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의 고민 해결이 만든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새로운 시청자를 찾아 힘차게 항해 중인 나영석 사단에게 패션은 흥미로운 소재인가보다. <신서유기> 시리즈의 피오와 송민호가 함께한 <마포 멋쟁이>에 이어 채널 십오야는 두 번째 패션 프로그램 tvN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를 지난 토요일 론칭했다. <마포 멋쟁이>와 마찬가지로 5분 분량의 숏포맷으로, 나영석 사단의 전매특허인 팝업 스토어 예능에 패션 콘텐츠의 한 장르인 메이크오버를 믹스매치했다. 2000년대 한국 남성의 패션 롤모델 배정남이 직원 조재윤과 함께 연희동 어딘가에 고민 맞춤형 남성 전문 옷가게 기쁨라사를 개업하고 예약된 고객들의 고민과 사이즈에 맞춰 직접 사입부터 스타일링까지 맡아 사연 시청자의 패션 고민을 해결한다.

기존 TV예능에서 패션은 마이너한 소재다. 전문 케이블 채널이 아닌 다음에야 주로 단발성 이벤트로 등장했지 패션을 중심에 놓고 만든 예능 자체가 드물다. 그러나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는 배정남이란 독특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예능의 문법을 가져가면서, 크리에이터의 매력과 감성, 실질적 정보 제공 등이 두루 담겨 있는 유튜브 패션 채널을 보는 듯한 재미 또한 동시에 있다.

방송을 매개로 환골탈태해주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은 예전부터 다양한 소재로 전개되어 왔지만, 이번에 특히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모든 출발이 배정남이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다. 잘 알려진 패션 셀럽이자, 옷가게 점원, 관련 사업도 했던 전문 분야에서 원맨쇼를 펼칠 기회가 주어지자, 지난해 <스페인하숙>의 막내일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적 매력과 입담이 제대로 분출한다. 사투리 섞인 어눌한 말투와 독특한 리듬의 직설 화법 속에서 진심을 담은 마음이 전달된다. 방송에 나오는 한 번의 스타일링이 끝이 아니라, 아이템의 활용법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그가 예고편에서 말한 감성을 파는 행복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확실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예능이다 보니, 변화 대상자나 소재에 관심이 없으면 몰입하기 힘든 메이크오버 설정의 약점도 넘어선다. 그보다는 배정남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감각을 보여줄지를 기대하게 된다. 기존 메이크오버 예능들과 가장 큰 차이다. 게다가 유튜브 풀 번전의 경우 방송법상 할 수 없는 브랜드와 가격 공개, 구입처 등등의 정보를 세세하게 알려주는 실질적인 정보를 녹여서 기존 예능 형식을 유튜브로 옮기는 수준을 넘어선 볼거리를 선보인다.

그런 면에서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5분짜리 숏폼으로 방영되는 점이 아쉽다. 5분 내외의 방송분과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올라오는 풀 버전의 재미와 볼거리가 현격하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워낙에 짧은 분량 탓에 이 프로그램의 정수를 보여주는 일반인 신청자 편은 방송으로는 아예 접할 수 없었다. 최근 유튜브 스타가 되면서 다시 방송가로 금의환향한 김치맨’ KCM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팝업 스토어 예능은 새로운 세계로 시청자들을 초대하면서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세계를 보여주고 설정을 소개하는 스토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물리적 분량이 너무 짧다보니 그 실제 가진 매력에 비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적었다. 반면, 유튜브에서 공개되는 풀 버전에서는 조재윤의 합류와 기쁨라사의 오픈 준비 등등 본방의 다소 서먹한 소개를 상쇄하는 스토리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이해와 몰입이 훨씬 쉬웠다.

이처럼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가 기존 나영석 사단의 숏폼 콘텐츠와 가장 다른 점은 유튜브 버전과 본방의 볼거리 격차가 크다는 데 있다. 이전 <라끼남>이나 <이식당> 등의 기존 숏폼 라인업과 달리 유튜브 환경을 기반으로 제작할 때 훨씬 자유도도 높고 볼거리의 충실함을 만드는 차원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실험이 예능 콘텐츠 분량의 대폭 축소나 소재 발굴의 차원이었다면 이번에는 유튜브 환경에서 보다 어울리는 확실한 재미와 볼거리가 있는 콘텐츠를 갖고 나왔다.

이를 계기로 나영석 사단, ‘채널 십오야의 숏폼 콘텐츠 실험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경우처럼 콘텐츠의 매력을 담아내기에 숏폼 편성이 갖는 경쟁력이 여러모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5분이라는 짧은 호흡의 편성이 기존 TV가 잃은 경쟁력인지, 단순히 방송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풀어낼 수 있는 소재와 환경의 차이가 TV 매체가 마주한 도전인지 한번 고민해보게 만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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