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행’, ‘나는 자연인이다’의 예능인 버전으로는 답이 없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예능 평론 혹은 칼럼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플랫폼 산업이나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전망과 분석이 아닌 TV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콘텐츠에서 느낀 감성, 사회적 맥락에서의 의미 등등 시청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애초에 논의로 이어가기 어려운 예능들이 있다. 외면 받는 이유나 잘 되는 이유가 너무나 명백하거나, 시청률 수치도 꾸준하고 나름의 재미와 인기는 유지하지만 초기의 새로움이나 색다른점이 무뎌졌거나, 관성의 힘으로 작동하는 장수 프로그램들, 이를 테면 토요일에 편성된 예능들이 주로 그런 예다.

그런 점에서 MBC <안 싸우면 다행이야>는 많은 관심을 받으며 편성된 토요 예능의 신성이다. 특히나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파일럿으로 인해 정규편성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첫 회의 나쁘지 않는 시청률(현재 최고 시청률)이 말해주듯 그 기대감은 현실화됐다. 파일럿에 이어 다시금 무인도를 찾은 이영표와 안정환은 다시 한 번 고전 만화영화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성실하면서도 꾀돌이답게 똑소리나게 무인도 생활을 해낼 것 같은 이영표의 허당끼와 능글맞음이 또 한 번 드러났고, 안정환은 툴툴 대고, 불만은 제때 표출하는 편이지만 그 밑에 짙게 깔린 너른 품의 인간미가 다시 한 번 도드라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장면들은 파일럿만큼 화제가 되지 못했다. 리바이벌에 그쳤기 때문이다.

파일럿이 터질 수 있었던 것은 국가대표 선후배지만 현재 지상파 방송사의 대표 축구해설위원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이영표와 안정환을 한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단 점이었다. 확연히 다른 중계 스타일만큼 캐릭터가 상반되는 안정환과 이영표가 단 둘이 한 화면에 있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과연 그 둘이 무인도에서 살아가야 한다니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대할지, 잘 지내기는 할지 몹시궁금했다. 여기서 <안 싸우면 다행이야>의 핵심이 도출된다. 중요한 것은 무인도도, 자연인도 아니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관계와 그림이 전개된다는 기대다.

그런데 아쉽게도 두 번째 듀오인 박명수와 하하 편이 끝난 지금, <안 싸우면 다행이야>는 파일럿과 달리 매우 익숙한 포맷의 예능이 되고 있다. 현지에서 채집한 제철 음식을 맛보는 먹방을 강화한 MBN <나는 자연인이다>의 예능인 버전이다. 전설의 <무한도전> 멤버인 박명수와 하하가 함께한다는 설정 자체는 호기심을 끌 구석이 있었으나, 예능에서 (본인 말 그대로) 방귀 좀 뀌고, 단련된 이 둘은 그간 보여주던 모습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이 둘만이 함께 만드는 시너지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많이 듣던 <무한도전>에 대한 그리움, 그 시절의 회상 이외에 둘이 붙어서 나타나는 이른바 케미나 기대되는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볼거리는 먹방과 자연인 생활 체험으로 집중됐다. SBS <정글의 법칙>을 보는 듯한 채집 활동, 자연인과 하룻밤을 보내며 정을 쌓는 감성 코드, 먹방 과정에서 쏟아진 찬사가 주요 볼거리였다. 물자 귀한 섬에서 삽을 두 개나 부러뜨리고, 낚시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자연산 해풍에 말린 우럭, 몸소 캔 바지락으로 만든 전, 통발에서 건진 재료로 만든 게국지, 장어 요리, 미역과 바지락 넣고 끓인 라면 등 자연인의 창고에서 가져온 음식들과 어렵게 채집한 재료들로 나름 다채로운 쿡방과 먹방을 펼쳤다. 물론 자연인에 대해 알아가고, 셋 모두 서로 조심하며 인간적으로 다가서려는 이외의 배려에 감동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볼거리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쉽다.

예고편을 통해 다음 주자로 HOT 출신의 토니안과 문희준이 등장한다고 알렸다. 이른바 추억 캐스팅이란 기조가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예상 밖의 조합이 아닌 예능 친화적인 인물들이 선 줄에서 기대보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얼핏 예상되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편적인 반응인 듯하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 전개 방향이 기대와 다르다는 점은 매회 떨어지는 시청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파일럿에서 시청률 8%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던 <안 싸우면 다행이다>는 정규편성도 1회 방송이 5%를 넘겼는데, 지난 방송 1부 시청률은 2.8%로 떨어졌다.

사실상 무인도, 바다, 자연인 콘셉트로는 차별화된 볼거리의 힘을 갖기 힘들다. 갈등이나 싸움이 포인트가 아니라 신선한 인물이 등장해 예상 밖의 조합, 너무나 궁금한 조합에 대한 기대와 긴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안 싸우면 다행이다>는 캐스팅만 잘 하면 된다는, 매우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향이 있다. 물론,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조합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는 건 방송을 만드는 전체 과정 이상으로 힘든 기획이겠지만, 이 부분이 담보가 되지 않는다면 파일럿의 영광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저 그런 평범한 예능이 될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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