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코미디’,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장르만 코미디’, 응원은 물론 고언도 필요한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장르만 코미디>는 왠지 응원을 해야만 마땅할 것 같은 예능이다. 배우 오만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연진이 얼마 전 영욕의 세월을 끝으로 종영한 <개콘> 출신 코미디언들이고, 해당 프로그램으로 브랜드를 갖게 된 서수민 PD가 판을 깔았다. <개콘>판 노아의 방주 혹은 난파선의 모양새다. 기획의 출발선은 명확하다. <개콘>의 정체성이었던 공개 코미디의 탈피한다. 그리고 웹툰, 드라마, 예능, 음악, 다큐 등 다양한 장르와 융합한 숏폼 콘텐츠를 선보이는 데 그 핵심은 ‘극화’ 즉, 드라마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본다.
다시 말해 개그를 펼칠 운신의 폭이 좁았던 무대를 벗어나 코미디 콘텐츠의 확장성을 도모하면서, 코미디언들의 다재다능함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다. 여전히 방송 코미디와, 코미디언들의 재능과 가치가 있다는 믿음의 발로다. 실제로 장기자랑 포맷인 ‘찰리의 콘텐츠거래소’를 제외하면 연기력을 기반으로 하는 극화된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웠다. ‘끝보소’는 오만석과 붙어서 연기하는 김준현을, <부부의 세계>를 패러디한 ‘쀼의 세계’는 안영미의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 <개콘>이란 좁은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은 셈이다.
그런데, <장르만 코미디>는 아쉽게도 새롭지 않다. <개콘>의 어려움이 단지 공개 코미디라는 포맷 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극화를 택했다곤 하나 전혀 새롭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해 한결같은 캐릭터와 연기톤을 선보이니 연기로 승부를 본다고 해도 <개콘>과 비슷한 정서가 유지된다. 또한, 극화의 방향이 페이크다큐나, 패러디 같이 코미디로 접근했을 때 전혀 새롭지 않은 방식이라는 점도 아쉬움이 있다.
장기자랑 코너는 언급을 다시 한 번 차치하더라도 1990년대 중후반 당대 최고의 코미디스타들이 총출동해 ‘코미디 드라마’라는 새바람을 일으켰던 MBC <테마게임>, 오늘날 ‘부캐’의 시초인 페이크다큐를 우리나라에 이식한 <UV신드롬>, 패러디를 기본 무기로 다양한 장르와 융합했던 코미디쇼 <SNL 코리아>가 떠오른다. 특히나 오늘날 방송 플랫폼을 집어삼키는 거대 콘텐츠 플랫폼인 유튜브의 기본 정서가 ‘유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장르만 코미디>의 레퍼런스는 가깝게는 3년 전, 멀게는 20여 년 전 어려움을 겪고 종영한 방송 프로그램이 연상된다는 점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결코 아니다.
물론, 1회밖에 방영이 되지 않았기에 가혹한 결론을 내릴 순 없다. 프로그램 자체가 무정형의 숏폼 콘텐츠의 집합체인 만큼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를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 한번은 본 듯한 익숙한 코미디 문법을 통한 극화와 열정과 노력, 녹록치 않은 현실이 연상되는 ‘짠내’를 기반으로 한 익숙한 정서적 접근 등 코미디를 다루는 방법에 변화를 주지 않은 한 그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개콘>이 점점 어려워진 관성이 이어지기 때문인데, 실제로 주말 저녁시간에 온가족 콘텐츠로 배치한 점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르융합이나 무정형 숏폼과 같은 틀도 중요하지만, 방송 코미디가 놓친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가는 출발선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선을 과거의 방송 레퍼런스와 제작방식에서 찾는다면 코미디 시절에 대한 순정 이상의 의미를 얻기는 어렵다. 오프닝에서 출연자들이 농담으로 언급한 공개코미디를 벗어난 코미디를 선보인다고 했지 웃긴다고는 안 했다는 상황이 실제로 도래하면 슬프기 때문이다.
오늘날 코미디를 전면으로 내세운 콘텐츠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이미 모든 콘텐츠가 유머를 기본 함양으로 갖고 있어서다. 대중문화 전반에 웃음과 유머, 위트가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시사부터 예능까지 웃음 자체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변별력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캐릭터의 시대다. 오늘날 코미디는 출발은 기존 코미디처럼 잘 짜여진 합이나 에너지, 극본이 아니라 인물의 매력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도 기존 공식의 수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이미 수많은 코미디언들이 넘어가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튜브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추세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코미디 배우들의 정극으로 넘어가는 진로를 따져보다 보면 코미디의 틀 안에서 연기력을 선보이는 것이 갖는 한계와 식상함을 알 수 있다. 배우 오만석이 코미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것도 뉴스가 아니다. 제임스 플랭코나 알렉 볼드윈 같은 사례를 우린 이미 수차례 봐왔다.
최근 ‘밈 현상’이 수용자와 생산자가 모호한 경계를 가속화하는 것처럼 함께 호흡하고 놀 수 있는 틈이 있을 때 웃음과 재미는 배가된다. 오늘날 과거의 문법에 따른 본격 코미디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소비 방식의 근본적 변화에 기인한다. 재능 있는 코미디언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재미와 웃음은 그간 코미디의 찬란한 역사와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형태의 언어와 문화다. 그런데 같은 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장르만 코미디>는 장르적 고민이 아닌 인물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아이디어 회의 방식부터 극의 형태까지 보다 더 전위적으로 ‘탈 방송콘텐츠화’ 하고 가깝게 다가올 필요가 있다. 캐릭터로 승부를 볼 수 있도록 출발선을 재설정하는 새로운, 더한 도전이 필요한 지금이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JTBC]