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모범택시’를 타고 ‘종점보관소’에 가면 어어부가 있다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의 시청률 가속 행진에는 이 배우의 지분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바로 현실 세계의 양진호 회장을 누가 봐도 저격한 유데이터 회장 박양진 역의 배우다. 이미 현실 세계의 양진호 회장은 갑질을 넘어 웹하드를 통한 불법 몰카의 대규모 재생산,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생닭 죽이기, 간부들의 기괴한 머리 염색 등 21세기 기업 악행의 종합세트 같은 캐릭터였다.

그런데 <모범택시>의 박양진을 연기한 이 배우는 이 캐릭터의 악랄함은 그대로 살리면서, ‘또라이같은 면모를 부각하는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불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웃게 된다. 악랄한 동시에 지질한 꼰대남성 기업인 연기의 정점을 이름 모를 배우가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 이 배우의 이름은 몰라도 영화 <삼진그룹 영화토익반>의 관람객이라면 얼굴과 연기는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삼진그룹 영화토익반>에서도 이 배우는 능력 없는 재벌 집안의 핏줄인 콤플렉스 덩어리 직장 상사를 연기한다. <모범택시>의 박양진과 비슷한 갑질 진상 캐릭터지만 좀 더 소박한 맛이라고 보면 좋은 인물이다.

이 두 편의 작품으로 확실하게 얼굴 도장을 찍은 백현진은 이미 몇몇 영화와 드라마에 인상적인 단역으로 출연해왔다. 특히 MBC <붉은 달 푸른 해>를 인상 깊게 본 시청자라면 그 드라마의 섬뜩한 개장수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그의 행적을 지켜봐 온 이들이라면 백현진보다는 어어부라는 캐릭터가 더 먼저 떠오를 것이다. 배우 백현진 이전에 그는 어어부밴드 혹은 어어부프로젝트를 통해 90년대부터 2천 년대 초반까지 홍대 인디신에서 가장 독특한 캐리어를 보여준 음악인이자 예술인이었다.

특히 쌈싸페등에서 어어부의 공연을 본 이들이라면 배우 백현진 특유의 연기의 기원을 느낄 수 있다(그리고 현재 유튜브에 몇몇 영상들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영화 <나쁜영화>에서 쓰인 1<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3<종점보관소>의 어어부 퍼포먼스를 보면 백현진 특유의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있다. 자조적인 약장수 느낌이 나는 동시에, 굉장히 키치적인데 은근히 묵직한 고갱이가 있다.

이런 그의 퍼포먼스는 배우 백현진의 연기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백현진의 연기는 사실 정식적으로 배운 배우의 정교한 감정연기가 아니라 예술가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하지만 <모범택시>처럼 정상적인 연기로는 현실의 극한 흉함을 흉내 낼 수 없는 캐릭터를. 굉장히 생생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제격인 퍼포먼스인 것이다.

이런 백현진의 세계가 담긴 어어부의 음악은 사실 라디오에서 들을 수가 없었다. 염세적 내용과 허무함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영화 <반칙왕>의 주제곡인 <사각의 진혼곡>을 빼고는 모두 방송 불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EP 앨범과 2<, 럭키스타>는 실험성이 강한 동시에 의외로 묵직한 한방이 있는 노래들이다. 특히 한편의 긴 예술영화처럼 이어지는 <, 럭키스타>의 곡들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고 낯설다.

반면 3<21c New Hair><반칙왕> 주제곡 <사각의 진혼곡>을 제외하더라도 의외로 대중적으로 흡인력 있는 노래들이 많다. 물론 그래봤자, 다 방송 불가 된 노래이기는 하다. 하지만 친근한 훅과 실험적인 멜로디의 교차, 거기에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노랫말로 이루어진 이 앨범은 유튜브를 찾아보면 꽤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첫 곡 <초현실 엄마>부터 독특한데, 뮤지컬스러운 전개에 남자로 성전환해 돌아온 엄마를 보고 고민하는 아들의 심경이 담긴 노래다. <어떻게 현실을 감당하나/어떻게 현실을 인정하나/귀여운 동생을 원했는데/이제는 엄마가 나 같은 남자라니>라며 고민하던 가사는 결국 엄마의 선택을 존중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한편 앨범에서 가장 흥겨운 곡인 <종점보관소>는 누구나 체험했던 경험을 노래로 재현한다. <나는 막차를 타고 집에 가다/ 잠이 들어서 종점까지 왔다네. 어제도 나는 막차를 타고 종점까지 왔었네>. 하지만 이 평범하고 친숙한 경험 사이로 어어부 특유의 독특한 가사가 슥 들어오기도 한다.

<병약한 원숭이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면/ 이빨에 껴 있는 닭고기 조각은 불쾌한 꿈이 되지/

당신은 춤을 추다, 차가운 차를 마시다 급히/ 마지막 표정이 보관된 그 방에 모르고 들어가네.>

한편 이 앨범에는 서정적인 포크송 느낌의 <양떼구름>도 있다.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는 이 노래를 들으면, 어어부 음악의 깊은 서정성이 밀려든다. 깊은 밤 적절히 취해 통기타로 연주하며 혼자 부르면 눈물이 고일 것 같은 그런 노래다.

<양떼구름>2집 수록곡이자 성우 송도순의 독특한 나레이션만으로 전개되는 <>에서 따온 다른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든다로 시작한다. 그리고 예술인 어어부의 다른 한통의 전보, 배우 백현진은 모범적이진 않지만 가장 어어부스러운 연기로 많은 이들을 혹하게 한다. 과거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좋아했던 팬이나, <모범택시> 드라마를 최근에 몰입하며 본 시청자에게나 모두.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영화 ‘삼진그룹 영화토익반’‘반칙왕’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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