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서강준·박민영, 날씨 안 좋은 날에 더 생각날 커플
2020-04-21 박생강
‘날씨가’, 이 느릿느릿한 드라마가 남긴 따뜻한 위로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월화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최종회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에 빠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호흡법이 필요하다. 24시간이 모자란 현대인들의 호흡과 이 드라마의 호흡이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극적인 스릴러의 드라마들과도 결이 다르다. 알고 보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도 목해원(박민영)에게 모친 심명주(진희경)와 이모 심명여(문정희)가 숨긴 미스터리한 비밀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그 비밀이 표면에 드러나기 전까지 그리고 드러나고 나서도 드라마는 참 느릿느릿 흘러간다.
뭐랄까, 이 드라마의 제목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강원도 북현리의 맑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같은 속도다. 맑은 하늘에 구름은 흘러가지만, 우리는 구름의 속도를 볼 수가 없다. 우리가 잠깐 멈춰 서서 구름을 바라보지 않는 한. 하지만 구름의 속도에 익숙해진 이들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이야기 속에 폭 젖어들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한때 북현리에서 살았던 목해원이 이모가 혼자 펜션을 운영하는 북현리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해원은 북현리에서 고교 동창 임은섭(서강준)의 독립서점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취직하면서 시골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임은섭과 모해원은 서로에 대한 호감의 감정을 조금씩 키워나간다.
하지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단순히 로맨스물로 접근했다가는 지치기 쉽다. 이 로맨스에는 나중에 베드신까지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익숙한 로맨스 MSG가 거의 없다. 모해원은 캔디형이 아닌 예민하고 까다로운 인물이다. 임은섭은 포근하지만 왕자님은 아니고 오히려 내면의 결핍 때문에 종종 마음이 허해 보이는 인물이다. 오히려 두 사람의 로맨스를 치유의 드라마로 접근하며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두 사람, 서로 그 상처가 깊어질까 조심하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상처를 호호 불어주며 사랑해가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또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두 주인공이 아닌 북현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봐야 많은 것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하다. 북현리 굿나잇 책방에 모여 늦은 밤에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시를 이야기고 책을 이야기하는 동네 사람들, 발랄하고 엉뚱한 임휘(김환영)의 첫사랑 이야기, 방랑자 아버지와 그 때문에 마음이 허했던 임은섭의 이야기, 모해원 집안에 숨어 있던 가정폭력의 섬뜩한 이야기, 북현리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 그 이야기 전체가 모여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분명 많은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들었던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이 드라마의 호흡은 느릿하며, 이야기의 얼개는 단숨에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낯모르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꼼꼼히 시간을 두고 관찰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듯,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그래야만 이 드라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문학이나 예술영화에서 보여줘야 할 어법을 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려 애쓴 셈이다. 하지만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TV문학관이 아니고 늦은 밤 9시에 시청자들은 맥주 한 잔 원샷처럼 호흡이 빠른 드라마를 원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들을 남겼다. 긴 호흡을 따라가기 힘들었다면 그 장면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매력을 엿볼 수는 있다.
물론 그 장면이 주인공 해원과 은섭이 사랑을 싹틔우는 장면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북현리 고교동창회의 일상적이고 따뜻한 장면들. 소설가 심명여와 그녀의 옛 연인 차윤택(황건)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들어가는 감정들이 담긴 낡은 기차역의 장면들. 어린 임은섭이 방랑자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기억하는 사랑스럽고 가슴 아픈 장면들. 자살을 결심한 모해원이 홀로 계곡으로 떠나 물에 뛰어들기 전 혼자 계곡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낮잠을 즐기는 장면의 독특한 여운. 늦은 밤 시내에서 돌아온 은섭이 대문 앞에서 만난 휘의 자전거 안장을 교체해주는 장면의 유머와 따뜻함(이 장면이 왜 웃기고 따뜻한지는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애청자라면 이 외에도 많은 장면들이 드라마의 종영 후에도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버거워 마음의 날씨가 안 좋은 날에 이 드라마가 보여준 그 장면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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