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의 퇴사가 예고했던 영상산업 빅뱅의 신호탄
방송국에서 스튜디오 체제로 바뀌는 영상산업의 변화

김태호 PD
김태호 PD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최근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김민석 PD와 박근형 PD가 CJ ENM 퇴사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이것이 마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출연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사례에 가깝다. 사실 김민석 PD와 박근형 PD의 퇴사는 김태호 PD가 MBC를 떠난 사건(?)과 오히려 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상산업이 빅뱅하는 순간이다. 지상파만 있던 시절에서 케이블이 생겨나고 tvN, Mnet 같은 채널들이 독립 프로그램들을 쏟아낼 때 지상파의 스타PD들이 대거 케이블로 엑소더스를 했고, 종편이 생겼을 때도 지상파, 케이블에 있던 PD들이 종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지상파, 케이블, 종편 같은 방송국 체제에서, 스튜디오 드래곤, 스튜디오S, 몬스터 유니온, 스튜디오 룰루랄라 등등 스튜디오 체제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현 레거시 미디어의 방송국 소속 스타 PD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김태호 PD의 '서울체크인'에 출연 중인 이효리
김태호 PD의 '서울체크인'에 출연 중인 이효리

김태호 PD는 독립 제작사를 만들어 이미 티빙에 <서울체크인>을 서비스함으로써 안정적인 성공을 일궈냈고, 김민석 PD와 박근형 PD도 JTBC와의 이적을 협의 중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최근 스튜디오 룰루랄라(SLL)라는 글로벌 스튜디오에의 편입을 고민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지니어스>, <대탈출>, <여고추리반> 같은 블록버스터 게임 예능으로 정평이 난 정종연 PD는 김태호 PD가 설립한 제작사와 손을 잡았고, tvN <수상한 가수>, <이타카로 가는 길>, <엄마는 아이돌> 등을 만든 민철기 PD도 JTBC 행을 확정했다.

채널A의 성공 예능작인 <도시어부>와 <강철부대>를 런칭했던 장시원 PD도 JTBC 산하 레이블을 설립했고, <날아라 슛돌이>, <천하무적 야구단> 등 스포츠 예능을 이끌었던 최재형 PD도 KBS를 떠나 제작사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 영상산업 빅뱅의 흐름을 보면, 김태호 PD의 MBC 퇴사와 독립 제작사 설립은 그 신호탄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그가 지상파 예능을 만들며 가장 힘들어 했던 건 매주 제작해 편성 시간대에 맞춰 방영하는 그 루틴을 10년 넘게 반복해야 하는 점이었다. 게다가 매주 나오는 성적표라 할 수 있는 시청률에 좌지우지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예능 프로그램은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려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이끌어온 박근형(좌) 김민석(우) PD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이끌어온 박근형(좌) 김민석(우) PD

하지만 스튜디오 체제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잘 하는 콘텐츠를 잘 만들어 그 성격에 맞는 플랫폼을 찾아 서비스하면 되는 상황이다. 여러 OTT들이 경쟁하는 구도는 콘텐츠 제작자들을 ‘갑’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물론 이미 검증된 스타 PD들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쨌든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고픈 콘텐츠를 훨씬 자유롭게 만들면서도 완성도도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도 있게 됐다. 방송국 소속으로 매주 어쩔 수 없이 채워야 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가며 보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들인 방송국 체제에서 스튜디오 체제로 바뀌고, 이 콘텐츠를 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수용하는 현재에는 그래서 이미 콘텐츠도, 또 거기 출연하는 출연자들도 과거와는 다른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방송국 체제에서는 편성에서의 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누가 출연하느냐가 중요했고 그래서 일부 스타들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OTT 같은 플랫폼으로 소비되는 스튜디오 제작사 체제에서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신인이라고 하더라도 역량이 충분하거나 역할에 딱 어울리는 인물은 이 새로운 체제에 급부상하는 스타로 등장할 수 있게 됐다. <파친코>의 김민하나 <오징어 게임>의 정호연 같은 인물들이 그 사례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 출연 중인 김민하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 출연 중인 김민하

콘텐츠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지만, 지금 영상산업에서 이 의미는 스튜디오 체제로의 전환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이미 유명해졌거나 스타가 된 콘텐츠 연출자나 출연자, 작가 같은 인물군들은 그래서 스튜디오를 차려 이 변화된 환경에서의 기회를 잡으려 하고 있다. 물론 그간 레거시 미디어에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작용하고 있다. 이제 방송사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선택하던 시대에서 어떤 스튜디오가 제작했는가를 보고 콘텐츠를 고르는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티빙, tvN, 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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