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가 뻔한 멜로의 선을 넘는 방법

[엔터미디어=정덕현] 답답한데 빠져든다. 아마도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보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여기서 ‘답답하다’는 건 우리가 통상적으로 보던 멜로드라마의 속도감 있는 흔한 전개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판타지가 더해진 멜로드라마들의 경우,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대신 허구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속도감과 재미의 힘으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랑의 이해>는 다르다. 이 드라마는 현실에 보다 밀착되어 있다.

하상수(유연석)와 안수영(문가영)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마음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엇갈리게 된 건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출신, 학교, 직장 내 서열 등등)이 그 관계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대졸 공채 수석으로 입사한 하상수와 고졸 출신 서비스 직군인 안수영은 그 출신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함께 일하는 은행에서도 서로 다른 무리로 분류된다. 물론 그들이 원한 건 아니지만, 현실은 그들을 구별 짓는다.

그런데 그 구별 짓기는 하상수와 안수영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하상수를 좋아하는 박미경(금새록) 또 안수영을 좋아하는 정종현(정가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구별 짓기의 선이 그어져 있다. <사랑의 이해>는 그래서 한 은행에서 일하는 네 명의 청춘이지만, 태생적으로 갈라진 현실이 만들어낸 그들 사이의 위계를 그려놓는다. 기득권의 관점으로 맨 위쪽에 박미경이 있다면 그 다음에 하상수, 안수영, 정종현이 차례로 서 있다.

<사랑의 이해>가 뻔한 멜로의 선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확장성을 갖게 된 건, 한 은행에서 일해도 이렇게 구별 지어지는 위계의 문제를 청춘들의 사랑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어서다. 처음에는 하상수와 안수영이 좋아하지만 서로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만남을 이어가지 못하는 관계를 보여주고, 역시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기 마련이라는 듯 하상수가 그에게 접근한 박미경과 가까워지고, 안수영과 정종현이 함께 지내게 되는 상황을 펼쳐 놓는다. 그렇게 안수영과 정종현은 저 멀리 야경 속에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하고, 하상수와 박미경은 그 건물 스카이라운지에서 데이트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엇나간 하상수와 안수영의 관계는 그들이 ‘같은 부류’라 생각했던 이들과 가까워지면서 그들 역시 ‘같은 부류’가 아니었다는 걸 절감하면서 변화한다. 즉 부유한 집안의 딸 박미경은 하상수에게 선물로 차를 사줄 수 있는 인물이지만, 하상수는 그런 박미경이 부담스럽다. 박미경의 아버지 박대성(박성근)이 하상수가 접대하는 은행 VVIP라는 점과, 박미경의 어머니 윤미선(윤유선)이 하상수의 어머니 한정임(서정연)이 운영하는 마사지샵 VIP라는 사실도 그렇다.

이건 안수영과 정종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수술비를 대느라 서울에서 살 집이 없어진 정종현은 안수영의 제안에 그의 집에서 함께 동거하게 된다. 하지만 정종현이 준비해오던 고시에서 연거푸 떨어지고 집안 사정도 계속 안 좋아지자 그를 돕는 안수영에게 정종현은 부담을 느낀다. 만나기만 하면 하는 대화의 대부분이 “미안해요”가 되는 그런 관계 속에서 안수영도 흔들리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관계의 비틀림 속에서 박미경 같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인물 역시 상처를 입는다는 점이다. 박미경은 이 멜로 관계에서 악역이 아니라, 바로 그 구별 짓기 하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 놓여 있어 그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파한다. 게다가 그는 심지어 하상수가 자신에게 느꼈을 불편함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는 자기 힘으로 들어간 은행에서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그의 힘만으로 된 건 아니었다는 걸 드러낸다. “어차피 네가 가질 거 내가 좀 더 빨리 쥐여 준 게 뭐 어때서?” 아버지의 그 말에서 박미경은 자신이 차를 사준 걸 불편해하던 하상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어차피 선배가 가지게 될 거 내가 먼저 주면 안 돼?” 자신이 아버지에게 느끼는 이 불편함을 하상수 역시 느꼈을 거라는 걸 그는 깨닫는다.

그래서 결국 <사랑의 이해>는 ‘같은 부류’로 나누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엇나가고 뒤틀리던 관계가 “더 이상은 못 참겠는” 상황에 이르자 그 틀을 깨고 나오는 청춘들의 파열음을 들려준다. 하상수와 안수영은 억눌렀던 그 감정들을 드디어 꺼내놓고, 그들 앞에 ‘부류’로 나뉘는 사회 시스템과의 적지 않은 마찰을 예고한다. 물론 거기에는 박미경과 정종현이 만들어낼 파열음도 만만찮다.

누가 누구와 해피엔딩을 이루는가는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는 중요한 일일 수 있지만, <사랑의 이해>는 그 관계의 결말보다 그 과정에서 청춘들이 겪는 아픔과 상처들에 집중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비현실적이라도 판타지를 세우는 지점이 별로 없어서다. 하지만 이 ‘현실 밀착’은 그것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답답한 현실을 공감하며 과몰입하게 만든다. 답답한데도 빠져들게 만드는 <사랑의 이해>라는 멜로의 독특한 결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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