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4’, 떡밥 던지고 스케일 키우기보단 진정성 확보 주력해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대탈출4>가 지난 12일 첫 방송됐다. 지난해 6월 14일에 시즌3의 마지막 방송 이후 1년 만이다. 시청률이 1~2%대에 머물렀음에도 네 번째 시즌까지 이어진 자체가 이미 엄청난 위기탈출 능력 발휘다. 그런데 시즌4를 앞두고 위상 자체가 이전과는 아예 달라졌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예능 부문 최초로 예술상을 수상하며 ‘돈은 나영석이 벌고, 정종연이 쓴다’는 <대탈출>의 명제를 증명 받았다. 정종연 PD와 제작진은 <대탈출> 시리즈와 선이 맞닿아 있는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시청률에 비해 높은 화제성과 2049 시청률이란 데이터가 더해지면서 티빙과 tvN은 충성도 높은 팬덤과 확장 가능성을 담보하는 대탈출 세계관에 주목했다.

방 탈출 게임에 좀비, 초자연현상 등의 스토리라인을 입히고, 조연 출연자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시즌1을 즐기던 마니아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용어 ‘대탈출 유니버스’는 올해 6월, DCTU(대탈출유니버스)라 하여 공식 유튜브 계정과 인스타그램을 가진 정식 브랜드이자 티빙과 tvN의 슈퍼IP(지식재산권) 후보가 됐다. 이 세계관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tvN은 DCTU의 또 다른 콘텐츠인 티빙 오리지널 <여고추리반>을 21일부터 2주간 수요일, 목요일에 4부작으로 재편집해 방영한다.

하지만 유례없는 관심과 지원과 기대와 달리 이 예능 세계관은 1회부터 금이 갔다. 많이들 지적했다시피 이전 시즌을 복습하면서까지 몰입할 준비를 마친 시청자들과 달리 정작 세계관의 주인공들 중 일부는 그런 세계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같은 촬영 회차인 2회는 스토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배경 설명 부분이 대폭 줄어들고, 멤버들끼리 붙어 추리를 푸는 분량이 늘어나면서 타이트해졌지만 이전 시즌보다 추리의 자유도를 제한한 장치, 보다 복잡해지고 완성도 떨어지는 스토리, 커진 스케일만큼 밀도가 낮아진 퍼즐의 묘미 등을 볼 때 제작진도 세계관의 스케일 업에 너무 몰두한 듯하다.

사실, 대탈출의 세계관은 설계가 아니라 시시콜콜한 의미부여, 발견, 피드백으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시청행위의 산물이다. 각 스토리별 연계성을 갖게 된 것도 큰 그림의 스케치가 아니라 시청자와의 소통 속에서 재즈처럼 즉흥적으로 발견되고 발전한 양상이다. 작은 문제 해결한 결과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장면들이 모여서 다시 큰 그림의 한 부분이 되고 또 다른 실마리가 되는 과정이 주는 색다른 재미가 세계관을 싹 틔운 씨앗이었다.

<대탈출> 시리즈는 정종연 PD가 밝혔듯 시청자의 피드백이 많은 프로그램이다. 소통의 동기를 끌어내는 동력은 진정성이다. 밀실에 갇힌 출연자들이 팀플레이를 통해 탈출한다는 누가 봐도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예능이지만, 출연진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풀고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의 진지함이 몰입의 문을 열었다. <여고추리반> 또한 출연자들이 설정에 몰입하는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호평을 받았다.

예능에서 진정성 자체가 기획의 틀이자 재미가 되는 경우가 여럿 있다. 일흔을 맞은 이덕화의 생일을 함께 보내며 눈물을 보인 <도시어부> 팀은 지난 5년간 낚시를 좋아한다는 진정성 하나로 재미를 만들어냈다. 짧은 촬영시간을 선호하는 이경규가 연장을 외치고, 각기 바쁜 스케줄을 가진 멤버들이 출조 일정에 맞춰 어떻게든 모인다. 이순재가 축하영상에서 말했듯 이덕화는 제작진에게 돈을 내고 다녀야 할 수준으로 여전히 그 연세에도 낚시에 진심이다. 그 덕에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 어떤 예능보다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최근 화제의 예능인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은 관찰을 끝내고 진정성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킥오프다. 여자 연예인과 셀럽들이 이벤트성 풋살 경기를 치른다는 설정 자체만 보면 지금은 아무도 하지 않는 1990년대 명절 특선 프로그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걸려 있는 트로피의 생소한 명성이나, 비교적 낮은 출연료와 상관없이 ‘방송을 떠나서’ 진심으로 이 리그에 인생을 걸고 축구를 한다.

아무도 그만큼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고, 직무에 연관된 자기계발적 요소가 딱히 없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인생을 건 승부를 펼친다. 이유나 목적은 없다. 경제적 행위나 기회비용을 따지면 극히 낮다. 별다른 동기부여도 없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에게서 간혹 볼 수 있는 순수한 승부욕이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껏 방영한 그 어떤 축구 예능보다 수준은 낮은데 몰입도와 긴장감은 최고다. 참고로 진정성 있는 출연진을 구성하며 롱런한 <불청> 제작진의 후속작이다.

최근 IP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예능에서도 ‘세계관’ 구축이 화두로 떠올랐다. 어벤져스나 아이돌 세계관 플랜처럼 어느 정도 큰 그림을 그리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예능은 유재석을 변신시키는 <놀면 뭐하니?>나, 나영석 사단처럼 집단 창작체제로 움직이는 IP가 아닌 경우를 제외하면 <식스센스>, <런닝맨>, <대탈출> 시리즈 등등 대부분 세계관은 프로그램 안에서 발견된다. 즉, 자생적으로 생겨난 세계관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피드백을 하는 요즘 ‘과몰입’이라고 표현하는 시청 형태의 산물이지 주입해서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아니다.

따라서 예능의 세계관은 시청자와의 소통 밀도와 주파수가 중요하다. 이를 다지지 않는 어설픈 세계관 확대 전략은, 세계관이란 개념과 설정의 남발은, 오히려 유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진입장벽이 될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 예능의 세계관 구축에 있어 ‘떡밥’이나 ‘스케일’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팬덤이 형성되는 동기가 있어야 하고 활발한 소통을 증명하는 피드백이 필수다.

<대탈출4>는 세계관이란 개념과 단어를 직접적으로 내세운 예능 콘텐츠다. 그런 상황에서 코어 팬층에 큰 충격을 남겼기에 제작진은 분명 이에 대한 대답을 가져오는 노력을 할 것이다. 그 답은 스케일 축소든, 방탈출이든 무조건 진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전략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세계관의 구축도 쉽지 않지만 번영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채널A,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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