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나혼산’, 꼭 2017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의 간판 예능이자, 관찰예능의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나 혼자 산다>가 400회를 맞이했다. 성대한 환호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기록이나 의도적으로 조촐하게 꾸민 무대가 멋쩍게 별다른 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2년 3개월 만에 메인MC 전현무를 복귀시켰으나 시청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제작진을 교체할 만큼 <나 혼자 산다>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캐릭터와 스토리 이 두 가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예능은 2017년 4월의 200회 특집으로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전설이 시작됐다. 이를 기점으로 그 이전 출연진들이 이끌어오던 <나혼산>과 제목과 설정만 공유할 뿐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으로 탈바꿈했다. 관찰예능에서 리얼버라이어티 스타일 캐릭터쇼의 관계와 성장으로 초점이 달라지며 생긴 변화다. 출연진은 방송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친분을 쌓았고, 방송의 인기와 맞물려 각자 커리어에 있어서도 압축 성장을 이룩했다.

전현무는 아나운서 출신 MC에서 포스트 유재석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우뚝 섰고, 한혜진은 ‘모델 출신’이란 수식어를 떼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송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시언은 원룸에 사는 짠한 조연배우에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아는 연예인으로 거듭나면서 작품에서도 맡는 롤이 달라졌다. 기안84의 독보적인 브랜드는 웹툰보다 <나혼산>을 통해 확산됐고 그 인기로 말미암아 작품 활동에서 비롯된 여러 논란도 큰 탈 없이 종식시킬 수 있었다. 헨리도 예능인과 음악인으로 정체성을 갖추면서 그 이후 활동의 초석이 됐다. 박나래는 가장 드라마틱하다. 전형적인 과하고 망가지는 설정의 사이드킥 여성코미디언에서 성별을 떠나 최고의 예능MC로 발돋움했다. 그 과정을 <나혼산>과 함께하면서 성산동 빌라에서 한강을 조망하는 한남동의 유엔빌리지로 올라갔다.

이런 와중에 연말 시상식에서 기안84가 박나래와 함께 만든 해프닝이나 한혜진의 연애사와 이를 지켜보다 일부 오버랩된 전현무의 연애사,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은 이시언과 기안84의 말투와 행동 등은 라이프스타일을 전시를 넘어선 진정성과 리얼리티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멤버가 합류하고, 새로운 무지개 회원들이 볼거리를 만드는 와중에도 이 프로그램은 방송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를 시청자들과 쌓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활발하고 친밀했던 캐릭터쇼와 성장 서사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는 결국 ‘리얼리티’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셈이다.

전현무의 이탈 이후 버전의 <나 혼자 산다>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이 리얼리티가 점점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삶을 관찰하는 코드에서 누군가의 인생의 가장 큰 성장기, 격동기를 함께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싶게 만드는 정서가 있었는데(물론 이 외에도 남자 연예인은 기본 상반신 탈의라든가 럭셔리 라이프 전시 등 몇몇 볼거리 코드도 잘 작동했다), 지금은 이벤트성 콘셉트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방송을 넘어선 진정성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몇 달 전 심기일전해서 원투펀치 박나래와 기안84이 나서고 텐트가 큰 웃음을 선사하며 반등했던 회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둘은 현실에서 각각 다른 논란에 휩싸였다. 우리네와 가까운 좋은 사람을 보여주는 방송 콘셉트와 실제가 점점 더 간극이 생기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현무의 전격 복귀가 신의 한 수라고 보긴 힘들 것 같다. 전성기를 이끌던 메인MC이고 캐릭터쇼를 직조한 장본인이며, 가장 임팩트 있는 리얼리티를 프로그램 전반에 끼친 인물이기도 하지만, 현재 <나혼산>에 절실한 리얼리티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려 1시간이나 통으로 할애해 관찰한 그의 일상에서 건질만한 볼거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살고 있는 집부터 나오질 않았다. 가장 궁금한 부분일 화려한 공개 연애사도 카메라엔 일절 담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의 인생관이 크게 달라진 것이겠지만 북촌 한옥 스테이에서 생활은 과거 전 회장 시절의 향수나 현재의 일상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 결과 400회를 기점으로 전성기의 주역을 다시 불러오면서 반전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지만, 그 반가움이 콘텐츠의 역량으로 증폭되지 못했다.

<나혼산>은 그 시절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형성된 캐릭터쇼를 뼈대 삼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역시나 그 시절과 맞먹는 순도 높은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캐릭터들이 뭉치는 성장 서사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그때보다 고려할 것이 많아졌고, 이미 각자 최정상에 가까이 오른 터라 그때만큼 성장 여지가 크지 않다. 그러니 당시 제작진이 순도 높은 관찰 예능에 리얼리티 코드를 삽입한 변주가 성공했던 것처럼, 꼭 2017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불가능한 리유니언을 꿈꾸기보단 여러모로 새로운 지향을 펼칠 수 있는 리뉴얼도 또다른 카드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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