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의 ‘더킹’, SBS 신인작가 입봉작보다 매력 없다는 건
2020-05-01 박생강
‘더킹’, 김은숙 작가 작품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올해 SBS 드라마는 성공작이나 화제작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신인작가들의 입봉작이다.
이 포문을 연 것은 이신화 작가의 <스토브리그>였다. 2019년 겨울 시작한 <스토브리그>는 야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만년 꼴찌 드림즈 야구팀과 드림즈운영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스포츠드라마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깼다. 더구나 <스토브리그>는 연봉협상 등 야구단의 뒷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야구팬이 아닌 이상 일반 대중들이 관심도 없는 영역의 이야기지만 <스토브리그>는 시청률과 평가 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것은 작가가 디테일한 현실감을 잘 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스토브리그>는 야구팀운영단의 디테일한 사건들을 통해 재미를 준 것은 물론, 연봉협상과 기업의 윤리 아래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인간 군상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성공했다. 그 때문에 시청자는 <스토브리그>에 깊은 공감이 가능했다. 작은 세계를 다룬 이야기지만 로맨스 없이도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감동의 홈런을 날려준 것이다.
반면 최근 시작한 김은숙 작가의 SBS <더킹: 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라는 판타지에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두 개의 세계를 다룬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팽창하는 인상이다. 가상의 우르크, 저승세계, 일제강점기, 이제는 평행세계까지.
하지만 방송국의 속내를 다룬 <온에어>나 여성 시장 신미래의 삶을 보여준 <시티홀>에서 보여준 현실감각 위에 달콤한 로맨스 토핑 약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더구나 드라마의 세계는 거대해졌지만 남녀 주인공이 쿨하고 ‘말빨’ 좋은 대사로 주고받는 로맨틱코드는 변하지 않았다.
문제는 <더킹>이 문과가 아닌 곰과의 드라마처럼 둔해 보인다는 데 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평행세계에 대한 깊이 있으면서도 깔끔한 해석이다. 하지만 우선 두루뭉술하게 평행세계를 설명한 후 로맨스로 직진한다. 당연히 로맨스가 쉽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의 장기 말빨 로맨스 역시 <더킹>에서는 아쉽다. 인물들 특유의 치고받는 대사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 현란한 말들이 좀 피곤하다. 또 대한제국의 황제 이곤(이민호)이 매력적인 주인공인지도 살짝 의문이 든다. 도깨비 김신(공유)은 판타지적인 불사의 존재라는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은 시대의 아픔이 담겨 있어 그들의 로맨스에 비극적인 감성을 더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제라는 캐릭터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
한편 <더킹>의 전작 <하이에나>는 김루리 작가의 입봉작으로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변호사 정금자(김혜수)를 다룬다. 또 그녀의 상대역 변호사 윤희재(주지훈)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금수저 엘리트 변호사다. <하이에나>는 사실 법정드라마로 후한 점수를 주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출신과 성향을 지닌 두 주인공의 설정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배우들의 매력까지 더해져 굉장한 시너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더구나 김루리 작가는 두 남녀 인물이 부딪치는 미묘한 멜로를 그려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긴 대사는 필요 없다. 악몽을 꾸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띤 정금자가 달려온 윤희재에게 “어깨 좀 빌리자.”며 기대는 장면이면 충분하다. 반면 <더킹>을 보노라면 가뜩이나 말이 많은 시대에 말 많은 말싸움이 이어진다. 더구나 <파리의 연인> 한기주(박신영)부터 이어져 내려온 김은숙표 남자주인공들의 ‘쏘쿨직진사랑해 DNA’도 이제는 좀 질리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 자체의 흥미가 떨어질 때는 더욱.
물론 베테랑 작가답게 <더킹>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쉽게 풀어가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제 김은숙 작가 같은 베테랑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이야기를 진중하게 풀어가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종영한 SBS <아무도 모른다>의 김은향 작가는 입봉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아무도 모른다>는 극 중반까지 이 드라마의 서사가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믿게 만드는 진실한 힘이 있었다. 사이비종교와 얽힌 고아 악인 백상호(박훈)의 과거와 살해당한 친구 대신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를 안고 그 뒤를 쫓는 형사 차영진(김서형)이 그려내는 이야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드라마는 내내 고은호(안지호)와 친구들을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청소년들의 아픔까지 잡아낸다. 특히 상처받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어지는 은은한 온기가 이 드라마의 강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회에 이르러 <아무도>는 복선들을 회수하며 이야기까지 훌륭하게 마무리한다. 그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는 방영 내내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본 기분이지만 마지막회를 보면 의미 있는 수작을 본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김은향 작가는 스릴러와 따뜻한 휴머니즘의 상반된 세계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해내는 쉽지 않은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더킹>은 앞으로의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해지지는 작품은 아니다. 평행세계 아래 펼쳐진 황제와 형사의 로맨스는 아무리 포장해도 익숙한 감이 있다. 더구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코로나19의 세계에서 대단하고 허황된 로맨스가 오히려 하찮아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 믿음, 희망을 설득력 있게 그리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 너무 귀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