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로코물로 승부를 본 ‘슬의생2’ 제작진의 영민함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한때 우리 드라마의 문제점은 사내 연애에 있었다. 무슨 직업을 갖든, 어떤 일을 하든, 직급이나 나이 차이가 어떠하든, 무슨 위기와 일에 당면하든 어쨌든 주로 연애를 했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장르물의 발전이 더뎠고, 멜로를 벗어난 다양성이나 스토리텔링에 강점이 있는 작가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는 주로 대가족을 다루는 일일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극의 디테일이나 장르적 발전이 더뎠다.

시간이 흘러 아시아의 호랑이가 된 오늘날 우리나라 드라마의 수준은 무척이나 올라갔다. <킹덤>과 같은 장르물은 물론이고 <스카이캐슬><펜트하우스>처럼 막장극도 수준과 에너지가 달라졌다. 그러는 사이 로맨스는 주춤해졌다. 그럼에도 아시아권에서 우리 드라마 콘텐츠의 강점은 여전히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에 있다.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평가 사이트인 미국의 랭커닷컴에 따르면 <간 떨어지는 동거>,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오월의 청춘> 등 올해 해외에서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 열 편 가운데 네 편은 로맨스물이고, 동남아의 넷플릭스라 불리는 뷰(Viu)나 최대 로컬 OTT 유넥스트(U-NEXT) 또한 통계상 로맨틱 코미디를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가든>, <별에서 온 그대> <최고의 사랑> <또 오해영> 등 연애의 설렘을 판타지로 녹아낸 대작 로맨틱 코미디의 명맥은 2010년대 초중반 이후 뚜렷한 히트작을 내지 못하며 희미해졌다. 중국의 3대 영상 플랫폼 중 하나인 아이치이가 <간 떨어지는 동거>에 투자한 이유도 많은 이용자들이 한국 로맨스물을 찾는데 최근 제작된 작품 수가 많이 줄었다는 데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대단한 것은 이런 때 병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즌1에 이어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연애하는 이야기로 시즌2를 전환했다는 데 있다. 물론 시즌1에서 진행되던 러브라인을 발전시킨 거지만 시즌1은 <슬기로운> 시리즈는 특유의 작법으로 인해 로코물과는 거리가 있었다. <슬기로운> 시리즈가 신선했던 이유는 우리나라 드라마 중 거의 유일하게 특정한 사건에서 발화된 서사 없이도 매우 풍부한 감정을 담은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메디컬 드라마지만 그간 본 풍경과 이야기와 무척 달랐다. 작법의 큰 틀은 미국 시트콤에서 본 듯한 데 담고 있는 세계관과 정서는 우리네 주말 드라마보다 더 가족적이고 따듯하다. 큰 사건사고와 갈등 없는 대신 환자, 보호자, 간호사, 인턴, 실습 나온 의대생, 레지던트, 교수 등등 병원에 오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대형 뮤지컬처럼 펼쳐낸다. 러브라인만 해도 주연 5인방이 서사의 기반이긴 하지만 그들 사이에 삼각관계가 형성되고 긴장이 주조되다 해결되는 식의 기승전결로 이뤄지는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을 따르지 않는다. 에피소드, 장면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고, 그런 짧은 상황들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이 발견되고 발산된다.

그런데 <슬의생> 제작진은 시즌2에서 본격적으로 판타지를 지향한다. 우리가 아는 의사 조직과 우리가 경험한 대형 병원의 풍경과 달리 좋은 사람들로만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좋은 사람들이 모두 병원에서 인연을 맺고 사랑의 설렘을 전한다. 그것도 두 커플은 남자 상사와 여자 후배의 전형적인 구도의 연애다. 무척이나 통속적인데, PPL을 무리 없이 심는 장면이나 OST발표, 방송 전후로 나영석 사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업 등등 허투루 하는 것 없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감안할 때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의 판타지, 로맨스의 설렘으로 무드를 전환한 게 우연은 아닌 듯싶다. 물론, 시즌1의 신선함을 좋아하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 변화로 다시 한 번 대중들의 사랑을 이끌어냈다.

로맨틱 코미디의 핵심은 행복한 판타지의 설계다. 좋은 사람들로 꽉 들어찬 병원 조직에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과 달달함에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희망을 전하는 의사, 사회 초년생과 후배들이 무럭무럭 성장하도록 돕는 어진 어른의 따스함으로 판타지를 더욱 견고히 한다. 어떤 관점에서 시즌2는 첫 장면에서 등장해 결국 사랑에 골인한 추민하(안은진) 선생의 연애(인생) 성공기이기도 하다. 주요 사건과 갈등으로 빚어진 줄거리가 없는 대신 사람 사는 이야기와 현실적인 공감대를 기반으로 따스했던 시즌1과 달라진 점이다.

병원의 현실과는 한 발 더 떨어진 판타지는 공고해졌고, 각자 파트너가 정해져 있는 러브라인 탓에 이야기는 단순해졌다. 모두가 연애에 몰두하면서 러브라인 밖에 있는 서사와 감정선은 주변부로 조금 밀려났다. 하지만 비슷한 서사나 특징의 반복이 아니라 집중도를 높인 변화, 로맨틱 코미디로의 변환으로 다시 한 번 기록을 경신했다.

<슬의생2>는 현실감을 극대화한 색다른 서사구조와 일상 풍경의 반복이 아니라 판타지와 로맨틱 코미디의 설렘으로 변화를 택했다. 시종일관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도 발전적인 관계로 이어가는 로맨스의 해피엔딩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시대가 원하는 판타지를 자극했다. 환호성은 시즌1보다 작게 들려오지만 평균적으로 높아진 시청률은 숨죽이고 몰입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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