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이 따뜻함의 실체는 뭘까

[엔터미디어=정덕현] 결국 오늘도 울고 말았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처음 칠순의 덕출(박인환)이 친구의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후, 어려서 꿨던 발레의 꿈을 다시 끄집어냈던 그 순간부터 이 드라마의 ‘눈물주의보’는 이미 시작됐다. 어르신이 손끝을 펼쳐 바들바들 떨면서도 힘겹게 발레 동작을 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게다가 덕출은 발레스승으로 만난 채록(송강)이나 어떻게든 취직을 하기 위해 애썼지만 상사의 갑질로 채용이 안 된 손녀 은호(홍승희), 심지어 좌절감 때문에 채록을 괜스레 괴롭혔지만 진짜 속내는 달랐던 그의 동창 호범(김권) 같은 청춘들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인물이었다. 덕출은 기성세대로써 이 청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열심히 해도 한 만큼 성과가 돌아오지 못하는 청춘의 현실이 마치 자신의 잘못 때문인 양 받아들이며.

늦은 나이에 발레의 꿈을 펼치는 덕출의 이야기에 반대했던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이게 됐지만, 드라마는 덕출이 발레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그건 알츠하이머였다. 점점 기억이 사라지는 두려움 속에서 덕출은 마지막으로 한번이라도 날고 싶었다. “내가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은데 못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상황인거지.” 덕출에게 발레는 기억의 마지막 끝에 쥐고 있고픈 삶의 흔적이었을 게다.

덕출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게 된 채록이 그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막내아들 심성관(조복래)이 그 사실을 듣고는 아버지의 그 도전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겠다 나서는 대목에서 먹먹함이 느껴지는 건, 이들이 늘 밝게 웃고만 지냈던 덕출의 진짜 모습을 드디어 들여다보게 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노트에 빼곡하게 기록을 하며 버텨내고 있는 덕출이지만, 그는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을 겪고는 그 충격에 그 때의 신발을 신고 다니는 아들을 걱정한다.

홀로 하고픈 일을 찾아 라디오 막내작가로 일하고 있는 은호를 위해 따뜻한 사연을 보낸다. “저한테는 손녀가 하나 있어요. 대학 졸업하고 막 사회에 나가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짠합니다. 요즘 아이들 많이 힘들잖아요. 할애비가 힘을 좀 주고 싶어서 이렇게 사연 보냅니다. 은호야. 네 태몽을 이 할애비가 꾼 거 알지? 캄캄한 밤에 유난히도 반짝이던 별 하나가 우리 집 마당에 툭 떨어지고 네가 생겼다. 은호 너는 할애비에게 별이야. 별. 우리 은호 힘내라.” 세상 모든 별들은 이 어르신이 사연에 담긴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졌을 게다.

<나빌레라>는 칠순의 나이에 발레에 도전하는 덕출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가 전하는 청춘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가 전면에 깔려 있다. 그런데 그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제 시청자들은 이런 응원을 보내는 어르신이 살아낸 삶의 숭고함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채록과 은호 그리고 호범 같은 청춘의 눈으로, 성관이나 아마도 향후 더 뜨거운 눈물을 쏟아낼 성산(정해균) 같은 자식이자 중년의 눈으로, 그리고 해남(나문희) 같은 함께 살아왔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눈으로.

이러니 덕출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없는 먹먹함에 눈물을 참지 못하게 된다. 그의 삶 전체가 발레 동작 손 끝 하나에서도 느껴지고, 그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에 담겨진 진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이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는 그 과정이 주는 감동이라니. <나빌레라>를 보는 시간 동안 우리가 느끼는 따뜻함의 실체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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