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PD의 퇴사와 2021년판 ‘무한도전’
김태호PD이기에, 20년 만의 도전에 늘 그랬듯 또 한 번 기대를 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주 가장 큰 예능 뉴스는 MBC 예능의 간판 김태호 PD가 입사 20년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이었다. 유능한 PD들의 이직은 언제나 연예뉴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곤 했지만, 우리나라 예능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인 <무한도전>으로 새로운 예능의 시대를 연 톱스타PD이자 지상파 예능 진영에 남은 거의 유일한 거물의 거취라는 점에서 앞날에 대한 기대가 무성한 예측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지난 십수 년간 MBC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상징적인 인물이 떠난다는 점에서 MBC 예능국의 체급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어느덧 하반기를 훌쩍 넘긴 2021년은 지상파에서 케이블, 종편 할 것 없이 TV예능의 위기를 넘어서 퇴보가 본격화된 한 해다. 중장년층을 바라본다며 모두가 트로트 판에 달려간 이후 경연, 골프, 연애 등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고, 결과는 멋쩍다.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부터 부캐의 정착, 피식대학의 부캐 세계관, 연애 예능의 붐을 선도하는 <환승연애>나 <D.P.>까지 (물론 방송사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올해 히트한 대중문화 상품과 트렌드의 대부분은 TV 채널 밖에서 나왔다. 모든 것이 무너진 <펜트하우스> 시리즈에 보내는 자화자찬에서 보듯 반세기 넘도록 대중문화계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메이저리그이며, 모든 문화를 아우르고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지렛대로서 권위와 품위를 가졌던 TV콘텐츠의 위상이 본격적으로 역전된 셈이다.

예능으로 들어가 봐도, 관찰예능의 다음 패러다임은 이제 유튜브의 브이로그를 계승해 출연자의 이름을 내세우는 웹예능들로 옮겨갔다. 이제 TV콘텐츠로 그 이상을 보여주기란 스펙터클로 승부를 보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게 전개되고 있다. TV예능만의 전형인 캐릭터쇼는 끝까지 아름답기가 여전히 어렵다. 관찰예능 시대에 탄생해 유지 중인 유일한 캐릭터쇼 <아는 형님>의 부침을 보라.

그래서 최근 <놀면 뭐하니?>가 <놀면 뭐하니+>라 명명하고 보인 <무한도전> 시즌2의 행보가 무척 의아하긴 했다. 전개상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지난 2년간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바닥에서 정상으로 향한다는’ <무한도전>의 서사구조와 도전 패턴에 섭외력으로 승부 보는 복고 음악예능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되풀이 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트로트 붐을 양탄자 삼아 열게 된 부캐의 재미 또한 유재석이 김태호 PD에게 투덜거리면서 시작하는 익숙한 서사가 반복되는 사이 TV 밖으로 나간 희극인 후배들이 이어받아 버전 업을 했다.

그런데 <놀면 뭐하니?>는 <무도> 멤버 중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멤버와 없는 멤버가 있음을 밝히고, 하하와 정준하와 함께 오늘날 시대에 부합하게 신봉선과 (새로운 유라인인) 미주를 새로운 파트너로 영입했다. 지식 대결인 장학퀴즈, 몰래카메라 상황극 뉴스진행, 몸개그 한판인 ‘한가위 맞이 노비 대잔치’ 등을 진행하며 완전 그 시절 무드로 돌아가 <무한도전>스타일의 캐릭터쇼를 펼친다. 툭 튀어나오는 엉뚱함과 귀여운 유치함, 무식 코드의 개그와 몸개그, 샌드백 롤 캐릭터의 존재와 리액션을 진두지휘하는 유재석의 진행 하에 멤버들은 마치 NFL을 보는 듯한 속도감으로 티키타카의 향연을 펼친다. 오늘날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게 한 장면들. 그래서일까. 반가움에 덕에 <놀면 뭐하니?>는 3주 연속 토요일 비드라마 TV화제성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평가 또한 TV콘텐츠 사이에서 경쟁한 경우다. 복고가 트렌드는 될 수 있어도 당대를 정의하는 시대정신이 될 순 없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의 바이브를 복기하는 것만으로는 추억으로 이뤄진 관계망 이외의 전진하는 길을 만들기 어렵다. 미주가 최선을 다해 다른 예능 베테랑들의 기에 눌리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부진 신봉선이 빠르게 캐릭터를 잡아 가장 어려운 공격수 역할을 맡고, 하하가 예전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반가움과 리액션을 담당하고, 정준하가 유재석의 전담 샌드백이 되어 온갖 구박을 당하면서 만드는 재미의 최대치가 과거의 추억이 번져 나오는 몇 장면의 웃음이다.

모두 열심히 하지만 박명수, 노홍철, 정형돈처럼 때때로 유재석의 강력한 지휘를 뚫고 나와 예측 불가능한 재미와 즉흥적 상황을 만드는 멤버가 없다보니 과거와 달리 웃음이 버라이어티하지 않다. 무엇보다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한들 실제 출연자의 성장 서사와 프로그램 내의 성장 서사의 궤가 맞아떨어지면서 전달되었던 살아 있는 캐릭터쇼라는 정수까지 복원할 수는 없다는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런데 이번 뉴스를 보면서 지금 한창 진행하고 있는 <놀면 뭐하니+>는 피날레를 위한 준비가 아니었나는 생각이 든다. 추측컨대, 완전체로 <무한도전2>가 이뤄질 수 없음을 밝힌 것부터 시작해 어쩌면 <놀면 뭐하니?>까지 이어진 <무한도전>과 여전히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함, 고마움에 작별을 고하는 일종의 이별 여행인 셈이다.

변화를 위해서 가장 확실하고 빠르고, 의지 반영이 손쉬운 것이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리와 책무와 발목 모래주머니기도 했던 MBC를 벗어난 김태호 PD의 다음이 정말 궁금해진다. 2000년대 중반 <무한도전>은 기존 예능과 선을 그으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방송에서 솔직한 인간미를 드러내도 괜찮고, 예능의 재미에 웃음을 넘어서 서사와 정서까지 포함하게 된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이번에 MBC 사옥에 내려놓고 나오는 게 사원증뿐 아니라 <무한도전>일 수도 있을까. 과연 <무한도전>이 아닌 콘텐츠로 김태호 PD가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껏 한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기획자의 정체성이 하나로 여겨진 사례는 없었기에 더욱 화제다.

이전에도 선배 스타PD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정서적 친밀감이란 예능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적 창구를 만들며 당대를 정의하는 콘텐츠 경험을 예능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예능PD이기에 더욱 응원하게 된다. TV콘텐츠가 힘을 잃고, 예능의 전체적인 에너지와 재미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그런 이때 변화에 나섰다. 십 수 년 전 예능을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격상시킨 김태호 PD이기에, 20년 만의 새로운 도전에 늘 그랬듯 또 한 번 기대를 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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