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박선영의 진가가 여기서 발견됐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정규로 돌아온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이제 첫 시즌의 마지막 후반전 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다. 최종 결선에 오른 두 팀은 변치 않는 막강한 실력으로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는 FC불나방과 갈수록 조직력이 살아나고 있는 FC국대패밀리다. 결승 전반전에서 국대패밀리는 불나방을 맞아 만만찮은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불나방의 영원한 에이스 박선영의 발끝으로부터 이어진 선제골을 먹었다. 하지만 후반전 경기는 어떤 반전의 드라마가 쓰여질 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가 궁금하긴 하지만, 사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지금껏 달려온 그 과정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입증했다 보인다. 최고 시청률이 10.2%(닐슨 코리아)까지 치솟을 정도로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했고, 무엇보다 마치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치부됐던 축구,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었다. 그간 남성 중심으로 편제되곤 했던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특히 스포츠 소재 예능에서 배제되다시피 했던 여성들을 운동장 위에 세웠다. 그것도 축구라는 종목으로.

놀라운 건 <골 때리는 그녀들>을 통해 그간 우리가 배우, 모델, 개그맨 같은 그 직업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들의 또 다른 진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불타는 청춘>에서 털털한 매력을 보이곤 했던 FC불나방의 주장 박선영이다. 젊은 시절 최민수와 연기 합을 선보이기도 했던 배우로 주목됐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불타는 청춘>에서 보게 된 인물. 하지만 그의 진가를 <골 때리는 그녀들>이 끄집어냈다.

결승전을 앞두고 박선영이 인터뷰를 통해 고백한 것처럼, 어려서 축구를 통해 운동을 좋아하게 됐고 체대에 들어가게 됐지만 모델, 배우의 길을 선택하면서 멀어졌던 축구를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찾은 느낌이라고 했다. 만일 지금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축구를 선택할 수도 있을 거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그는 함께 고생하며 뛴 동료 팀원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박선영의 진가는 경기를 뛸 때 드러난다. 남다른 승부욕을 드러내는 그의 눈빛과 다부지면서도 능수능란한 경기 운영 능력, 그리고 그의 발끝에서 시작돼 골로 이어지는 마법 같은 실력은 <불타는 청춘>에서도 또 그의 젊은 시절 배우로 활동했던 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이처럼 강력한 화제를 낳고, 다른 팀들이 동기부여를 갖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박선영이 아닌가.

축구를 통해 또 다른 진가가 보인 인물은 박선영만이 아니다. FC불나방에서 적지 않은 나이에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마지막 경기’라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뛰는 신효범도 마찬가지다. 프리킥으로 강하게 날아오는 공을 얼굴에 그대로 맞은 후, 공을 찬 이가 괜찮냐고 미안해하자 “원래 축구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선선히 괜찮다고 말하던 신효범의 그런 면모를 어떤 다른 프로그램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모델팀인 FC구척장신에서 부상을 당하고도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악바리 한혜진이나, 처음에는 영 서툴렀지만 성실한 훈련을 통해 갈수록 기량이 늘어 에이스로 거듭난 이현이도 모델로서는 보여줄 수 없는 매력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들이 최정상의 런웨이에 서게 된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엄청난 노력의 결과라는 걸 축구에서의 성장을 통해 볼 수 있었다는 것.

웃음을 주는 이들로만 이미지화되어 있던 FC개벤져스팀의 개그우먼들도 빼놓을 수 없다.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투혼으로 웃는 모습보다 눈물을 더 많이 보여준 오나미, 안영미, 신봉선 같은 인물들은 우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봐왔던 모습과는 또 다른 이들의 진가를 드러냈다. FC국대패밀리에서 갈수록 성장하는 한채아나 남현희의 부상으로 긴급 투입되었지만 역시 부상을 당한 채 끝까지 결승전에 선 전미라의 투혼도 빼놓을 수 없다.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지만, 거의 모든 출연자들이 그들 각자가 걸어왔던 영역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또 다른 진가들을 이 프로그램이 끌어냈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여자축구라는 소재 자체가 깨놓은 여러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고정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이들이 또 다른 매력적인 얼굴이 있다는 걸 드러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본캐와 더불어 부캐를 일상적으로 누구나 갖는 시대에 들어와 있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역할과 한 가지 모습만을 사회는 여전히 강요하는 면이 있다. 특히 방송가는 더더욱 그렇다. 어떤 역할을 해온 이는 그 바깥으로 튀어나올 때 만만찮은 편견에 마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골 때리는 그녀들>은 이런 편견을 깨주고 나아가 그것이 또 다른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향후 방송의 새로운 도전 영역을 제시하고 있다. 박선영을 위시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골을 때리자 눈빛이 바뀐 그들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성공은 방송의 또 다른 영역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들의 색다른 도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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