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2’의 4인4색, 특히 서혜진 변호사와 권일용 교수가 보이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18년 10월 22일 강서구 등촌동 47세 여성 살인사건의 주범 저의 아빠는 절대 심신미약이 아니고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켜야 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입니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형을 선고받도록 청원 드립니다. 엄마는 늘 불안감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보호시설을 포함 5번의 숙소를 옮겼지만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어 엄마를 살해위협 했으며 결국 딸이자 엄마는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피의자인 아빠는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입니다. 엄마를 죽여도 6개월이면 나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으며 사랑하는 엄마를 13회 칼로 찔러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런 아빠를 사회와 영원히 격리시키고 또 다른 가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동의 부탁드립니다.’

얼마나 끔찍한 사건이었으면 딸이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청원까지 올렸을까. tvN <알쓸범잡2>에서 서혜진 변호사는 ‘0촌 살인’을 주제로 끔찍한 가정폭력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딸이 아빠를 사형시켜달라는 국민청원에 올랐던 사건을 소개했다. 내용을 보면 20여 년 간 계속 이어진 아빠의 가정폭력은 이혼 후에도 계속 이어져 결국은 잔혹한 살인으로 끝을 맺었다.

서혜진 변호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소개하면서 가정폭력에 대한 법률이 가진 문제점을 짚었다. ‘법률의 입법목적’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법은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1997년도에 제정된 이 법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가정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던 이 문구는 2011년에 일부 개정되었다. ‘건강한 가정을 육성함을’이라는 문구를 ‘피해자와 가정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로 바뀌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 역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할 국가의 역할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서혜진 변호사는 지적했다. 가정폭력이 벌어져도 피해자가 판단해 선택하게 만든 것이 그것이라는 것.

서혜진 변호사는 만일 이렇게 수십 년을 이어온 범죄가 가정 바깥에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여기면서, 가정 내에서 벌어졌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의 이야기에 대해 권일용 교수는 “저는 이걸 가정폭력이라고 하는 말조차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건 그냥 폭력일 뿐이었다. 윤종신의 말대로 “오히려 가정이기 때문에 더한 폭력”. 권일용 교수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가중처벌이 필요한 강력범죄라고 봐야죠.”

<알쓸범잡2>에서 이른바 ‘0촌 살인’이라는 주제로 다뤄진 가정폭력 범죄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던 건, 그것이 서혜진 변호사가 법을 다루는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본 범죄에 대한 관점이 들어 있어서였다. 과거에 가족 중심주의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가정폭력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으로 치부된 바 있고, 그래서 법률 또한 가정 안에서 서로 해결해 그 가정이 깨지지 않게 하는 걸 전제한 문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상 시대가 가려놓은 범죄나 다름없었다. 법이 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하고, 그것은 법률 상 문구를 고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시즌2로 돌아온 <알쓸범잡>은 시즌1과 달리 출연자들을 저마다의 역할과 관점을 달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서혜진 변호사가 법의 관점으로 범죄를 들여다본다면,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는 과학수사를 통해 실제 다뤘던 범죄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권일용 교수가 모친을 살해한 경찰간부를 심문했던 사례는 그의 경험이 담겨있어 더 생생하고, 무엇보다 과학수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그의 소신을 사건 소개를 통해 느끼게 해주는 면이 있다.

김상욱 교수가 과학자로서 대전에서 들려주는 해킹범죄에 대한 이야기나 토양포렌식 같은 과학적 지식을 통해 범죄를 들여다본다면, 장강명 작가는 실제 소설을 쓰기 위해 현장을 취재하던 그 방식을 담아 ‘특사경(특별사법경찰)’을 찾아가 ‘짝퉁의 세계’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또 ‘산업재해’ 같은 사회적 이슈나 메시지를 담는 범죄도 작가로서 그가 관심을 갖고 취재해 전해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알쓸범잡>은 시즌1에서도 그랬지만 끔찍한 사건들이 주는 몰입감과 불편함이 공존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적절한 균형점이 요구된다. 굳이 강원도나 대전 같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상욱 교수나 장강명 작가는 그런 점에서 <알쓸범잡>이 너무 무겁게 흐르는 걸 적절히 조율하는 출연자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혜진 변호사나 권일용 교수 같은 실제 범죄 현장 가까이 경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알쓸범잡2>의 중심축인 건 분명하다. 서혜진 변호사가 들려준 ‘0촌 살인’ 같은 남다른 무게감을 담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나 이를 통해 법의 문제까지 다가가는 방식이나, 권일용 교수처럼 실제 현장을 뛰지 않았으면 결코 들려줄 수 없는 과학수사를 관점으로 이야기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분명한 차별점이 아닐 수 없다. 그저 가정사로 치부될 수 없는 강력범죄로서의 가정폭력에 대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남다른 울림을 갖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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