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2’ 김건모, ‘나가수’와는 사뭇 달랐던 이유
2012-03-17 정덕현
- 무엇이 김건모를 춤추게 했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김건모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노래했다. 김건모는 그 마지막 무대에서 비로소 '나가수'가 대중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들의 무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무대는 '즐기는 것'이고 음악은 '즐거운 것'이라 생각했던 그에게 우스꽝스런 퍼포먼스는 신들의 무대를 더럽힌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서바이벌보다는 최고의 무대가 중요했던 그에게 재도전이라는 선택은 그 신들의 무대를 만들어준 대중들을 기만했다는 비난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가 '불후의 명곡2(이하 불후2)'의 전설로 돌아왔다.
무대에서 경연을 펼치는 후배들에게 "제가 그 마음 잘 알아요."라고 말하는 김건모의 말 속에는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김건모는 지금까지의 전설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설'이라는 과분한 상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그 과분함이 자신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신들의 무대'에서조차 '립스틱을 바르던' 김건모의 타고난 천성이겠지만, 저 '신의 무대'로 올라가면 또다시 떨어져야할 아득함을 이미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본능일 것이다.
김건모는 끊임없이 농담을 던졌고, 후배들의 노래를 진심으로 즐겼으며, 심지어 회전의자 위에 올라가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전설의 자리에서 대중들과 똑같이 어우러지는 김건모의 모습은 권위의식 없는 순전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의 모습 그대로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김건모의 너무나 다른 모습 속에 '나가수'에는 없는 '불후2'만이 가진 장점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경연과는 상관없는 '즐기는 무대'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라는 점이다.
여러모로 '불후2'의 무대는 특유의 편안함이 장점이다. '전설'을 '모셔놓고', 그 전설의 노래를 젊은 가수들이 불러 경합을 벌이는 이 형식 속에서 여기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부담감을 지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설'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되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자신을 위한 무대라기보다는 '전설'을 위한 무대라는 '트리뷰트(tribute)'의 태도로 경연의 승패가 가져오는 결과에 초연해질 수 있다.
1대1 대결이라는 구조가 처음에는 잔인한 듯 보였지만, 이것은 거꾸로 두 사람 간의 대결(그것도 그날의 노래나 편곡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로 좁혀짐으로써 그것이 마치 전체의 등수처럼 매겨지는 '나가수' 특유의 부담감은 없애주었다. 결국 이 시스템이 주목하는 건 최고의 점수를 받은 1인이지 최하의 점수를 받은 1인(그는 심지어 몇 점을 받았는지도 나오지 않는다)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후2'는 자연스럽게 자체 진화가 가능해졌다. 즉 1위의 영광은 있지만 꼴찌의 부담은 없는 무대라는 장점 속에서 출연 가수들의 폭은 넓어졌다. 초기 아이돌에만 국한되던 가수 풀은 지금은 케이윌이나 이정, 홍경민 같은 가창력 있는 준 중견가수들은 물론이고 노브레인 같은 인디밴드나 임태경 같은 뮤지컬 가수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렇게 풀이 넓어지자 '불후2'는 출연 가수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또 '나가수'처럼 매번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불후2'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 이런 점들은 또한 선순환되면서 이 무대에 점점 더 많은 가수들이 서고 있는 이유가 된다. 여러모로 가수 구하기 어려운 '나가수'와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다.
투표방식도 초기에는 점수가 없이 그저 1대1의 대결로 흐르면서 결국 최종우승은 복불복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점수제로 바뀌면서 최종우승의 가치가 생기게 되었다. 점수제를 넣자 부각되는 것은 마치 기록경기 같은 분위기다. 즉 누군가 점수를 내면, 그 점수를 누가 깰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이것은 진정한 우승자를 가려주는 방식이면서 가수들로 하여금 탈락의 아픔이 아닌 우승의 기쁨을 누리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나가수'의 무대에서는 립스틱을 바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던 김건모가, 그래서 무대 위에서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손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여주던 김건모가 '불후2'라는 무대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 형식의 커다란 차이 때문이다. 물론 '불후2'의 시작은 '나가수'의 곁가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하지만 자체 진화를 하지 못해 잠정휴업 상태에 들어가 있는 '나가수'와는 달리, '불후2'가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지금의 위치에까지 도달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나가수'는 '나가수'만의 장점을 가진 무대지만, 시즌2를 준비하면서 청출어람 '불후2'가 이룬 진화의 과정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본래 진화란 원조와 짝퉁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커나가는 것이 아닌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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