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차차차’, 클리셰 판타지에도 힐링을 줬다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가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6%대에서 시작한 드라마는 마지막 회 최고시청률 12.6%(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서비스되며 <오징어 게임>과 함께 관심을 받은(TV쇼 부문 7위였다) <갯마을 차차차>는 무엇보다 시청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힐링 드라마’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던 것.

하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갯마을 차차차>의 스토리라인은 그리 새로운 건 아니었다. 변방의 삶에 대한 동경이 공진이라는 가상의 갯마을에서 사는 따뜻한 사람들로 판타지화되어 그려진 건, 이미 변방을 공간으로 하는 드라마들(이를테면 <동백꽃 필 무렵>이나 <라켓소년단> 같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클리셰들이 적지 않아 비판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특히 윤혜진(신민아)과 홍두식(김선호)의 관계 진전을 위해 뜬금없이 등장했던 가택 침입 범죄자 설정이나, 도촬하듯 이들의 사적인 연애 광경을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등의 다소 과하게 그려진 지역민들의 과도한 관심은 폭력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런 비판의 소지들이 작가의 의도된 결과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런 비판의 소지들이 만들어진 건 돌려서 생각해보면 <갯마을 차차차>가 과거에는 그저 받아들여졌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달라진 감수성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클리셰를 끌어다 쓰기도 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홍두식의 과거사는 비감 가득한 에피소드로 그려졌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 클리셰에 가까웠다. 어딘가 비극적인 과거사를 가진 남자주인공이라는 클리셰를 위해, 사실상 그의 잘못이라 보기 어려운 사건조차 애써 그의 잘못으로 치부한 면이 적지 않았다.

펀드매니저로서 자신이 요구한 것도 아닌 상품 가입에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경비아저씨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갑작스런 주가하락으로 자살시도를 했고, 그 병원을 찾아가다 진짜 형처럼 생각하며 지냈던 대학 선배 정우(오의식)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 걸 홍두식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여겼고 또 그 피해자 가족들도 그의 탓으로 돌렸지만 그건 상식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연 있는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너무 작위적으로 클리셰를 끌어다 쓴 면이 적지 않다.

엔딩도 결국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갯마을 차차차>는 그래서 현실적이라기보다는 판타지 드라마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실상 공진 같은 변방의 공간이 이토록 따뜻한 사람들의 정이 넘치는 살고픈 곳으로 그려진 것이 현실일 수는 없다. 다만 드라마는 경쟁적인 현실 때문에 점점 사라져가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가치를 도시에서 한참을 벗어난 갯마을을(그것도 가상이다) 통해 바람직한 판타지로 그려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이런 많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갯마을 차차차>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응들을 만든 걸까. 그건 이 드라마가 공진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그려낸 판타지가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죽고 죽이는 <오징어 게임> 같은 경쟁적 현실 속에서 <갯마을 차차차>는 마치 그곳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코로나19의 현실은 더더욱 그 판타지를 강력하게 만들었다. 저런 곳에서 단 몇 시간이라도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있고픈 마음. <갯마을 차차차>가 건드린 부분이다.

티격태격하고 지나치게 타인의 사생활에 간섭하지만 공진 사람들의 친밀감은 거의 가족 수준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개인의 경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도시에서라면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고 심지어 범죄가 될 수도 있는 그런 끈끈함이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은 현실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이나 범죄들을 아름다운 갯마을로 은폐하려 한다기보다는, 아예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공동체 판타지를 통해 잠시 잊고픈 욕망을 드러낸다. 저런 동네가 어딨어 하면서도 저렇게 지내도 안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대한 희구랄까.

그래서 드라마는 도시의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비극들과 이 공진이라는 판타지 공간이 그려내는 편안함과 안전함 그리고 따뜻함을 극과 극으로 비교한다. 그러면서 이 판타지 공간의 새로운 가치관을 남자주인공인 홍두식에게 부여하고, 그 가치관에 동화되는 윤혜진의 모습을 멜로의 과정으로 그려낸다. 시청자들은 윤혜진이라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인물에 빙의한 채, 저 공진(혹은 홍두식)이라는 판타지 세계로 매주 한 시간씩 여행을 떠난 셈이다.

클리셰들이 주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갯마을 차차차>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잠시 동안의 휴식’이 주는 가치는 그래서 그 자체로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 드라마들조차 극악한 현실을 끌어와 눈과 마음을 자극했던 요즘, <갯마을 차차차>는 그 현실 대신 판타지를, 자극 대신 편안함을 채움으로써 시청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이 비록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과거 어디선가 봐왔던 전형적인 결혼 해피엔딩이라 할지라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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