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선과 악·꿈과 현실·낮과 밤을 선택하는 건 바로 자신

[엔터미디어=정덕현] “28년 전 어린아이였던 우리들이 그 하얀밤 마을에서 도망치려면 어른들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어.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현실에서는 권력의 힘에 눌려 감히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 현실을 꿈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준다면 선의를 발동한 누군가가 우리를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더라고. 그들의 마음 속 깊숙이 있었던 건 선의가 아니라 분노 증오 같은 악의였어.”

tvN 월화드라마 <낮과 밤>에서 도정우(남궁민)는 드디어 28년 전 하얀밤 마을에서 있었던 참사의 전말을 제이미(이청아)에게 말했다. 드라마 첫 장면에서 등장했던 하얀밤 마을의 괴이한 참사. 모두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 참혹한 지옥도 속에서 어린 도정우는 그것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그 실험으로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된 도정우가 괴물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정우가 전한 진실은 괴물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 곳에서도 선의를 가진 누군가가 자신들을 도와줄 걸 기대하며 음식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약을 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현실을 꿈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바랐던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선의가 아닌 악의를 드러냈으며 결국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해왔던 그 감정을 꿈이라는 착각 속에서 웃고 웃으며 죽고 죽이는 행동으로 표출했던 것이었다.

하얀밤 마을의 참사가 왜 벌어졌는가에 대한 도정우의 이 이야기는 <낮과 밤>이라는 드라마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는 걸 드러낸다. 다시 돌이켜보면 문재웅(윤선우)이 당시 하얀밤 마을에서 있었던 참사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벌인 연쇄 자살 사건 역시 그 자각몽에 빠진 이들의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꿈이 아닌데도 꿈이라 착각했고, 그래서 더더욱 강렬한 자극 속으로 자신들을 몰아넣었다. 그 꿈들이 선의로 가득 차 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그 속에 숨겨진 악의가 끄집어내짐으로써 벌어졌던 것.

<낮과 밤>은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우리가 분명하다 생각했던 어떤 경계들이 사실은 모호하다는 걸 일관되게 보여준 바 있다. 낮과 밤이 그렇고, 선과 악이 그러하다. 도정우가 형사인지 범인인지 애매한 경계에 서있는 점이 그렇고, 공혜원(김설현)의 아버지 공일도(김창완)가 평범한 가장에 연구원으로 보였지만 실체는 끔찍한 인체실험을 해온 괴물이라는 점도 그렇다.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권력의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 이런 끔찍한 실험을 자행해온 재단의 실세라는 점까지도.

그런데 그런 경계에서 낮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밤을 선택할 것인지는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걸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선의를 가진 이들이라면 결코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 끔찍한 비극을 낳지만, 세상은 안타깝게도 악의를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그래서 그 많은 비극들이 생겨났다는 것.

지금껏 많은 스릴러들이 그려낸 대결구도는 늘 선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과 악의 대결이었고, 형사와 범인들 사이의 대결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낮과 밤>은 선과 악이 애초부터 나뉘어 누군가는 형사가 되고 누군가는 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선과 악 중 어떤 걸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자신의 존재가 증명될 뿐. 이 스릴러가 그 어떤 작품들과 비교해도 독특한 차별지점을 갖는 건 이런 남다른 시각이 투영되어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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