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 출신 중국 연예인들의 항미원조 기념 글 부적절하다
글로벌 K콘텐츠와 로컬 민족주의의 부딪침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이른바 항미원조 전쟁(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 70주년으로 부른다. 최근 미국과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은 그래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망령을 다시금 꺼내놓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다룬 영화 <금강천>이 이틀 만에 입장 수입 400억 원을 넘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1970년대 애국주의 반공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그런데 중국이 이렇게 유난한 애국주의를 끄집어내면서 이러한 국가주의는 엉뚱하게도 최근 글로벌해지고 있는 K콘텐츠들과 마찰음을 일으키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주는 상인 밴 플리트상을 받으면서 리더인 RM이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분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한 말을 중국은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다 억측을 부렸다.

상의 특성상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을 중국의 민족주의 성향 매체인 환구시보는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중국 네티즌들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서 방탄소년단의 뉘앙스를 가져와 “방탄소년단이 중국에서 총을 맞았다”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후 이런 아전인수격의 중국의 반응은 국제사회의 역풍을 맞았다.

미국 동아시아 정치경제 전문가 네이선 박은 “중국이 K팝 거인 BTS에 싸움을 잘못 걸었다”며 “빈약한 중국의 소프트파워만 노출했다”고 꼬집었고, 뉴욕타임스는 “중국 네티즌들이 BTS의 악의 없는 발언을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나빠지자 중국은 관영매체의 이 책임을 한국 언론의 선정적 보도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환구시보의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송혜교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중국 헤이룽장성 하이린시에 있는 한중 우의공원 내 김좌진 장군 기념관에 부조 작품을 기증한 걸 극찬하는 기사를 냈다. “중국인의 감정을 존중한 보답으로 이 여배우는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했고 심지어 “송혜교에 대한 중국 팬들의 반응은 방탄소년단 때와는 크게 대조된다.”고 썼다.

이를 두고 방탄소년단으로 생겨난 한중 갈등 상황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방탄소년단의 경우도 송혜교의 경우도 사실 중국을 의식한 말이나 행보는 전혀 아니었다. 방탄소년단은 당연히 시상에 맞는 할 말을 한 것이고, 송혜교는 늘 서경덕 교수와 해왔던 일을 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중국은 정치적인 의도가 섞인 아전인수로 그걸 해석하고 억측을 부렸던 것이다. 중국 측의 그 어떤 비난도 칭찬도 꺼려지는 대목이다.

사실 문화는 정치와 역사 등 국가 간의 소통이 쉽지 않은 고리들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맞지만, 최근 일본이나 중국의 행보는 문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지극히 부적절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탄소년단이나 송혜교처럼 그 어떤 의도도 없는 말과 행동들조차 제멋대로 해석되어 저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K팝 아이돌 출신 중국인 연예인들이 항미원조를 기념하는 글을 중국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일을 적어도 그들의 성장에 발판이 된 한국을 염두에 둔다면 지극히 부적절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건 물론이고 이로써 양국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이 시기에 ‘항미원조’를 기념하는 글을 내는데 있어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통해 글로벌한 인지도를 쌓은 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건 너무나 뻔뻔한 행태가 아닐까.

근본적으로 보면 이 사태는 점점 글로벌해지고 있는 문화의 장이 여전히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로컬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망령과 부딪치고 있어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 일들은 그래서 더더욱 문화라는 연결고리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의해 우리가 겪었던 20세기의 비극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를 소통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문화와 문화인들의 올바른 역할이 얼마나 필요한 시국인가.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에서 정덕현 평론가가 칭찬도 비난도 다 씁쓸하다며 중국의 뜬금없는 BTS 힐난과 속보이는 송혜교 상찬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M, 빅히트, 웨이보, 서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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