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고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 만들라고? 공부 좀 하시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는가?” 지난 12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성중 국민의 힘 의원은 양승동 KBS 사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작품은 우리가 만드는데 큰돈은 미국(넷플릭스)이 싹 다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데서 나온 질책에 가까운 질문이다. 또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도 <오징어 게임>을 봤냐고 양 사장에게 묻고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며 “KBS가 그런 역할을 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마도 이런 질문들에 양 사장은 당황했을 듯싶다.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은 현실적으로 공영방송인 KBS에서 시도될 수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건 법적으로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지상파 그리고 공영방송에 대한 대중정서가 그런 자극적인 수위의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오징어 게임>은 KBS 같은 지상파가 제작할 수 없는 수위의 작품이다. KBS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 사장이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틀린 말이 없다.

양승동 KBS 사장
양승동 KBS 사장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서 모든 방송사들이 그런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다. 또 그게 바람직한 선택도 아니다.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건, 지상파를 본방사수하던 시절에서 이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콘텐츠의 주 소비 플랫폼이 변화하고 있는 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플랫폼은 지상파, 케이블, 종편, 웹, OTT 등 다양해졌다. 콘텐츠들은 이제 그 색깔에 어울리는 플랫폼과의 매칭이 성패의 관건이 됐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플랫폼 사상 최대의 성적을 낸 건, 이 콘텐츠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최적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수위 높은 자극을 갖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고, 한국 콘텐츠로서의 로컬 색깔을 분명히 갖고 있지만 데스 서바이벌 장르 같은 글로벌한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장르물에, 자본화된 계급 사회의 경쟁시스템을 신랄하게 은유해낸 메시지가 더해져 글로벌한 공감대까지 만들었다. 이런 표현이 현재 가능한 건 OTT 같은 플랫폼이고, 넷플릭스는 그 선두주자로서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이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일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KBS 같은 지상파 플랫폼에 걸었다고 생각해보라. 국내의 대중정서가 이걸 순순히 허용할 수 있을까. 또 해외에서의 이만한 성과를 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KBS가 지상파 플랫폼인데다 국민들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OTT 같은 새로운 방송 소비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현재 그래서 KBS는 지금껏 해왔던 상업방송과 비슷한 전략들을 오히려 수정해 좀 더 공영방송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콘텐츠 생산을 해야 하는 게 맞다.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가 아니라.

아마도 국정감사 자리에서 <오징어 게임>이 거론된 건, 워낙 최근 화제작인데다 이 작품의 글로벌한 성과와 더불어 제기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으로 인해 자칫 국내 콘텐츠 산업이 하청업자로 종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 게다. 실제로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국내 미디어 산업의 넷플릭스 종속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대안 없는 비판에 가깝다. 넷플릭스로 인해 한국 콘텐츠들이 그 위상을 제고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 글로벌 플랫폼을 그저 한국 콘텐츠 제작사 잡아먹는 공룡으로 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활용하면서 계약조건들을 개선해나가는 경계와 협업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KBS에 요구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제 한국 제작사들과 협업해 이미 그 성과를 내고 있는 넷플릭스 측에 질문하는 게 더 맞다.

이제 넷플릭스만이 아니라 디즈니플러스도 곧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 OTT 시대는 이미 활짝 열렸고 그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티빙, 웨이브, 왓차, 쿠팡 등등 토종 OTT들이 이미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 콘텐츠들이 글로벌 대중들에게 열광을 얻을 만큼 높은 완성도와 대중성을 모두 확보하고 있다는 걸 <오징어 게임> 등의 성공이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네트워크상에서 벌어지는 콘텐츠 산업의 글로벌한 대결은 미래 산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보다 심도 있게 사안을 들여다보고, 향후 한국 콘텐츠 산업이 나아갈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들이 국정감사에 등장한 질문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건, 그 질문에 담겨진 현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KBS에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못 만드냐고 묻는 이런 인식수준으로 어떻게 이 콘텐츠 산업 격변기를 대응할까. OTT 시대에 쌍팔년도 수준의 질문이 오가는 국감의 현실이 암담하게만 느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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