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데뷔 야생돌’, 뻔할 줄 알았던 혼종 오디션의 희한한 역습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솔직히 이야기하자. 직업적 TV 평론가가 아니었다면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굳이 MBC <극한데뷔 야생돌>을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세기 들어 MBC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본 적은 없고, 척박한 야생의 땅에서 체력을 검증한다는 콘셉트는 채널A <강철부대>를 연상케 하는데, 아이돌로 데뷔할 연습생들이 혹시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안전문제부터 덜컥 떠오르지 않나.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다는 점은 ‘OO번 훈련병’으로 불리는 육군훈련소와 ‘OO호 가수’로 불리는 JTBC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을 동시에 떠오르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새로운 것 없이 잘 된 타사 프로그램들을 어설프게 카피한 것 같고, 안전문제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심지어 방송사가 MBC라니. 온라인 상에선 <극한데뷔 야생돌>을 우려의 눈빛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고,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직업 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난 뒤,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의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체력 테스트와 트레이닝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온화한 축”(이승한)이며, 현장의 트레이너들과 스튜디오의 패널들 모두 “성공에 박수를 보낼지언정 실패를 타박하지는 않는다.”(정석희)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심심찮게 있었던 “불필요한 인격적 모독이나 폭언, 도발을 일삼는 장면”(이승한)도 찾아볼 수 없는 <극한데뷔 야생돌>은, 생각보다 순한 맛이다. 여기에 “팬덤에 의한 인기투표가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정석희)과 “예능적으로 유의미한 인상을 남긴 도전자들까지 빠른 속도로 짚어 캐릭터를 만들어”(이승한) 준다는 점은 자극이 빠진 자리에 들어온 <극한데뷔 야생돌>만의 승부 포인트다.

물론 우려는 남는다. “여전히 현장에 안전장비나 의료시설은 잘 구비되어 있었는지 마음이 쓰이”(이승한)기도 하고, “6명이나 되는 진행자 중 누구도 육체‘력’이 아닌 육체‘건강’, 그리고 정신‘력’이 아닌 정신‘건강’을 언급하지 않는”(남지우) 콘셉트가 도전자들의 힘에만 집중하느라 몸과 마음의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도 신경이 쓰인다. 그러니 [TV삼분지계] 평론가들의 호평도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제한적인 호평이다. 다만, 지켜볼 가치는 있어 보인다.

◆ 나무람도 독려도 없이, 본인의 도전에 임한 도전자들

왜? 또? MBC에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소식에 의아했다. 설마 <언더나인틴>이라는 희대의 실패작을 까맣게 잊은 게야? 첫 화가 시작되자 더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대뜸 극기 훈련이라니, 설마 채널A <강철부대>? 저 황무지 같은 척박한 현장은 MBC <두니아>? 이름 대신 번호라고? 이건 JTBC <싱어게인>? 이름과 나이와 과거를 묻지 말라고? 영화 <실미도>냐. 이것저것 모아 놓은 짬뽕이자 짝퉁이로군. 하지만 이내 선입견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삐딱하게 바라보던 나를 TV 앞으로 당겨 앉게 만든 건 도전자들의 진정성이다. 극기 훈련에 필적할 미션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은 강요가 아닌 본인의 선택이다. 포기한다 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고 독려도 않는다. 또한 꼴찌라 한들 열패감을 느낄 까닭이 없다. 단지 체력이 달리는 것뿐이니까. 현장의 교관(?)들은 물론이고 스튜디오의 관찰 시선도 성공에 박수를 보낼지언정 실패를 타박하지는 않는다. 체력 미션에서 1위를 기록해 번호 대신 자신의 이름을 찾은 도전자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지 않을까? 더 배점이 높은 실력 미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체력 300, 실력 600, 온라인 인기투표 점수 100. 팬덤에 의한 인기투표가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새롭다. 2회 만에 눈에 들어오는 도전자들이 생겼다. 넘어진 동료에게 손을 내미는 도전자, 미션에 통과하지 못한 동료와 마지막까지 함께 하겠다는 도전자. 1위부터 14위까지, 데뷔조에 도달하는 것이 모두의 목표지만 순위보다는 그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과정으로 보면 좋겠다. 도전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포기해도 괜찮아.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자극은 적고 캐릭터는 살렸다

기획의 태그라인만 보면 MBC <극한데뷔 야생돌>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젊고 건장한 남자들이 신체적 능력을 과시하며 제 한계에 도전한다는 콘셉트는 채널A <강철부대>를,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는 콘셉트는 JTBC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을 연상시킨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아무리 “아이돌 활동을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며 체력 테스트의 당위성을 설명하려 해도, 굳이 저런 방식으로 체력을 검증해야 할 필요성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잘 설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뻔하다’는 선입견을 견디고 조금 보다 보면, <극한데뷔 야생돌>은 생각보다 단점은 적고 장점은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우선 가혹행위나 무리한 도전을 시킬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극한데뷔 야생돌>의 체력 테스트와 트레이닝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온화한 축에 낀다. 교관이나 트레이너로 참여한 이들이 도전자들에게 불필요한 인격적 모독이나 폭언, 도발을 일삼는 장면은 없으며, 그나마 가장 엄한 교관인 유도선수 조준호조차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익숙한 허당끼 가득한 얼굴로 돌아온다. ‘악마 같은 트레이너’와 ‘지옥 같은 미션’을 뚫고 살아남는 ‘극한 생존’의 면모가 다른 오디션에 비해 오히려 적으니, 매 스테이지마다 제 재능을 증명해 보이는 도전자들의 캐릭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기능이라 한다면, 경쟁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도전자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시청자의 기억 속에 각인시켜 준다는 점일 것이다. <극한데뷔 야생돌>은 그 지점에서 예상 외로 유능하다. <극한데뷔 야생돌>은 각종 테스트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우수 도전자들은 물론, 예능적으로 유의미한 인상을 남긴 도전자들까지 빠른 속도로 짚어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제작진과 스튜디오 패널들의 사랑을 받는 2호와 14호, 안무 소화 미션에서 혼자 남은 2호를 위해 마지막까지 함께 춤을 췄던 39호는 그 어느 미션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음에도 빠르게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었다. 여전히 현장에 안전장비나 의료시설은 잘 구비되어 있었는지 마음이 쓰이지만, <극한데뷔 야생돌>의 초반은 아직까지 기대보다 준수하다. 희한하게도 그렇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돌?

“흙바닥, 체력, 저 정도 정신력이면 나중에 데뷔해도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MBC <극한데뷔 야생돌>의 착상과 컨셉,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정서는 이런 말들을 통해 설명되고 정당화된다. 아이돌 선배로서 긴 경력과 혁혁한 공을 쌓아온 성규의 조언이니, 참가자들이 듣기에도 틀림이 없는 말일 것이다. 메인 MC격의 자리에 앉은 가수 김종국은 운동, 체력, 육체의 평론가 같은 면모를 보이며 시종일관 적절한 코멘트로 방송을 채우기도 한다. 그의 유튜브 <GYM종국>의 애청자인 나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유형의 신체와 조건들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운좋게 그의 눈에 들어 육체 평론을 받게 된 참가자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섯이나 되는 진행자 중 누구도 육체‘력’이 아닌 육체‘건강’, 그리고 정신‘력’이 아닌 정신‘건강’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2주 내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모든 미션을 체‘력’의 3영역, 그리고 실‘력’의 4영역으로 채운 기획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돌이켜보면 우리 앞에 섰던 재능 있는 가수, 유능한 아이돌들을 멈춰세웠던 건 힘(力)이 아닌 건강이었다. 그들의 젊은 육체와 사랑스러운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우울증, 공황장애의 침범을 받았다. 일생을 숨쉬듯 운동하고 관리했을 체력도, 대중의 그 모든 시선과 비판을 감내하던 정신력도, 잃지 않고 지켜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힘과 건강이 딱 둘로 나뉘는 것은 아니며, 힘을 추구하는 과정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극한데뷔 야생돌>이 밖으로 표출되는 힘에만 집중할 뿐, 안의 건강을 지키는 ‘내력’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출연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방송국 혹은 제작사가 모두를 위한 건강 검진 정도는 제공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랬으리라 믿지만, 만약 그러지 아니했다면?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사진=M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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