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서예지에게 ‘탱고 좀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유
‘이브’, 부실한 캐릭터, 몰입 깨는 연출, 병맛 연기의 삼박자

[엔터미디어=정덕현] “개사이코?” 이라엘(서예지)은 자신을 ‘개사이코’라고 말하는 한소라(유선)에게 그렇게 되물으며 갑자기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린다. 불륜 사실이 드러나 이제 한소라와의 치고받는 싸움이 시작된 순간,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이 상황에서 이라엘의 이런 웃음은 사실 소름이 끼쳐야 맞다. 하지만 서예지가 보여주는 이라엘의 웃음 연기는 소름이 아닌 실소를 부른다. 소리만 음산하게 낼 뿐, 표정은 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부조화 때문이다.

tvN 수목드라마 <이브>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이라엘에 몰입이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상 이 악녀의 제 몸까지 던지는 불륜까지 감행하는 복수극이 처절하면서도 시원시원해야 드라마에 몰입이 생기지만, 이라엘의 복수는 어딘가 어설프다. 그것은 이 이라엘이라는 인물이 복수의 방식으로 택한 ‘조종(혹은 가스라이팅)’이 어설프게 보여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이라엘이라는 캐릭터가 부실하다.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린 자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해나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강윤겸(박병은)을 유혹하고 한소라의 최측근처럼 접근해 그들의 욕망을 건드려 마음대로 조종할 정도의 인물이다.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다양한 얼굴을 자유자재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 이 캐릭터가 가진 건 외모뿐인 것처럼 표현된다.

그런 외적 매력 하나로 누군가를 유혹하고 조종하는 인물이라는 건 너무 단선적이다. 제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극을 이끌어가고 시청자들이 몰입하게 만들려면, 외모나 육체적인 유혹 이외에 무언가 내면적인 매력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만 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서사를 드라마는 그려주지 않는다. 이 인물이 마치 작가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이러한 인간적인 냄새가 부여되어 있지 않아서다.

캐릭터의 매력이 부재하고 그래서 몰입이 안 된 상태에서 전개되는 연출의 클리셰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탱고와 피아졸라의 반도네온을 소재로 하는 시퀀스 연출이다. 탱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엘에 유혹의 도구로만 쓰는 탱고는 다소 뜬금없는 장면으로 보여지곤 한다. 한소라와 감정 대립을 보이는 장면에서 이라엘이 홀로 탱고를 추는 장면은 사실 한소라를 약 오르게 만들며 동시에 섬뜩한 이라엘의 면면을 드러내야 하지만 그런 춤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장면의 감정과 딱딱 붙질 않는다. 시청자들이 ‘탱고 좀 그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서예지의 연기다. 그는 복수를 위해 조종과 유혹을 선택한 인물로, 그 감정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원한이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파괴되어가는 고통과 슬픔도 느껴져야 한다. 또한 복수를 위한 유혹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는 통제되지 않는 감정도 꺼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인물 또한 한 아이의 엄마라는 그 위치에서의 또 다른 모습도 끄집어내야 한다. 자신을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고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서은평(이상엽) 의원에 대한 애정과 복수의 대상이지만 어딘가 자신을 닮은 듯한 강윤겸에 대한 애증과 연민도 뒤섞여 나타나야 한다.

이 많은 감정들이 한 인물 안에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서예지가 보여주는 얼굴은 거의 데드마스크이거나, 유혹적인 얼굴과 다소 광기가 있는 모습 정도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내기 어려워 차라리 무표정을 선택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무표정 이면의 감정들을 읽어낼 수 있는 연기는 필요하다.

“개사이코.” 이러한 이라엘의 모습을 보며 한소라가 툭 내뱉는 이 말은 그래서 그저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이 인물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감정들이 제대로 표현되어 전달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겉으로만 보이는 그 모습들이 그저 사이코처럼 비춰지는 것.

그러고 보면 서예지는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괜찮은 ‘사이코’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그때는 사이코 같았지만 그래도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괜찮았다. 하지만 <이브>에서 서예지의 연기는 대놓고 사이코의 면면을 표현하는 것도 아닌데, 사이코처럼 보인다. 인물들을 조종해 어떤 결말을 향해가는 인물. 그래서 시청자들 마음도 제 맘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이 인물의 매력이 살아나는 것이지만, 서예지의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 그 조종이 때론 우스운 병맛처럼 느껴지고 때론 안쓰러워보일 정도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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