얹어 놓음으로서 미래인과 과거인 사이의 부딪침과 파국을 그려내려 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오면서 앨리스양자얽힘현상(한 번 짝을 이룬 두 입자들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또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즉 과거로 날아가 박진겸(주원)의 어머니인 박선영(김희선)을 만나고 온 윤태이(김희선)가 자꾸 그 박선영의 기억과 이미지들을 떠올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윤태이는 점점 박선영의 영향을 받고, 박진겸 역시 과거 어머니를 죽인 박진겸(또 다른 박진겸이다)과 대적한 후 그와 자신을 혼동해 윤태이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 윤태이가 박선영으로 변하는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목 뒤에 없던 박선영의 오메가 표식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박진겸에게 진겸아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 그래서 과거 박진겸을 오열하게 만들었던 어머니 박선영의 죽음을 이번에는 그가 되어버린 윤태이가 맞게 된다.

사실 이런 다양한 양자이론과 평행세계의 설정들을 일일이 이해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드라마가 그려내는 개연성의 틀들을 그 설정 자체가 깨는 파격이 연달아 벌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온 같은 인물이 한 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고, 심지어 대립하기도 하며 죽이기도 하는 이야기나, 정방향으로 흐르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되돌아가거나 혹은 멈춰 세우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차원에 있는 인물과의 접촉으로 인해 그 인물이 되어버리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들은 시간과 공간의 축에 논리적 전개를 통해 납득되기 마련인 개연성을 파괴한다.

그래서 <앨리스>는 시청자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괴작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하며 예측을 깨고 변화해가는 이야기에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앨리스>는 이런 개연성이 깨진 세계를 설득하는데 있어서 그리 성공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예 설득을 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16부 마지막 회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그래서 다른 부분에서 찾아진다. 일단 개연성이 깨지는 파격적인 장면들이 주는 충격이 그 하나이지만,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그래도 일관되게 느껴지는 인물들의 감정들이 연기자들을 통해 잘 전달되고 있어서다. 어떤 상황인지 납득하긴 어려워도 엄마를 잃은 아들로서의 박진겸의 슬픔과, 또 다시 그 엄마가 되어 박진겸을 살려내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윤태이의 장면이 만들어내는 슬픔 같은 감정들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또 미래인 유민혁(곽시양)이 윤태이를 위해 죽음을 맞이하고 그 때 나타난 박진겸이 죽어가는 그의 손을 잡아주는 대목에서는 상황의 복잡함을 떠나 부자지간인 두 사람의 감정이 전해진다.

그래서 ‘앨리스’가 이 개연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관을 갖고도 끝까지 시청자들을 끌고 온 힘은 그래도 익숙한 인물들의 감정선과 이를 잘 끄집어낸 김희선과 주원 등 연기자들의 공이 우선이다. 그리고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이어붙인 이야기 전개가 가진 힘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좀 더 촘촘하면서도 쉽게 이 세계를 설명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너무 많은 설정들이 끊임없이 필요할 때마다 등장해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았기 때문에 개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가 뒤로 갈수록 괴작으로 느껴지게 된 이유다.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의 코너 '헐크토크'에서 정덕현 평론가가 방부제 미모에 돋보이는 연기력을 더한 김희선이 이끄는 드라마 ‘앨리스’의 헐크지수를 매겼습니다. 평행세계, 시간여행 등 어려운 내용을 신파코드 등을 활용해 익숙하게 펼치는 ‘앨리스’의 헐크지수는 몇 대 몇일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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