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인기와 학폭 고발 열풍, 사적 구제 몰입 중인 한국 사회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담하기)] 현재 방송가에서 가장 핫한 드라마는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일 것이다. 10.7%(이하 닐슨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이 계속 상승해 8회 현재 최고 시청률 16.0%까지 기록 중이라 최종 20% 돌파도 기대해볼 만한 기세다. SBS<펜트하우스> 시리즈에 이어 연이은 대박으로 금요일에서 주말로 이어지는 드라마를 석권 중이다.

<모범택시>는 주인공 이제훈(김도기)을 중심으로 장성철(김의성), 안고은(표예진), 최주임(장혁진), 박주임(배유람) 등이 택시회사를 위장한 사적 복수 대행팀 소속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내용이다.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경이로운 소문> 등의 뒤를 잇는 웹툰 원작의 인기 드라마다.

매주 홀수 회차에서는 피해자들의 억울한 피해 내용과 공권력이 해결 못 하는 답답한 상황이, 짝수 회차에는 김도기가 자신의 팀들과 함께 나서 복수를 대행해주는 통쾌한 마무리로 진행 중이다. 2회마다 하나의 사건이 매주 마무리되는 빠른 템포의 구성이 시청자들의 극적 쾌감을 높이고 있다. 다뤄지는 사건들도 실제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차용해 시청자들의 몰입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아동 성폭력, 장애인 착취,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웹하드 회사 갑질 폭행과 불법 동영상 촬영 등이 8회까지 이어졌다.

웹하드 회사 회장 역으로 등장한 전설의 인디 그룹 어어부밴드 멤버 백현진 등 악역들의 실감 나는 연기도 시청자들의 분노를 치솟게 해 <모범택시>의 큰 인기에 일조하고 있다. 김도기 역의 이제훈이 격투신에서 어설프게 대역을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이런 잡음에도 별 영향 없이 드라마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도기 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하거나 기지를 발휘한 작전으로, 때로는 직접적인 폭력으로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느끼게 해준다. 공권력의 한계로 법에 의한 정의 구현에 빈틈이 생기는 상황에서 자력 구제 또는 사적 구제로 복수심을 달래는 내용에 많은 대중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모범택시>의 다른 한 축으로 정의로운 검사 강하나(이솜)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공권력의 집행자는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8회까지는 정의 구현의 주체가 아니라 이제훈 팀 도움을 받거나 조력하는데 그치는 보조적 존재로 등장한다.

<모범택시>의 인기는 사적 구제를 선망해야 할 만큼 법이 멀게 느껴지는 한국 사회의 일면에 대한 대중 심리의 반영일 것이다. 물론 공권력이 좀 더 공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영화 <데드 위시> 시리즈처럼 자력 구제를 다룬 내용이 인기를 끈 사례가 있어 꼭 한국만의 특징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문명 사회는 자력 구제를 제한하고 공권력을 통해 정의가 구현되는 시스템을 사회에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범택시>는 김도기 팀 모두가, 법 집행만으로 처벌이 제대로 안 된 범죄의 피해자들이라는 설정으로 사적 구제에 대한 이유와 명분을 부여하고자 하지만 그래도 사적 구제는 여전히 법치주의 국가에서 정당화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피해를 민간에서 자체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처벌하는 것은 가해자 확정에 오류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자의적 잣대에 의한 처벌 수위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뀌고 서로 간에 사적 구제가 반복되는 악순환과 이로 인한 사회 혼란도 벌어질 수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사적 구제에 대한 열망은 강력해 보인다. 드라마 <모범택시>의 인기는 여자 배구에서 시작된 후 번져와 최근 연예계를 휩쓸고 있는 학투 등 과거 피해 폭로 열풍과도 연결돼 보인다. 과거의 가해자를 법적 절차로는 처벌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공론의 장인 인터넷에 공개해 여론 재판을 통해 처벌하는 폭로 역시 사적 구제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평생 트라우마가 된 피해를 제대로 인지도 못하고 있는 가해자가 잘못을 깨닫고 처벌받는 효과도 분명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의를 앞세운 이 행동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우려가 늘 존재한다.

이러한 인터넷 여론 재판에도 중립 기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처럼 가해자 처벌에 신중하기 위한 노력이 늘어나는 등 나름 사적 구제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한 집단 지성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 구제와 관련된 우려들이 해소되고 벌어지는 상황은 아니어서 문제의 불씨는 그대로다.

결국 사적 구제의 필요성이 소멸하는 쪽으로 수렴되도록 제도나 법 집행, 그리고 시민 의식이 함께 성숙해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일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듯하다. <모범택시> 같은 드라마가 시청률이 안 나오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말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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