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했어요’, 자식들이 동원된 재결합을 향한 기괴한 열망
‘우리 이혼했어요’, 이혼에 가장 큰 편견은 누가 가지고 있는 걸까?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처음 출발은 파격적이었다. 이혼한 부부가 한 집에서 생활하며 자신들의 이혼 과정과 결혼 생활 중에 느꼈던 문제점들을 복기한다는 기획은 새로웠고, 대강 성격 차이정도로 얼버무려졌던 셀러브리티 커플의 이혼 내막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는 가십성 재미는 인구에 회자됐다. 그런데 그 초반의 참신함은 빠른 속도로 뻔해지는 루트를 탔다. 프로그램이 모색한다던 이혼 후 새로운 관계, 알고 보니 그냥 부부 관계의 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재결합을 이야기하고 두 사람 사이의 섹슈얼한 텐션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은, 또 다시 뻔하디 뻔한 부부 관찰 예능이 됐다.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이야기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이 문제적 작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연출이 불가능한 어린 아이들이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에 동원되는 순간의 비윤리성을 지적한다. 아이가 울고 보호자들이 따라 우는 오열의 연속이 이혼한 부부의 ‘드라마’를 더 절절하게 만드는 요소로 소비되는 것에 “진심으로 화가 치민다”는 평을 남겼다. 이승한 평론가 또한 이혼한 부부를 이혼한 채로 두지 못하고 재결합을 향해 노를 저어가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이혼 상태에 대해 가장 큰 편견을 지닌 프로그램이라며, 자식 세대에게 부모의 재결합을 돕는 역할을 맡기는 프로그램을 “거대한 가스라이팅 실험”이라 평했다. 한편 남지우 평론가는 “며느리가 시부모의 결혼생활에 대해 말을 얹을 수 있는 사회가 못” 되는 한국 사회에서, 선우은숙이 며느리에게 평가와 대답의 기회를 준 장면을 보며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봤다.

◆ 아이 이용해서 돈벌이 하는 꼴이나 안 봤으면 좋겠다

아롱다롱, 사람 참 각양각색이란 생각이 새삼 든다. 이혼 사유도 저마다 다르고 아마 <우리 이혼했어요>에 출연한 이유 또한 제 각기 다르리라. 미련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가슴 속에 남은 응어리를 풀고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데 시청자가 어찌 가늠할 수 있겠나. 게다가 맘먹으면 연기도 백번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드라마 보듯 관망 중이다.

하지만 설정이며 대본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 이영하·선우은숙의 손녀가 나오고 최고기·유깻잎의 딸이 나온다. 한 아이는 조부모 사이에서 또 한 아이는 부모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아이가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화면은 육아 프로그램으로 바뀐다. MC 신동엽이 ‘할아버지 할머니 뽀뽀해보시라 하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겠느냐’ 주책을 떨더니 최고기·유깻잎 분량에서도 여지없이 뽀뽀 운운한다. 아이를 방송에 이용하는 거, 본래도 마뜩치 않았지만 이번엔 진심으로 화가 치민다.

 

두 아이가 놓인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서 더 속상하다. 조부모의 감정 다툼 외엔 별 걱정 없어 보이는 한 아이와 달리 다른 에피소드 속 아이는 매번 눈물바람이다. 눈치보고 불안해하고 엄마와의 이별을 두려워한다. 원인 제공을 한 어른들도 매회 눈물을 훔친다. 부산 송도 해변에서 유깻잎의 어머니가 잠든 손녀를 어루만지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나도 눈물을 쏟았다.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최고기·유깻잎 파경의 단초는 양가 부모의 혼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각설하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누가 화해를 하고 누가 재결합을 하든 말든 관심 없다. 아이를 이용해 돈벌이 하는 꼴이나 안 봤으면 한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이혼 권하는 딸·며느리가 될 수 있을까?

엄마에게, 혹은 아빠에게 웃으며 이혼을 권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우리 이혼했어요>를 보고서는 불가능하다. ‘이혼 후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겠다는 프로그램 목표에 계속 실패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우이혼>은 제작진의 역량을 넘어선 기획일까? 아니면 한국에서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프로일까. 노골적인 패러디 제목만을 남기고 시청률은 하락세다. 길을 잃었다.

연예인의 특수성이 많이 느껴지는 다른 이혼 커플들과 달리, 유깻잎·최고기 페어만이 <우이혼>의 숨통을 틔우고 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명대사를 매 회차 써낸다. 나이는 가장 어리고 유명세와는 가장 멀리 있는 두 사람이, 이혼 후의 관계를 통해 가장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 둘만을 기다리며 <우이혼>을 견딜 수는 없는 법. TV조선은 더 잘 만들어야 한다.

8회차에 접어든 <우이혼>. 더 잘 만들 수 있다. 선우은숙·이영하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선우은숙은 아들의 아내 최선정에 묻는다. “너는 어땠어? 우리의 이혼에 대해서?”. 이 질문이 향하는 곳엔 이혼가정의 며느라기가 있다. 한국은 며느리가 시부모의 결혼생활에 대해 말을 얹을 수 있는 사회가 못 된다. 그럼에도 선우은숙은 며느리에게 평가와 대답의 권한을 주었다. 다음 세대에 결혼의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며느리는 감히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최선정은 다정하게 평가하고 다독였다. <우이혼>은 결혼의 모범보다 인간됨의 모범을 모색하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엄마에게, 혹은 아빠에게 웃으며 이혼을 권할 수도 있겠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jeewoo1119@gmail.com

◆ 이혼한 사람들이 이혼한 채로 살게 두면 안 되나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는 이혼을 입에 올리는 것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혼 상태에 관해 가장 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누굴까? 오랫동안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살았던 이영하와 선우은숙을 볼 때도, 이혼한 뒤 비로소 자신들이 어느 지점에서 엇갈렸는지 복기하는 최고기와 유깻잎을 볼 때도, 이혼 뒤에도 여전히 친구처럼 연인처럼 만남을 계속 이어가는 이하늘과 박유선을 볼 때도 제작진과 패널들의 관심사는 하나다. 두 사람 사이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인들이, 자식들이, 스튜디오의 패널들이 모두 큐피드가 되어 조심스레 재결합을 이야기하거나 데이트를 부추기는 일련의 방향성이 가리키는 목표지점은 정상가정의 복원이다. 이혼 상태를 가장 못 견디며 노골적인 편견을 드러내는 건, 편견을 깨겠다는 제작진이다.

카메라 앞에서라도 오해를 풀고 응어리를 해소하는 것으로 출연진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력으로 그 지점에 골인할 수 있는 출연진들은 드물고, 그 과정으로 가기 위해 자꾸 애꿎은 자식들이 결부되기 시작한다. 이영하와 선우은숙의 손자는 서먹해진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줘야 하고, 며느리는 곰살맞게 이혼한 시부모를 어르고 달래주는 효부가 되어야 한다. 자식들 혼삿길이 막힐까 이혼을 계속 미루며 이혼가정처럼 안 보이는것에 매달렸던 부부를, 다시 현명한며느리가 이어주고 예쁜손자가 이어주는 이 화해의 하청.

물론 프로그램은 한껏 기특해한다. 이런 맛에 며느리를 잘 봐야 하는 것이고 이런 맛에 아이를 낳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정상가정의 이데올로기임으로. “네가 중간에서 잘 해야 부모님이 재결합한다는 폭력적인 헛소리를 들으며 자란 이혼가정 자녀 입장에서, <우이혼>은 거대한 가스라이팅 실험처럼 느껴진다. 어렵게 이혼을 결정한 사람들이 좀 이혼한 채로 살게 두면 안 되나? 낡아서 퀴퀴하게 굴지 말고.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TV조선.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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