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 쇼하는 세상과 대적하려면 그 무대에 서야 한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현실에 정의 따윈 없어. 게임만 있을 뿐이야. 그것도 지독하게 불공정한 게임.”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가 그리고 있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은, 마치 우리네 현실의 또 다른 평행세계처럼 그려져 있다. 다른 선택에 의해 전혀 다른 지경에 이른 가상의 대한민국.

하지만 그것을 가상이고 그저 허구일 뿐이라고 강변하면 할수록 어딘지 씁쓸해진다. 그건 허구여야 할 그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가면 갈수록 점점 현실감을 더하고 있어서다. 처음 이 ‘악마판사’가 된 강요한(지성)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그 믿기 힘든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김가온(진영) 판사가 점점 강요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그 길을 함께 가기 시작하는 건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 허구에 실감을 갖게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

그간 강요한의 ‘쇼’를 비판하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행동들을 질타해왔던 김가온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범인이 바꿔치기 되어 대신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도하고는 그 충격에 절규한다. 그래도 지켜지고 있을 것으로 믿어왔던 최소한의 정의마저 실종된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살인죄를 지어도 법정에 서지 않는 권력과, 법정에 서도 판결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이 있고,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희생양을 내세우고는 동요하는 민심을 특정집단에 대한 ‘혐오’라는 피 묻은 고깃덩이를 던져 잠재운다. 그래도 지켜져야 할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믿어온 김가온은 현실에 정의 따윈 없고 대신 ‘지독하게 불공정한 게임’만 있다는 강요한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법치를 지켜야한다 믿고 있는 그의 스승이자 올곧은 법조인인 민정호(안내상) 대법관을 김가온은 몰아세운다. “사람들이 바보라서 그냥 선동당해서 분노하고 있는 겁니까? 시작은 다른 거였잖아요. 그저 나쁜 놈들, 선량한 사람들 눈에 피눈물 나게 만드는 죽일 놈들, 그런 놈들 제대로 벌해달라는 게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였나요? 잘 하셨어야죠. 교수님 같은 분들이 잘 하셨으면, 대법관씩이나 되면서 제대로 하셨으면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좀 제대로 했으면.”

김가온의 그 말은 강요한이 만나게 해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말이었다. 가정용 살균제 사건 때 딸아이를 잃은 변호사, 만취한 상태에서 성추행을 당했는데 가해자가 ‘장래가 촉망받는 의사라며’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걸 그저 봐야 했던 여성, 백화점 붕괴사고로 누님을 잃은 형사. 그런 피해를 입었지만 법은 제대로 된 정의를 실현시켜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건 이 정의 없는 세상에서 게임에 이기기 위해 강요한의 쇼에 동참하는 것이다.

왜 하필 쇼냐고? 정의 없는 세상이 굴러가는 그 시스템의 작동원리가 쇼이기 때문이다. 이미 진심이 사라져버린 정치, 경제, 사법, 언론은 모두 쇼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으로 작동한다. 대통령은 선동쇼를 하고, 경제인은 사회적 책임 운운하며 뒷구멍으로 사적 치부를 일삼는다. 법조인들은 돈으로 형량을 사고팔고, 언론은 돈 되는 일이라면 가짜뉴스라도 팔아먹는다.

쇼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무대 위에서 또 다른 쇼로 저들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강요한은 라이브 법정쇼를 만들었다. 그 위에 주인공으로 서고, 대중들이 갈망하는 정의를 구현하는 쇼를 통해 지지를 얻음으로써 권력자들과 맞서는 힘을 만든다. 쇼에서 중요한 건 룰이나 과정이 아니다. 어떤 방법을 쓰든 이겨 결과를 만드는 일이다. 강요한이 ‘악마판사’가 된 건, 이 쇼에서,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 위함이다. 악마들과 싸워 이기려면 악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가온은 자신이 믿고 있던 현실이 쇼였다는 걸 깨닫고는 생각을 바꾼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민정호에게 선언한다. “어차피 현실에 정의는 없고 게임만 있을 뿐이라면 이기는 게임을 하고 싶네요.” 이 말은 어딘가 지금의 청춘들을 떠올리게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평생 집 한 채를 사기가 어렵고, 영끌해 주식에 부동산에 뛰어들기라도 해야 어떤 성장이 가능한 현실인데다,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금수저, 흙수저로 평생의 삶이 굴러가는 ‘쇼’ 같은 현실에서 청춘들에게 삶의 의미니 정의니 원칙, 소신을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런 현실을 한판 게임처럼 생각하고 어떻게 이겨야 할까만을 고민하겠다는 김가온 같은 청춘이 공감된다.

<악마판사>에 등장하는 이른바 ‘사회적 책임재단’의 권력자들은 하나 같이 꼭두각시면서 하는 짓들은 볼썽사납다. 강요한은 화재로 형이 사망했는데 도망치기 바빴던 그들이 자신을 찾아와 형이 하려했던 기부를 요구하는 그 뻔뻔한 모습에 구역질이 치솟았다고 말한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이라는 허구의 설정을 담은 <악마판사>의 그 권력자들이 유발하는 구역질은 단지 저 드라마 속 이야기 때문일까. 쇼이고 허구라고 말할수록 그래선 안 되는 현실과의 겹쳐짐이 야기하는 불편함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구역질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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