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 어째서 코미디가 웃기지 않고 슬프게 느껴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넷플릭스 영화 <차인표>는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섹소폰을 불며, 검지를 좌우로 흔드는 그 강렬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던 차인표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제목의 영화에 바로 그 차인표가 출연했지만 영화는 시작 전에 이 작품이 허구라는 걸 공지한다. ‘본 영화는 허구이며, 극중인물은 실제와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인표는 극중인물인 차인표를 연기하는데, 그가 배우이고 대중들에게 늘 바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멋진 그런 인물이라는 점은 극중인물과 실제인물인 차인표가 같지 않다는 공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물론 <차인표>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봐왔던 그 멋진 모습이나, 예능에서 소비되기도 했던(분노의 칫솔질 같은) 과장된 행동으로 우스꽝스런 이미지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는 최고의 전성기를 지나 연기 4대천왕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어도 잘 끼워주지 않는 극중인물 차인표는 어딘지 실제 차인표와 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극중인물이 영화 속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말 그대로 과장된 B급 코미디의 연속이다. 등산 산책을 하다 넘어져 개똥을 손에 묻히고도 팬들 앞에서 그걸 숨기기 위해 주머니에 넣고 닦아내는 이 인물은 결국 진창에 넘어져 더럽혀진 옷과 얼굴을 씻기 위해 여학교 체육관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 붕괴된 건물에 갇히게 된다.

발가벗겨진 채 그것도 여학교 체육관 샤워실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그는 매니저 조달환을 불러 조용히 자신을 구조해 달라 요구하지만,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의 반 이상을 갇힌 채로 연기하는 이 작품은 결국 그를 홀랑 벗겨버리는(옷도 벗기지만 그의 이미지도 벗기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사실 차인표가 아니라면 이 영화는 아무런 감흥을 주기 어려운 단순한 스토리에 B급 아니 C급이라고 해도 될 법한 황당한 코미디의 연속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차인표라는 배우가 그간 쌓아온 단단한 이미지가 있어 영화는 힘을 받는다. 마치 자신이 매체를 통해 보여줬던 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차인표가 그걸 벗기 위해 벌이는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그래서 차인표를 위한, 차인표에 의한, 차인표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영화는 B급 코미디라는 그 장르적 특징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기대한 만큼 웃기거나 재밌지는 않다. 어딘지 뻔한 설정들이 반복되고, 결국 예상한대로의 결말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뻔한 설정들조차 차인표라는 배우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남을 작품이 바로 <차인표>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꽤 오래도록 하나의 이미지에 갇힌 배우였다. 그 이미지는 너무나 견고해 지금도 등장만 하면 어딘지 음악이 흐르고 검지를 흔들 것만 같은 모습으로 그를 옥죈다. 그것이 배우로서는 얼마나 큰 족쇄였을까 싶다. 그래서 후반부에 이르러 애써 그간 하루 1500번씩의 팔굽혀펴기로 단견된 근육으로 잔해를 들어 올려 빠져나오려다 그의 검지가 깔려 잘려나가는 장면은 끔찍하기보다 어떤 면에서는 통쾌하고 속 시원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 이미지와의 결별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차인표>는 그래서 코미디지만 한 배우가 스스로를 변신시키기 위해 처절하게 절규하는 듯한 작품이 된다. 물론 영화적으로 굉장히 재미있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배우 차인표가 향후 다른 작품을 통해 색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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