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있다’, 가학성을 완전히 배재하지는 못하는 까닭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tvN <나는 살아있다>는 생존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것도 여성 대상의. ‘특전사 중사 출신 박은하 교관과 김성령, 김민경, 이시영, 오정연, 김지연, 우기 6명의 여성 연예인들이 재난 상황에 맞서는 본격 생존 프로젝트라는 설명만 들었을 때는 어떤 기시감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우선 최근 최고의 이슈였던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가 떠오르고 그 다음으로는 이전 MBC 예능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도 뒤를 따른다. 둘을 적당히 뒤섞어 가학적 상황으로 자극성을 높여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는 기획이 아닐까 추정됐다.

하지만 방송을 실제 보면 반전이 있다. <나는 살아있다>는 재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알려주는 생존 정보 전달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화재 시 고층 건물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는 법, 산속은 물론 도심에도 종종 등장하는 멧돼지 피하기, 물에 빠진 침수 차량에서 탈출하는 방법 등 알아두면 분명 도움 될 만한 내용들이 이어졌다.

침수 차량 탈출 경우 유리를 맨손으로 깨기 힘들다는 사실을 특수 훈련을 받은 남자 교관이 해도 잘 안되는 모습으로 보여줬다.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데 비상용 망치가 없는 승용차 경우 좌석의 헤드레스트에 달린 철제봉을 활용해 좀 더 약한 창문의 모서리 부분을 때려 깨뜨리는 과정은 좋은 시청각 교재 역할을 했다.

이 밖에도 야생에서 주위에 흩어진 쓰레기나 잡동사니 중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가리는 법이나 화기 없이 불을 피우는 요령, 그리고 페트병으로 물에 뜨는데 도움이 될 부유 보조 기구를 만드는 방법 등 생존 도구 마련 기술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가 생존 정보만 꽉 채워 전달하는 교양 프로그램은 아니다. 좋은 정보로 시청자들의 호감을 얻는 출발을 해냈지만 가학적으로 느껴질 장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 대한 심리적 대응력이 약한 출연자들이 이겨내기 위해 고통받는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가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고층 건물 화재 상황에서 완강기를 타야 할 때 고소공포증이 있는 김민경, 이시영, 김지연은 편하게 지켜보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울먹이고 선뜻 발을 떼지 못하고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펜싱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김지연은 방송에서 욕설이 터질 정도로 힘들어하고 이를 묵음 처리 해 보여줄 정도였다. 김민경은 이어진 수중 생존 훈련에서 물공포증까지 극복해야 해 거듭 고통 받았다.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는 가학성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가짜 사나이> 등 훈련을 포맷으로 하는 콘텐츠에서 늘 문제가 되는 강압적인 지시나 언어폭력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관들은 배려하고 칭찬도 자주 한다.

앞서 출연진들이 고소공포증이나 물 공포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교관들은 기다려주고 용기를 북돋아 해낼 수 있도록 애썼다. 수중 재난 훈련에 도전하고 있는 김지연을 향해 멤버들을 독려해 국가대표 파이팅을 외치도록 유도하는 교관도 있었다. 얼차려로 보일 수 있는 훈련도 분명한 명분이 있을 때만 실시했다. 수중 생존 훈련을 앞두고 몸 상태를 물속에서 견딜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을 때나, 기타 근력을 높여야 될 상황일 때 한정해 실행했다.

심지어 교관들은 멧돼지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 몸개그를 하며 넘어지거나, 수중 훈련을 앞두고 목봉을 들고 혼자 우스광스럽게 달리는 모습 등 생존 훈련을 앞둔 여성 멤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식사도 도전을 완수하고 나면 도시락을 주거나 아침 식사로 감자와 옥수수를 제공하는 등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19일 방송에서는 개구리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다른 훈련 콘텐츠들에서 종종 등장하는 먹거리 가학성은 드물었다. 개구리 먹기도 멤버들이 처음 기겁하는 반응에 비해 쉽게 적응해 가학적이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살아있다>가 가학성을 최대한 절제하려 애쓰지만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는 것은 예능에서 본질적으로 필요한 극적 전개를 위해서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예능도 드라마처럼 부분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고조되는 분위기의 구성을 통해 시청의 묘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살아있다>는 출연자가 공포감이 압도하는 위기 상황에 도전해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은 극복해내는 과정을 통해 드라마틱한 흐름을 얻고 있다. 고통 받는 출연자의 가학성만은 극복의 대상으로 한정해 방송에 담고 있지만 자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적극적 가학성은 피하고 있는 제작진의 태도는 이해될 여지가 있다.

결국 <나는 살아있다>는 가학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착한 예능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착한 가학이라는 묘한 특성을 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살아있다>는 점차 도시 재난 생존 훈련을 마치고 자연 재난 생존 훈련으로 가고 있는데 생존 훈련이 야생의 강도를 높일수록 일반인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유익한 생존 정보가 줄어들더라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션을 수행해내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감동을 얻는다면 <나는 살아있다>는 정보 제공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착한 예능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나는 살아있다>가 가학성을 남겨 놓았어도 착한 예능으로 종영 후에도 평가받는 남다른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방송분이 궁금해진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