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방송 확장 나선 백종원의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백종원은 왜 이렇게 방송을 많이 할까. 사실상 지난 5년 간 SBS의 연예대상은 백종원의 날이 되었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한번이라도 대상의 영예를 받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직업 정체성과 예능인들에 대한 예우 등을 이유로 한사코 거절했다. 백종원의 ‘선한 보이콧’에는 분명 뜻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SBS 연예대상의 권위가 떨어지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 이는 예전에 서장훈이 은퇴 직후 <무한도전>에 출연해 보였던 반응과 유사하다. 방송 출연을 활발히 하지만 정체성을 방송인에 두지 않는 방송인.(물론,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서장훈은 최근 SM C&C에 둥지를 틀며 자타공인 예능 선수로 큰 활약 중이다.)

그런데 이런 자발적 거리두기와 심리적 방어막이 무색하게도, 백종원은 가장 성공적인 방송 커리어를 쌓았다. tvN에서 <집밥 백선생>, <한식대첩>,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시리즈와 <고교급식왕>을, SBS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 이전에 <백종원의 3대 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성공적으로 전개했고, JTBC에서는 <양식의 양식>, MBC에선 <백파더>까지 모두 타이틀롤을 맡았다. 즉 백종원은 캐스팅 자체가 곧 특정 콘텐츠나 장르를 의미하는 존재다. 게다가 영향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거뒀다. 그의 콘텐츠는 ‘먹방’과 ‘쿡방’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와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첫 번째로 찾는 레시피와 요리 정보이며, 요식업계 자영업자들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지난 7여 년간 독보적인 방송 커리어를 쌓아온 백종원의 최근 행보가 무척이나 공격적이다. 백종원 신드롬이 불었던 쿡방의 시대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노출과 편성이 늘었다. KBS2 <백종원 클라쓰>(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수), <맛남의 광장>(목),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 글로벌 푸드편>(금) 등 주중 화요일을 제외한 4일 동안 백종원을 간판으로 내세운 여러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이뿐 아니다. 5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고, 티빙에서는 계절 콘텐츠인 <백종원의 사계>가, 넷플릭스에서는 하반기에 토크쇼인 <백스피릿>까지 준비 중이다. 그야말로 방송가에 전방위적인 백종원 프랜차이즈 입점 붐이 불고 있다.

백종원의 프로그램이 꾸준히 성공하는 이유는 엄청나게 실용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쿡방’ 콘텐츠고, 두 번째는 성공했는데 수더분한 아저씨 캐릭터라는 데 있다. 엄청난 재력과 수완, 미모의 배우 부인을 가진 사업가지만 푸근한 충정도 말씨의 사람 좋은 사람이다. 꾸미지도, 추레하지도 않으며 세련미를 가미하면서도 푸근한 아저씨답게 입는 그의 코디는 의도했다면 스티브 잡스에 버금가는 비즈니스 코드를 담은 시그니처 룩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백종원의 콘텐츠가 브랜드가 된 결정적 요인인데, 그의 콘텐츠에는 현실에 직접 대입되는 ‘의도’와 ‘효용’이 있다.

2015년에는 집밥 열풍을 일으키며 주부에 국한된 가사노동과 살림을 1인 가구도 즐기는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요리를 아예 못하는 초보자를 위한 교육 및 쉽게 요리하는 밥상 혁명을 일으키며 영미권에서 제이미 올리버가 해낸 역할을 이 땅에서 일궈냈다. 그리고 본진이라 할 수 있는 <골목식당>에서는 지역 상권 활성화와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기회’가 있다는 교훈을 주고, <맛남의 광장>은 어려움을 겪는 농어민을 위해 지역 특산물 판매 및 홍보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서서 노력한다. 후학양성에도 도움을 주고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한식 세계화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 자신을 간판 삼아 요리를 소재로 방송을 꾸준히 해오고 있지만 질리지 않은 이유이자, 다른 예능 콘텐츠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지점이 바로 이타적인 기획에서 나오는 선한 영향력이다.

그런데 최근 새롭게 런칭하거나 준비 중인 프로그램들에선 이 ‘선한 영향력’이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백종원의 첫 KBS 진출작인 <백종원 클라쓰>는 백종원에게 한식 요리 수업한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외국인들에게 한식의 기본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모토부터 신선하지 않는 데다 외국인 제자들을 대상으로 한 백종원의 한식 요리수업은 기존의 집밥 콘텐츠보다 직접적 효용 면에서 한층 떨어진다.

JTBC <양식의 양식>의 제작진과 다시 뭉쳐 만든 <백종원의 국민음식>은 외국에서 유입된 음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들어왔고, 어떻게 우리의 국민 음식이 될 수 있었는지 추적하는 음식인문학이다. 준비 중인 <백스피릿>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백종원이 마주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술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설정이다. “배를 채웠으면 이제는 뇌를 채우자”고 주장하고, 백종원이란 인물의 매력에 전적으로 기댔으나 ‘선한 영향력’을 내세울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기존 영향력도 오래되니 무뎌지는 법이다. 지난 2019년에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 톱5안에 꾸준히 들던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달 현재 브랜드평판 27위까지 하락했고, <맛남의 광장>은 시청률 저조로 출연진들을 대거 교체하는 새 단장을 했다. 지난 2일 첫 방송한 <백종원의 국민음식>은 1.3%대의 낮은 성적표를 받았고, KBS의 프라임타임이라 할 수 있는 8시대에 편성한 <백종원의 클라쓰>는 4.6%로 시작해 3.2%로로 급강하했다. 화제성도 미미하다. 다들 1년에 걸쳐 준비했다고 하고 백종원이 백종원과 싸우는 와중에 차별점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담은 새로운 깃발이 보이지 않는다.

제약이 많은 팬데믹 시대라 일상성과 음식을 소재로 삼은 백종원을 모셔오려고 방송사들이 혈안이 된 것인지, 사업적으로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번 여름 시즌 예능의 키워드는 ‘백종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됐다. OTT와 유튜브를 포함한 콘텐츠로 더 넓혀 본다면 올 한해의 예능 키워드로 그의 이름 석 자가 거론될 수준이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반복에서 오는 피로도도 분명 있을 테고, 무엇보다 백종원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인 ‘의미’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7년간 그랬듯이 캐스팅이 마케팅이자 콘텐츠인 백종원이라는 예능 치트키가 이 시기를 지나서도 여전히 유효할지 지켜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SBS, tvN, JTBC,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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