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만이 해피엔딩?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말하는 행복

[엔터미디어=정덕현] “감사합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희도 선수.” 2009년 뉴스앵커가 된 백이진(남주혁)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메달을 딴 나희도(김태리)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마지막에 남긴 이 한 마디는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백이진이 나희도에게 전하는 결혼 축하 멘트. 그렇다면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이제 2회만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지난 <응답하라 1988> 같은 엔딩 과몰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 덕선(혜리)의 남편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냐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박보검)’이냐로 드라마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엔딩이 그것이다.

아직 2회가 남은 상황이라, 백이진의 저 멘트가 무슨 의미인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반전이 있을 수도 있고, 그 말 그대로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이 결혼까지는 가지 못했을 수 있다. 물론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백이진과 나희도와의 사랑만이 있을 뿐, 대결구도를 그리는 다른 남성이 등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취재원이 될 수 있는 펜싱 금메달리스트 나희도와의 사랑에 장애요소로 자리한 건 분명하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야 한다)’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 게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관계라는 것 때문에 고민하던 백이진은, 가정형편 때문에 벼랑 끝에 몰려 결국 러시아 귀화 결정을 한 고유림(보나) 소식을 그가 단독보도하게 되면서 직업으로 인한 절망감을 갖게 됐다. 결국 나라 버린 ‘매국노’ 취급을 당하며 지탄받는 고유림을 보며 백이진은 그런 일이 나희도와의 사이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엔딩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그간 이 드라마가 흘러온 과정 속에서 제기된 바 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드라마의 설정 속에서 나이 든 나희도(김소현)에게 백이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어딘가 혼자 살아가는 듯한 나희도의 현재가 과거 백이진과의 관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 거라 예감케 한 것.

게다가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제목을 따온 자우림의 노래 가사 역시 백이진과 나희도의 사랑이 어떤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만들었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같은 가사가 그 추정의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첫 사랑 서사는 대부분 실패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는 점도 이런 추정에 근거를 주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고, 무엇보다 작품 속 인물들이 저마다 아프고 힘든 시대를 버텨오며, 그 버텨낼 수 있는 힘으로서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내세우고 있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런 엔딩에 대한 과몰입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의 결실이 반드시 결혼이라는 등식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있는 곳에 내 응원이 닿게 할게. 내가 가서 닿을게. 그 때보자.” 백이진이 빚쟁이들에 도망치듯 시골로 내려가 지낼 때 나희도가 음성 메시지로 남겼던 응원의 목소리. 그 응원이 있어 버텨낼 수 있었고 이를 깨치고 나와 다시금 살아갈 수 있었던 백이진의 이야기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전하는 메시지가 단지 달달한 사랑의 결실만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나 니들 때문에 진짜 행복했어. 난 메달 따고 돈 벌고 그런 것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 근데 돈도 메달도 이런 행복을 주지 못했던 거 같애. 고마워. 알려줘서.” 러시아로 떠나기 전 고유림이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건네는 그 말은 우리가 행복이라고 느끼는 것과 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담아낸다. 그건 어떤 행복의 순간들이 아닐까. 비록 영원일 수는 없지만 그 순간의 기억이 남아있어 우리는 그 기억의 응원을 받으며 계속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런 이야기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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