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는 이 정도면 선전했다…한국영화 새 흥행법칙

2011-03-09     이문원


- 한국영화, 이제 시기별 라인업을 짜야한다

[엔터미디어=이문원의 문화산업비평] 근래 한국영화 흥행법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가 등장했다. 스포츠조선 2월27일자 기사 ‘충무로가 이상하다…화제성 높을수록 흥행 부진 ‘기현상’은 “스타 배우, 감독, 글로벌 프로젝트 등으로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서 쓴잔을 마셨다. ‘스타=흥행 보증수표’인 시대가 저물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TV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감독이든 배우든, 스타의 이름값이 안 통하기 때문”이라면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등장한 심형래의 ‘라스트 갓파더’, 하정우·김윤석의 ‘황해’, 현빈의 ‘만추’,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등의 흥행부진 사례를 들었다.

한편 기사는 “대박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들의 행보는 정반대다.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보란듯이 관객몰이에 성공했다”면서 별다른 이슈거리가 없었던 500만 명대 흥행예상작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300만 돌파작 ‘헬로우 고스트’의 역전 흥행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최근의 이런 흐름은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또 작품의 완성도 문제만은 아니다. 실제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나 ‘헬로우 고스트’도 작품성이 뛰어나고 할 수는 없다”며 “사정이 이러니 투자자, 제작자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진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100억원 안팎의 제작비로 승부하는 물량주의, 스타 배우 출연, 마케팅 같은 화제성만으로는 까다로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시기별 라인업으로 생각해보면 여러 의문이 해결된다

위 기사가 제시한 결론은 사실상 틀린 게 없다. “물량주의, 스타 배우 출연, 마케팅 같은 화제성”만으로 영화흥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세계 어느 영화시장에서건 상식에 가깝다. 영화의 화제성이란 기본적으로 개봉 초기 바람잡이 역할로만 기능할 뿐이다. 대개 개봉 첫 주 정도만 보장해준다. 이후부터는 ‘알아서’ 생존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위 기사처럼 “투자자, 제작자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만한 상황이라 보긴 힘들다. 적어도 기사가 예시로 든 ‘라스트 갓파더’ ‘황해’ ‘만추’ ‘글러브’ ‘평양성’의 흥행부진과 ‘조선명탐정’ ‘헬로우 고스트’의 흥행호조 상황만 놓고 봤을 땐 그렇다. 기사는 대략 ‘흥행비결은 알 수 없지만, 어찌됐건 화제성과는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위 제시된 영화들의 성패는 의외로 원인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로 ‘시기별 라인업’ 전략을 따랐느냐 아니냐로 성패가 결정된 대표적 상황들이다.

일단 지난해 12월 상황을 놓고 보자. 지난 5년간 데이터를 통해 바라보면, 12월은 확실히 가벼운 코미디가 잘 먹히는 시기다. 2006년 ‘미녀는 괴로워’, 2008년 ‘과속스캔들’, 2009년 ‘전우치’ 등이 예다. 2007년에는 마땅한 코미디가 없자 지극히 낮은 완성도로 모두가 실패를 예상했던 ‘색즉시공 시즌 2’까지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시기’에 사회파 스릴러 ‘황해’를 넣는다는 건 사실상 시기별 라인업을 무시한 전략이었다. 정확히 말해 근 수년 간 이 시기에 스릴러가 성공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워낙 인지도와 화제성이 높은 콘텐트다보니 개봉 첫 주는 ‘황해’가 1위를 차지했지만, 다음 주가 되자 ‘시기’에 잘 맞았던 ‘헬로우 고스트’가 치고 나갔다. 그렇게 명암이 갈렸다.

‘헬로우 고스트’는 종영까지 약 304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지만 사실상 ‘헬로우 고스트’는 더 치고 나갈 수도 있었다. 언급했듯 12월의 코미디 시장 파이는 크기 때문이다. 지난 5년여 간 사례를 볼 때 관객수 기준으로 최대 600만~800만 명 선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헬로우 고스트’는 ‘라스트 갓파더’라는 동일 장르 경쟁작을 같은 시기 만나게 됐다. 대중만족도로는 ‘헬로우 고스트’ 쪽이 높았지만 화제성은 ‘라스트 갓파더’ 쪽이 높았다. 그러다보니 시장이 양분돼 ‘헬로우 고스트’로 304만 명이, ‘라스트 갓파더’로 255만 명이 넘어갔다고 봐야한다. 두 영화 관객수를 합치면 대략 기존 12월 코미디영화 파이인 600만 명 선에 근접하게 된다.

반면 첫 주만 화제성으로 득 본 ‘황해’는 214만 명 선에 머물렀다. 화제성은 높았지만 ‘시기’와 맞지 않아 12월에 큰 재미를 못 본 2006년의 ‘중천’, 2009년의 ‘여배우들’ 등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올해 1~3월 사이를 돌아보자. ‘조선명탐정’의 성공도 마찬가지로 ‘시기’에 맞는 개봉전략 덕을 봤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5년 간 1월 말~2월 중순 사이 개봉작들 중에선 미스터리 스릴러물의 인기가 눈에 띄게 높았다. 전편에 비해 100만 명가량 더 끌어들인 2005년의 ‘공공의 적 2’, 2007년의 ‘그놈 목소리’, 500만 관객을 돌파한 2008년의 ‘추격자’와 2010년의 ‘의형제’ 등이 이 시기 개봉작들이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흥행메리트가 거의 없는 신하균·변희봉 주연작 ‘더 게임’까지도 150만 명을 모으는 쾌거를 거뒀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변’은 없었다

반면 ‘만추’ ‘글러브’ ‘평양성’ 등은 모두 ‘조금씩’ 빗나간 개봉시기를 잡았다. 1월20일 개봉한 ‘글러브’부터 보자. 분명 이 시기에는 스포츠영화가 성공한 일이 있다. 2008년 1월10일 개봉해 400만 관객을 끌어들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아마 이 사례를 바탕으로 유사한 시기 개봉일정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성공으로 ‘1월의 스포츠영화’ 성공공식을 꾸려내기엔 무리가 많다. 일단 사례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나뿐이다. 그보다는 ‘1월의 여성영화’ 성공공식을 끌어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당장 지난해 1월28일 개봉해 300만 관객을 돌파한 ‘하모니’ 사례가 더 붙는다. 2007년 1월18일 개봉한 ‘마파도 2’ 역시 전편 흥행이 우연에 불과했으며 설날 특수를 입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깨고 개봉 첫 주 1위를 차지했다.

한편 한국 스포츠영화는 기본적으로 비인기종목을 다룬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다는 징크스도 ‘글러브’ 패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근래 흥행에 성공한 스포츠영화들은 스키점프, 여자핸드볼, 여자역도, 마라톤 등을 다뤘다. 야구영화로 마지막 히트작은 무려 25년 전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마지막이다. ‘글러브’는 ‘시기’를 잘 골랐어도 어려웠을 수 있다는 얘기다.

1월27일 개봉한 ‘평양성’의 실패도 ‘조금’ 빗나간 경우다. 기본적으로 설날 시즌을 낀 코미디는 잘 되긴 한다. 2005년 ‘마파도’, 2006년 ‘투사부일체’, 2007년 ‘1번가의 기적’ 등이 예다. 그러나 근래 들어 ‘명절=코미디’ 공식은 점점 깨져가고 있다. 추석부터 깨지기 시작해 설날까지 넘어온 상태다. 더군다나 ‘평양성’이 내건 사극 코미디는 그 전작인 ‘황산벌’ 이후 제대로 재생산된 적이 없어 8년 사이 뒤바뀐 영화 주 관객층에 낯설다. 사극은 스릴러이거나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어야 했다. ‘평양성’은 뭔지 모를 콘텐트로 보였을 수 있다.

‘만추’의 실패는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1~3월 사이는 원래 멜로가 잘 안 된다. 기본 100만은 채워주던 권상우조차도 2009년 3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내놓아 71만6008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그나마 ‘만추’가 지금 정도 성적을 거둔 것도 ‘현빈 신드롬’ 덕택이라고 봐야 한다. ‘만추’의 현재 성적은 실망이 아니라 외려 선전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지난 수 년 간의 시기별 라인업 데이터를 통해 바라보면, 결국 위 기사가 제시한 ‘라스트 갓파더’ ‘황해’ ‘만추’ ‘글러브’ ‘평양성’의 흥행부진과 ‘조선명탐정’ ‘헬로우 고스트’의 흥행호조도 모두 ‘그럴 만 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화제성과 관련된 이변을 거론할만한 건 못 된다. 외려 공식대로 진행된 셈이다.



미국시장은 철저히 시기별 라인업 전략을 구사한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왜’다. 대체 왜 12월에는 코미디가 잘 되며 대체 왜 1~2월에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잘 되는지, 그리고 대체 왜 1~3월에는 멜로가 잘 안 풀리는지에 해답을 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답은 의외로 싱겁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갖다 붙이기에 따라 해석의 여지는 많다. 계절별 대중심리, 크리스마스 설날 등 명절에 대한 대중심리, 연말과 연초 사이 서로 다른 사회분위기 등이 거론될 수도 있다. 그 모두가 맞을 수도 있고, 혹은 모두 틀릴 수도 있다. 그러니 ‘정답’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옳다. 해석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유가 뭔지는 이 지점에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어찌됐건 이런 현상들, 시기별 라인업을 구체화시킬만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일인 건 맞다는 것이다.

우리만 이런 현상을 겪는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산업이 확대된 시장에서는 모두 이 같은 현상을 겪고 있고, 또 그에 따른 시기별 라인업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세계 영화최강국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영화산업은 확실히 ‘맹신’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시기별 라인업에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2008년 2월 첫째 주 북미 박스오피스는 거대한 이변을 일으켰다. 틴 아이돌 마일리 사이러스의 콘서트 투어 다큐멘터리 ‘해나 몬태나/마일리 사이러스: 양쪽 세계 콘서트 투어 베스트’가 개봉 첫 주 무려 3111만7834달러를 벌어들이며 주간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해나 몬태나/마일리 사이러스’는 애초 배급업자들 사이에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콘텐트로 판단돼 불과 687개 상영관만을 잡을 수 있었지만, 상영관 당 4만5561달러를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찌됐건 한 번 이변이 일어나자 미국영화산업은 곧바로 이 ‘시기’를 틴 아이돌의 콘서트 투어 다큐멘터리 개봉시기로 잡아버렸다. 이듬해 배급사 부에나비스타는 ‘조나스 브라더스: 3D 콘서트 경험’을 2월27일 개봉시켜 주간 흥행 2위를 차지했고, 올해에는 파라마운트도 이에 동참, 또 다른 틴 아이돌 콘서트 투어 다큐멘터리 ‘저스틴 비버: 네버 세이 네버’를 2월11일에 개봉시켜 첫 주 2951만4054달러를 그러모으는데 성공했다. 물론 다른 시기에 개봉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지만, 미국영화산업은 이미 한 번 나온 성공사례를 두고 굳이 모험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다. 시기별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는 동안은 그대로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유지시킨다.

프랜차이즈의 경우는 더 심하다. 잔혹 호러 프랜차이즈 ‘쏘우’는 현재 7편까지 등장한 상황이지만, 그 개봉일자가 무서우리만치 일목요연하다. 할로윈에 맞춰 개봉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편 10월29일, 2편 10월28일, 3편 10월27일, 4편 10월26일, 5편 10월24일, 6편 10월23일, 7편 10월29일 식이다.

한편 배우를 놓고 개봉일자를 유사하게 집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2009년 리암 니슨 주연의 액션스릴러 ‘테이큰’이 1월30일 개봉돼 큰 성공을 거두자 올해 같은 리암 니슨 주연 액션스릴러 ‘언노운’도 2월18일 개봉시키는 식이다. 30~40대에 인기 많은 빈스 본의 관계 코미디들도 2007년작 ‘산타는 괴로워’, 2008년 ‘4번의 크리스마스’, 2009년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까지 3년 연속 10~11월경에 개봉됐고, 같은 배우가 아니더라도 이미지가 유사한 액션스타 빈 디젤과 드웨인 존슨은 아동용 코미디에 출연할 경우 서로 유사한 시기에 개봉일자를 잡고 있다.



라인업의 효용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결국 한국도 이제 이 같은 시기별 라인업 전략을 제대로 구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140편의 국내영화와 286편의 해외영화가 1억3257만5083장의 표를 팔아치운 시장이라면, 적어도 장르별로는 이 같은 전략을 구사해볼 만한 환경이 충분히 된다. 1월에서 2월, 3월에 걸쳐 미스터리와 액션, 에로티시즘 사극과 가벼운 코미디가 물 흐르듯 이어지며 관객을 이동시키는 전략을 지금부터라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산업이란 한 상영관에서 다른 상영관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운송업”이라는 할리우드 제작자 제리 브럭하이머의 지적은 절대 무시할 게 못 된다. 그 이동의 흐름을 잡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둬야할 부분은 있다. 대중취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한 번 고심 끝에 시기별 라인업을 세워도 그 효용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전반적으로 흥행이 저하되거나, 됐어야 정상인 영화가 안 되는 상황이 속출하기 시작하면 그 데이터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새로 짜야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났다. 북미시장에서 호러 장르는 21세기 들어 4/4분기 개봉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4/4분기 호러영화 인기가 줄고, 2005년 1~2월 사이 개봉한 ‘화이트 노이즈’ ‘숨바꼭질’ ‘부기맨’ 등이 기대이상 호조를 보이자 미국영화산업은 호러 장르 개봉시기를 차츰 1/4분기와 3/4분기로 양분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3’ ‘호스텔’ ‘메디엄’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언데드’ 등이 1~2월에 등장해 모두 기대이상의 흥행성적을 거두는데 성공했지만, 2010년이 되자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1~2월에 등장한 ‘울프맨’ ‘크레이지’ ‘데이브레이커스’ 등이 모두 호평에도 불구, 기대이하 흥행성적을 보인 것이다. 대중성향이 바뀌기 시작했음을 눈치 챈 미국영화산업은 이미 2011년 1/4분기부터 대부분 호러 영화들을 빼낸 상태다. 최대 기대작인 ‘스크림 4’는 여름 시즌 직전인 4월15일로 개봉일정을 잡았다. 한 마디로 북미시장의 1/4분기 호러 장르 라인업은 불과 4년여 동안만 먹힌 전략이었던 셈이다.

면밀한 계산과 더불어 발 빠른 눈치도 갖춰야 모든 영화흥행전략의 바탕이 되는 시기별 라인업도 그 효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칼럼니스트 이문원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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