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 이미지 정치 시대의 디스토피아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강판사가 벌인 재판은 여론재판이었소. 법과 원칙에 따른 재판이 아니었지. 부메랑은 던진 이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거든. 여론은 성급하고 잔혹하지.” 민정호(안내상) 대법관은 증인매수를 했다는 여론으로 벼랑 끝에 몰린 강요한(지성)에게 그렇게 말한다. 강요한이 라이브 법정쇼를 통해 차경희(장영남) 법무부장관의 망나니 아들을 공개 태형 판결을 내려 욕보이자, 차경희가 거꾸로 강요한을 증인매수 혐의로 몰아 여론재판으로 반격을 가한 것.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는 이처럼 라이브 법정쇼 같은 정의를 빙자한 여론 정치, 이미지 정치의 대결을 다룬다.

전국에 생방송되는 라이브 법정쇼에서 판결은 강요한이 내리지만 그 판결을 가르는 건 이 쇼에 참여하는 대중들의 투표다.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투표의 결과는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을 등에 업은 강요한은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여론은 사실상 강요한의 법정쇼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가 하는 일련의 명연설에 가까운 판결문이나, 대중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연기가 그 여론을 마음대로 흔들어 놓는다. 사이다를 원하는 대중들의 마음을 강요한은 끌어다가 부정한 자들을 처결하는데 활용한다.

강요한이 라이브 법정쇼 같은 여론재판 혹은 이미지 정치를 무기로 선택한 건, 그가 맞서는 사회적 책임재단이라는 국정 농단 카르텔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 카르텔에는 현직 대통령 허중세(백현진), 법무부장관 차경희, 사람미디어 그룹 회장 박두만, 민보그룹 회장 민용식 등이 있다. 정치, 사법, 언론, 재계가 모두 들어 있는 것. 쇼를 잘해 대통령까지 올랐다는 허중세라는 캐릭터는 이미지 정치가 이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를 보여준다.

궁지에 몰린 강요한을 TV중계로 보는 사회적 책임재단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흥미롭다. “광고 완판됐다 그러지 않았나?” 대통령이 그렇게 비아냥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이 법정쇼를 중계해 막대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미디어 그룹 회장 박두만은 이렇게 말한다. “무대 올라갈 광대들은 많아요. 또 캐스팅 해봐야죠.” 이들에게 중요한 건 라이브 법정쇼를 통한 정의 구현도 재판부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도 아니다. 돈이고 광고 장사이고 시청률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이들 역시 광대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회적 책임재단의 꼭두각시들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책임재단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은 서정학(정인겸) 이사장이 아니고 상임이사로 있는 정선아(김민정)다. 그는 마치 서정학을 보좌하는 비서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서정학이라는 광대를 앞세우고 실질적으로 사회적 책임재단을 이끄는 인물이다. 그래서 강요한이 법정쇼를 통해 여론재판, 이미지정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정선아도 뒤에 숨어서 여론재판과 이미지정치를 역으로 활용해 강요한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들을 꾸민다.

강요한과 정선아의 대결은 그래서 전면에서 벌어지지 않고, 미디어 정치이자 여론재판이라는 쇼를 통해 행해진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이미 어린 시절 인연으로 얽혀있다. 강요한이 입양됐던 대부호의 저택에서 어린 정선아는 메이드로 일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정선아는 메이드처럼 행동하며 사실은 물건들을 마음대로 훔치고 제 하고 싶은 욕망을 채워나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사회적 책임재단에서 실세시만 비서처럼 행동하는 모습과 일관되게 그려진다.

문유석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악마판사’는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오마주가 여러 곳에서 느껴지는 드라마다. 그건 단지 다크히어로 캐릭터나 고풍스런 대저택 그리고 마치 캐릭터쇼처럼 보이는 법정쇼의 이색적인 풍경 같은 요소들 때문만은 아니다. 정선아 같은 인물은 배트맨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의 탄생과정과 특징을 유사하게 갖고 있다. 그는 ‘메이드’라는 캐릭터에서 탄생한 빌런이다.

가상 세계관에서 주제의식은 대부분 빌런의 캐릭터를 통해 전해지기 마련이다. 빌런의 탄생은 그 사회가 가진 어두운 면들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선아 같은 빌런은 전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악을 뒤에서 조종해 만들어가는 어떤 세력이 존재한다는 데서 탄생한 인물이다. 이런 빌런의 탄생이 가능하려면 대통령도 법무부장관도 또 언론이나 재계도 그 빛 좋은 대의명분들과 달리 그저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쇼를 하는 그런 국가시스템이어야 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문유석 작가가 디스토파아 대한민국이라는 가상세계에 투영시킨 현실은 아마도 이런 허울 좋은 국가시스템이 실제로는 일종의 이미지 정치이자 여론재판으로 굴러가는 연극적인 무대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세상에 그런 건 드라마 속, 그것도 디스토피아 가상세계에나 존재한다고 믿고 싶지만, 일개 수산업자 한 명의 사기행각에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정재계는 물론이고 법조계, 언론계의 인물들을 신문에서 접하는 대중들에게 그건 그저 가상이자 허구로만 다가오지 않을 게다.

‘악마판사’는 그래서 다소 위악적이고, 풍자적이며, 냉소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다. 정의는 실종되고, 국정은 농단되며, 거짓뉴스에 마녀사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상에 대한 조소. 강요한과 정선아는 대결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런 세상에 대한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세상이 실제로는 여론, 미디어에 의한 거짓 쇼에 의해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안타깝지만 지금도 정치와 사법이 뒤엉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적인 풍경이다.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라는 가상세계만의 일이 아니라.

그래서 이러한 냉소적 시선이 갖는 공감대가 충분하지만 남는 씁쓸함도 크다. 여기 등장하는 대중들은 이들의 여론, 미디어 쇼에 그저 놀아나며 찬성 혹은 반대를 누르는 무지몽매한 이들로 그려지고 있어서다. 고구마냐 사이다냐로 양분해 판단하고 거기에 따른 분노와 통쾌함만을 표하는 대중들은 저들이 벌이는 쇼의 들러리일 뿐이다. 문유석 작가의 냉소에 담겨진 서늘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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