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곡’, 무염버터보다 마가린 같은 드라마
‘결사곡’, 이태곤의 느끼함 없었다면 더 빨리 질렸을 거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조선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한 임성한 작가의 야심찬 복귀작이다. 일단 제작진 명단에 우리가 알던 임성한은 없다. 피비(phoebe)라는 필명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주특기인 엿가락 늘리기 신공이 돋보이는 일일극도 아니고, SBS <하늘이시여>MBC <보석비빔밥> 등 나름 수작으로 인정받은 주말극 성격의 드라마도 아니다.

<결혼작사 이혼작곡>16부작 미니시리즈로 피비 작가의 새로운 승부수인 셈이다. 아마 임성한 표 드라마를 기다리던 애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피비 작가를 흔한 아침드라마형 막장 작가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개성 넘치게 돋보이는 감각이 있다. 깨알 같이 따지고 드는 임성한 작가의 대사들은 때론 문어체에 때론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를 잡아두는 신공을 발휘한다. 심지어 MBC <압구정 백야>에서는 여주인공 백야(박하나)와 백야를 버린 친엄마 서은하(이보희)가 한과 눈물 넘치는 입씨름 배틀로 한 회를 다 채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중도란 대단했다.

또한 일부 평범한 일일극, 아침드라마 작가들은 넘보지 못할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한다. 갑자기 극 진행과 상관없는 뜬금없는 장면이 나왔다가 들어간다거나. 무속신앙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듯한 빙의 같은 설정이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신기생뎐>의 아수라(임혁)의 빙의 레이저 장면은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SF나 판타지 설정이 난무하는 지금의 한국드라마에서도 차마 주말극에서 눈에서 레이저 쏘는 장면을 쓰는 대담함을 선보인 작가는 없다.

피비 작가의 새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는 중반까지 흘러왔지만 사실 그렇게 기괴하지는 않다. 남자주인공들의 불륜과 그 아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중반까지 미친피치를 올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은퇴한 임성한 드라마에 애증을 가진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등장인물들의 깐깐하게 따지는 성격, 여기에 생활 정보 깨소금처럼 약간. 이 때문에 부혜령(이가령)이 남편과 레스토랑에서 싸우다가 무염버터를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애증어린 시청자들은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 임성한의 맛이라고. 또한 등장인물들의 의뭉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독백과 대사들까지 전형적인 임성한식이다.

사실 임성한 드라마는 하나하나 뜯어보면 대사가 저렴하거나 유치하지는 않다. 오히려 앞집 뒷집의 풍문들을 양념 쳐서 맛깔스럽게 전달하는 고상하지만 음흉한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래서 들을 때는 유쾌한데 곱씹으면 마냥 유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결혼작사 이혼작곡>에서 판사현(성훈)의 부모인 판문호(김응수)나 소예정(이종남) 캐릭터는 임성한식의 코믹함을 잘 버무려낸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잔재미를 보장하는 캐릭터들이 이 부부일 것이다. 특히 판문호 역의 김응수는 <청춘의 덫>의 배우 심은하와 비견될 법한 연기를 보여준다. 작가가 그려내는 가장 전형적인 대사들을 본인의 캐릭터로 변주시켜 전혀 다른 느낌으로 생동감 있게 소화하기 때문이다.

한편 신유신(이태곤)과 그의 오랜 간호사 누나이자 새어머니인 김동미(김보연)의 서사 또한 전형적인 임성한 식의 구조를 보여준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새어머니와 그 양아들이 그려내는 미묘한 욕망의 서사가 불편하면서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우 김보연의 징그럽게 섬세한 감정 연기와 이태곤의 느끼한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이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한다.

여기에 배우 이태곤과 성훈이 보여주는 뱃살 두둑한 노출 장면 역시 과거 임성한 드라마를 추억하기에 좋은 장면들이다. 아마 극 후반부에 이태곤과 성훈이 한 번씩 여장만 해주면 임성한 드라마의 완전체 남자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진행은 너무 느리다. 극 중반까지 주인공들의 내연녀에 대한 이야기는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극 중반까지 내연녀에 대한 단서 없이 궁금함을 이어가는 능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일상의 에피소드를 엮어서 이야기를 뭉쳐가는 임성한 식의 구조는 미니시리즈의 진행과는 아무래도 호흡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아예 임성한 드라마에 애증 자체가 없는 젊은 층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인 것이다.

특히 극 중반 박해륜(전노민)과 이시은(전수경) 사이의 이혼 과정을 보여주며 길게 한풀이하듯 한 회차의 절반을 등장인물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장면은 더는 감당이 힘들다.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있는 시대에 시청자들은 더는 <압구정 백야> 같은 긴 호흡의 장면을 참아주지 않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결혼작사 이혼작곡>무염버터보다는 마가린 같다. 간장에 밥 비벼먹으면 꿀맛인 마가린처럼, 때론 보는 맛은 나지만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은 또 아니다. 또한 마가린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에게는 재미를 줄 여지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더는 마가린이 옛날의 마가린 맛으로 느껴지지는 않고 금방 물린다. 아마 김보연, 김응수, 이종남 등 중견배우의 능수능란한 연기와 이태곤의 느끼함이 없었다면 더 빨리 질렸을 확률이 높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조선,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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