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국민’을 호명하자 비난 쏟아졌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조선이 방송 출연자 및 방송 종사자에 대한 백신우선접종 요청 공문을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했다는 소식은 즉각적인 대중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백신이기주의’, ‘백신 새치기’라는 말들이 쏟아졌고, “오만하다”는 반응들과 질타가 이어졌다.

TV조선이 이런 요청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최근 <뽕숭아학당>에 출연한 박태환, 모태범이 타 프로그램에서 확진자와 밀접접촉했고 이로 인해 녹화에 참여한 출연자, 제작진 전원이 검사와 자가격리에 들어간 상황에서 결국 장민호와 영탁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다. 결국 <뽕숭아학당>은 결방을 결정했다.

공문에는 백신우선접종 요청의 이유로 최근 코로나 재확산 상황으로 방송 출연자와 종사자들의 감염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국민의 시청권익 보장을 위해 중단없이 방송 제작에 임하고 있는 방송 종사자들의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고, 방송 파행을 방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팬데믹 사태 속에서 국민들의 심리적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또 “방송 종사자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국민들에 방송을 통해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간곡하게 요청했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요청 공문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기주의와 새치기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자 TV조선 측은 재차 보도자료를 통해 이 공문이 자신들만이 아닌 모든 방송 종사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방송 촬영 현장이 보통 50명에서 100명의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고, 90%의 인력이 프리랜서로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감염 위험군’임을 강조했다. 특정 방송국 이기주의나 백신이기주의가 아니라는 것.

사실 대중들도 방송 제작현장이 대충 어떤 상황인가를 모르지 않는다. 그간 방송을 통해서도 한 프로그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가를 충분히 봐왔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상황이라고 해도 방송 제작을 멈출 수 없는 방송사의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방송가가 ‘코로나 감염 위험지대’라는 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TV조선의 백신우선접종 요청 공문이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건 왜일까.

그 첫 번째는 방송에 대해 ‘국민의 시청권’ 같은 거창한 표현을 달아 대단히 중대한 일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정작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현안들이 있다는 것. 코로나19 때문에 하루하루 힘겨운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서민들이나, 의료계 종사자들, 진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우선권’ 주장은 결국 누군가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에 대한 공감대가 선제적으로 필요하다.

두 번째는 그것이 모든 방송국과 방송 종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이런 요구를 하필 먼저 하고 나온 TV조선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그리 깊지 않다는 점이다. 공문을 통해 보면 TV조선은 “팬데믹 사태 속에서 국민들의 심리적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고, “국민들에 방송을 통해 힘과 용기를” 줘왔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이 느끼는 TV조선이라는 방송사에 대한 체감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그간 TV조선이 취해온 정치적 편향성은 이들이 말하는 ‘국민들’이 보편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지상파도 아닌 종편에서, 그것도 어떤 균형 있는 보도나 방송이 아닌 보수적인 편향으로 기울어진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가 ‘국민들’을 호명하는 건, 그 편향성을 지지하지 않는 대중들에게는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코로나19의 현 재확산 상황에 대해 국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어려운 현실을 감내하고 있지만, 방송가는 이전 단계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방송 강행을 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감이다. 사실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 방송가도 여기에 맞춰 방송 제작에 있어 보다 철저한 사전 방역이나 예방조치를 올려야 한다.

대중들이 이전부터 방송가에 계속 요구해왔던 건 ‘마스크 쓰기’다. 물론 드라마 같은 작품의 특수성은 마스크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대치할 수 있는 다른 방역이나 예방조치가 필요하지만, 예능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마스크 쓰기를 이제는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만일 마스크 쓰는 일이 어렵다면, 방송 촬영 전 전 출연자와 스텝들의 진단검사를 선제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tvN <윤스테이>는 외국인 투숙객까지 사전에 코로나 검사를 하고 전원 음성 확인을 한 후 촬영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단계에 따른 예방조치를 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은 채 먼저 백신을 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대중들이 공감할 리가 없다.

네 번째는 TV조선이 공문에 ‘국민’을 호명하듯, 방송이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방송이 보여주는 어떤 풍경들이 만들어내는 영향을 생각해 봤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편 채널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00명에 가까운 출연자들이 무대 위에 한꺼번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는 광경은 그래도 될까 싶은 우려를 낳는다. 그런 똑같은 풍경이 코로나 시국에 클럽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생각해 보라.

또 최근 들어 점점 늘고 있는 ‘술방(술 마시는 방송)’도 코로나 시국에 안 좋은 영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로망을 대리충족해주는 면이 있지만, 술방이 만들어내는 욕망이 자칫 코로나 확산의 불씨로 작용할까 싶어서다. 그 많은 토크 방식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4단계에 인원 제한을 받고 있는 대중들과 달리 여러 명이 모여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강행되고 있는 것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스럽다.

마지막으로 ‘우선권’을 요구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충분한 소통의 과정이 중요하다. 즉 그 우선권으로 누군가 양보해야 하는 이들에 대한 설득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TV조선은 그 우선권 주장을 다소 당연하다는 식으로 요구했고, 그 이유로 공감대가 없는 국민을 호명했다. 사실 그간의 신뢰가 있거나, 충분한 소통 과정을 통한 공감대를 만들었거나, 노력이 전제되었다면 이런 반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TV조선이라는 방송사가 가진 변변치 않은 신뢰와 그 소통방식에 대한 낮은 공감대를 드러낸 면이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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